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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미술관 입구 입장객을 만원을 이룬다. 왼쪽 상단그림은 궁정화가 니콜라스 라이저가 그린 마리 드 부르고뉴의 24살 때 초상화. 당시 프랑스 부르고뉴 공국의 경제적 부와 세련된 미를 과시하고 있다
ⓒ 김형순
유럽에서 오백년 이상 최고 권력을 떨쳤던 합스부르크왕가가 수집한 16~17세기의 르네상스, 바로크 및 로코코 회화 64점을 선보이는 비엔나미술사박물관소장전이 덕수궁미술관에서 9월30일까지 열린다.

덕수궁미술관 측 다양한 전시에 대한 전환적 발상이 맞아떨어진 것인가? 장마와 무더위 속 이번 덕수궁미술관 특별전에는 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어쨌든 미술관이 붐빈다는 것은 도심 속 시민들의 자발적 축제의 장이 열렸다는 점에서 반갑다.

요즘 그림 값이 상한가 없이 치솟고 있지만 요즘 사람들 문화향유의 욕망도 이를 닮았나보다!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거론하는 문화소비니 문화자본이니 문화권력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이제 문화에 대한 상징성을 되새겨볼 때가 온 것 같다.

작은 것에서 부자 되기

적은 돈으로 부자가 되는 길은 없는가? 그런 것 중 하나가 명화감상이 아닌가 싶다. 입장료 1만2천원, 괜찮은 책 한 권 살 수 있는 적지 않은 돈이지만, 수십억의 가치가 있는 명화 하나를 보면 그만큼 돈을 버는 것, 좋은 그림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남기기에 우리가 마음의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전을 들러 보고난 소감은 한마디로 다른 전시보다 유럽명가 소장전답게 우아하고 세련되고 화려하다. 관객들이 비엔나미술사박물관 한 편 전시실에 와 있는 것 같고 또한 그들의 걸음걸이도 더 고상하고 우아하고 격조 있어 보인다.

▲ 덕수궁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중앙 로비에 여러 홍보게시물이 관객의 시선을 끈다. 벽면에 우리에게도 낯익은 벨라스케스의 '흰옷의 어린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가 보인다. 테레사의 원피스 주름과 재질감 그리고 장식의 통합적 구조가 생생하다
ⓒ 김형순
21세기 문화시대, 이제 미적 향유를 누릴 권리는 모든 이에게 돌아가야 한다. 아직도 돈 문제로 이 권리를 누릴 수 없다면 국립미술관은 한 주일에 하루라도 아니면 한 나절이라도 무료개방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덕수궁미술관 입구를 들어서니 연초록 바탕색에 밝고 세련된 톤의 글씨와 고아한 유럽풍 장식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누구나 벨라스케스의 '어린 왕녀 마르가레타 테레사' 그림 앞에서 마치 자신이 왕녀나 된 듯 사진 한 장 찍고 싶어 한다.

서양미술전에서 우리의 편식증은 심했다. 프랑스가 주였고 다음으로 영국, 미국 정도다. 서양미술의 근간이 되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전도 거의 드물다. 그런데 이번 게르만 풍의 미술을 보니 그 분위기가 색달라 좋다. 독일계 북유럽미술은 이탈리아나 프랑스보다 미술사조가 늦게 받아들여지긴 했어도 그 완결도는 더 높다.

▲ 덕수궁 야외 홍보포스터 중 하나. 16세기 베네치아 풍을 대변하는 화가 베로네세가 그린 유디트. 그녀는 구약에 나오는 전설적 여장부로 적장인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목을 베는 참혹한 장면에서도 여전히 우아하고 이상적인 여인으로 그려져 그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다
ⓒ 김형순
시대정신이 담긴 그림읽기의 재미

미술관측은 관람 포인트로 다음 몇 가지를 들고 있다. 우선 강력한 왕권과 가톨릭교회의 후원으로 역동적이고 화려한 미술을 꽃피웠던 바로크미술의 정수를 즐길 수 있고, 정치사 및 지리사적 맥락을 배경으로 당대의 유럽미술사를 조명할 수 있으며, 명문 합스부르크왕가의 컬렉션인 만큼 당대 최고걸작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단다.

그리고 그리스·로마신화를 독특하게 재구성한 작품과 성서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작품이 많아 신화와 그림, 종교와 그림을 통해 시대정신이 담긴 그림읽기의 재미를 맛볼 수 있고, 이론적으로만 접했던 서양미술사를 학교수업과 연계하여 생생하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단다.

▲ 덕수궁미술관 제3전시실 장면. 맨 오른쪽이 이번전의 대표작 중 하나인 벨라스케스 '흰 옷의 어린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 105×88cm 1656년경
ⓒ 김형순
이번 전시회 전시실은 수집가별로 구분 1층에 제1~2전시실이 있고, 2층에 제3~4전시실이 있다. 위 사진은 2층 제3전시실로 레오포트 1세와 오이겐 공 그리고 황제 카를 6세와 마리아 테레지아의 소장했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아래층 로비에서는 32명 작가의 작품해설이 담긴 오디오가이드(한국어·영어 2종)를 대여(2000원)하여 혼자서도 감상할 수도 있다.

16~17세기 서양미술사를 감상한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터, 각자 나름으로 감상법이 있겠지만 이번 전의 공식홈페이지인 http://www.미술전시.kr를 보면 자료가 풍부하여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선 맛보기 식으로 대표적 몇 점 작품을 같이 감상해 보면 어떨까 싶다.

렘브란트 '책 읽고 있는 화가 아들'

▲ 렘브란트 '책을 읽고 있는 화가의 아들, 티투스 판 레인' 캔버스에 유화 70.5×64cm 1665년 경
ⓒ 김형순
렘브란트의 '책 읽은 화가의 아들, 티투스 판 레인'은 작가의 네 명의 아들 중 유일하게 늦게까지 살아남은 티투스가 모자를 쓰고 책을 읽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가슴에 어떤 영감이나 계시가 오는 것 같다.

화면 전체에 감도는 빛은 작가만의 독특한 명암법에서 온 것으로 아들의 정신적 내면까지도 표현하여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과 감동을 준다.

영화관에 처음 들어갔을 때 영화가 안보이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잘 보이듯이 그의 작품은 어둡지만 내밀하고 조용한 가운데 그 빛과 광채를 서서히 발한다. 이 작품은 렘브란트가 말년에 파산선고를 받는 등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그의 예술적 재능은 더욱 빛났다.

바로크미술의 최고 걸작, 루벤스 '시몬과 에피게니아'

▲ 루벤스 '시몬과 에피게니아' 캔버스에 유화 208×282cm 1617년 경
ⓒ 김형순
루벤스가 그린 '시몬과 에피게니아'는 이번 전의 하이라이트다. 왜 이 그림이 17세기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바로크미술의 정수라고 하는지 절로 고개가 끄떡여진다. 이 그림 앞에 서면 우선 그 크기와 위압감에 기가 꺾인다. 또한 육감적이고 관능적 분위기가 주는 나부의 눈부신 생명력과 장엄한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이 작품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따왔다. 그림 속 주인공 시몬은 귀족가문이었으나 너무 방탕해 시골농장으로 쫓겨났다가 아리따운 에피게니아의 잠든 모습을 우연히 보고 반한다. 시몬은 결국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그녀와 결혼에도 성공한다. 이런 해피엔딩은 약간 미화된 것으로 원전과는 다르게 각색되었다.

서양에서 왜 모든 미술이나 디자인과정에 누드드로잉이 들어가고, 누드화가 최고의 걸작일 수 있는지 짐작케 하는 작품이다. 당시 루벤스의 최대 관심은 종교화와 함께 누드화로 불그스레한 볼과 금발에 윤기 나는 피부를 가진 풍만한 미인을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당대에는 풍만한 가슴과 둔부, 통통하게 살찐 팔뚝과 얼굴이 권력과 사치 그리고 풍요로운 삶을 나타내는 척도였다고 하니 오늘날과 다른 미인상에 대한 의문이 조금은 풀린다. 루벤스는 사실 렘브란트와는 다르게 유럽왕정의 막강한 후광을 받는 궁정화가로 당대의 부와 명성을 다 누렸다.

대천사장을 통해 그린 이상적 여인상

▲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악마를 심연으로 떨어뜨리는 대천사장 미하엘' 캔버스에 유화 169.5×110.3cm 1665/1666년 경
ⓒ 김형순
이번에는 1665년 경 작품인 '악마를 심연으로 떨어뜨리는 대천사장 미카엘'을 감상해 보자. 이 작품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것으로 그는 17세기 스페인에서 벨라스케스와 수르바란과 함께 3대 화가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스페인남부 세비야 카푸친성당을 위해 21점에 달하는 연작 중 1666년 처음 완성되었다. 경직된 화면 속에서도 대천사의 형상이 대각선을 이루고 있고 색채와 구도에서 정서적 풍부함과 친밀감도 풍겨 작가의 정감어린 인간적 면모를 느끼게 해준다.

천사가 두른 망토의 찬란하고도 짙은 붉은 색은 이단에 승리하는 신앙을 암시한다. 또한 화가의 종교가 가톨릭인 만큼 16~18세기 종교개혁에 반대하는 관점도 담겨 있다.

그런 모든 점을 떠나 이 대천사의 모습을 보면 마치 우리의 반가사유상이 붓다의 얼굴 이전에 정화된 한국인의 마음을 가장 숭고한 모습으로 형상화했듯이 우리 눈으로 볼 때는 성화라가보다는 서구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 여인을 그려놓은 것 같다.

환상적 누드화로 그린 신화 속 여신

▲ 프란체스코 몬텔라티치(일명:체코 브라보) '수호신들에 둘러싸인 오로라' 캔버스에 유화 144×197cm 1659년 혹은 이전
ⓒ 김형순
이번에는 우리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기에 더 감동을 주는 프란체스코 몬텔라티치(일명, 체코 브라보)의 작품을 살펴보자. 아침노을의 여신인 아우로라는 천사 같은 수호신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녀의 벗은 몸은 베일로 싸여 있어 그지없이 신비롭고 아름답다.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이런 모습은 우리네 선녀를 연상시켜 친밀감을 준다.

체코 브라보는 신화를 그림에 도입하는 데 있어 피렌체 르네상스식 은유를 차용하여 더없이 은은하고 감미롭다. 꽃과 함께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진주는 아침이슬과 눈물을 가리키고, 특히 화려한 꽃은 여신이 세상에 나누어주는 색채의 선물을 뜻한단다.

그리스·로마신화 주제 그림 중 하나

▲ 보르도네 '알레고리(마르스, 비너스, 빅토리아, 큐피드)' 캔버스에 유화 111.5×174.5cm 1560년 경. 아래 브론치노 '시간과 사랑의 알레고리' 1545년
ⓒ 김형순
끝으로 '알레고리(마르스, 비너스, 빅토리아, 큐피드)'를 소개한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주제로 베네치아파인 보르도네(1500~1571)가 그린 그림으로, 브론치노(1503~1572)가 사랑의 달콤함과 그 뒤에 숨겨진 괴로움을 주제로 그린 '시간과 사랑의 알레고리'와 거의 같은 시기라 두 작품을 대비해 감상하면 더 흥미로울 것이다.

비너스(아프로디테)는 그리스인의 풍부한 상상력과 미적 감수성에서 빚어낸 신화 속 미의 여신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절름발이 대장장이 헤파이토스와 혼인하게 되나 그녀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다른 여러 남자들과 사랑에 빠진다. 그 연인 중 하나가 바로 전쟁의 신 마르스다.

미의 여신 비너스를 부둥켜안고 있는 전쟁의 신인 마르스, 게다가 비너스와 마르스 사이에 낳은 큐피드도 옆에 있고 승리의 여신까지도 두 연인의 머리 위에 화환을 씌어주는 것을 보면 완벽한 사랑을 칭송하는 것 같지만 이는 작가의 의도라기보다는 그에게 그림을 주문한 소장자들의 이상적 사랑의 염원이 담긴 그림일 확률이 높다.

하여간 여기서는 지면상 이번 소장전의 작품을 다 언급을 할 수 없고 나머지 작품은 직접 가서 혹은 여러 통로로 각자의 취향과 목적에 맞춰 감상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ㅇ비엔나미술사박물관전 공식홈페이지 http://www.미술전시.kr 
ㅇ전시기간 : 2007.6.26~2007.9.30(총 85일간) 덕수궁미술관 02-2022-0600
ㅇ작품내용 : 비엔나미술사박물관 소장 회화 걸작 중 총 64점
ㅇ출품작가 : 렘브란트, 루벤스, 벨라스케스, 티치아노, 틴토레토 등 작가 총 54명
ㅇ관람료  : 성인 12,000원, 청소년 9,000원, 초등7,000원(덕수궁입장료 포함) 월요일휴무


태그:#합스부르크왕가, #바로크미술, #르네상스미술, #비엔나미술사박물관, #렘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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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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