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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1일(1월 12일),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인도양의 푸른 바다에 뛰어들 상상을 하니 가슴이 벅차다. 어젯밤 바다 속에서 돌고래와 수영하는 꿈을 꿨을 정도다. 스톤타운에는 두 개의 큰 다이빙센터가 있는데 출국 전 미리 이메일로 예약했었던 바하리(bahari는 스와힐리어로 '바다'라는 뜻이다)리조트로 가기로 했다.

 

사장은 백인 여성이었는데 기다리고 있었다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녀는 나의 자격증을 확인하고 최근의 다이빙 경험과 컨디션 등을 꼼꼼하게 물었다. 국내와 달리 해외의 리조트에서는 자격증 확인이 필수다.

 

지난해 이집트의 홍해에서 들렀던 다이빙 리조트에서는 사장도 스텝도 강사들로 모두 유럽에서 온 이들이었다. 현지인들은 운전을 하거나 물건을 옮기는 일만 할 뿐 교육과 바닷속 안내를 하는 인솔자 등 기술적인 부분은 모두 백인들이 일을 했다. 그에 비해 잔지바르에서는 사장만 영국인이고, 강사와 스텝, 요리사 모두가 현지인이었다.

 

잔지바르의 다양한 다이빙 포인트

 

잔지바르의 다이빙 포인트는 스톤타운에서 20~30분 거리에 있는 작은 섬의 주변과 멀리 펨바섬 주변의 포인트들로 구분한다. 스톤타운 근처 섬에서의 다이빙은 다양한 산호와 난파선을 볼 수 있고 초급이나 중급 수준인데 비해, 펨바섬 주변은 다양한 생물을 볼 수 있는 절벽 다이빙(Wall dive)과 마치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듯한 조류 다이빙(drift dive)을 즐길 수 있다.

 

아쉽지만 일정상 스톤타운 주변의 세 군데 포인트만 가기로 결정했다. 아침 일찍 리조트로 가서 다이빙 장비를 빌리고, 슈트를 갈아입은 다음 해변으로 향했다. 해변에는 어선을 개조한 듯한 구조의 배가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모양의 다이빙선을 본 적이 없었다. 또 흑인 스텝들이 검정색 다이빙 슈트를 입으니 피부와 옷이 구분되지 않는다.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배에는 이미 다른 일곱 명의 다이버가 타고 있었다. 가이드를 중심으로 각자 소개를 했다. 휴양차 왔다는 이스라엘 아저씨, 2년에 걸친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는 네덜란드인, 그와 다르에스살람에서 만났다는 영국인, 자원봉사자로 아프리카에 왔다는 프랑스인…. 그러나 그들 중 가장 많은 관심의 대상은 그들에겐 낯선 동양에서 온 여성 다이버인 나였다.

 

가이드가 각자의 레벨에 맞게 버디를 정해주었다. 바닷속에는 어떤 위험상황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둘 이상이 짝을 맞추어 들어가는 버디 시스템이다. 나의 버디는 잘생긴 네덜란드 총각이다. 2년에 걸친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직업이 있지만 여행을 위해 그만두었다고 한다.

 

여행을 마치고 재취업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취업정책이 잘되어 있어서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잘생긴 나의 버디는 가장 키가 작은 동양인 여자가 20㎏은 족히 넘는 장비를 들고 다니는 것이 무척 마음에 걸렸나 보다. 공기탱크도 들어주고 친절하게 장비점검도 해준다. 이래 봬도 한국에선 200회를 넘긴 씩씩한 다이버인 데 말이다.

 

산호가루로 만들어진 핑크빛 모래... 화려한 산호정원

 

해변을 출발한 지 20분쯤 지나서 첫 번째 포인트에 도착했다. 바웨(Bawe)섬 앞 포인트이다. 수온 25℃, 최대 수심 15m, 다이빙 시간 40분을 계획하고 첫 번째 입수를 한다. 수면은 거울처럼 고요했다. 수직 시야는 20m는 나올 것 같다. 수온은 슈트가 거북할 정도로 따뜻했다.

 

바닥에 도달하니 뱀장어(Garden eel)들이 모래밭에 몸을 숨기고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자 이내 모래 속으로 쏙 숨어 버린다. 산호가루로 만들어진 핑크빛 모래는 찬란한 태양광선이 무늬를 만들어 마치 물결에 따라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모랫바닥을 지나면 산호초가 이어지는데 사슴뿔산호(Acropora cervicornis)·판산호(Plate coral)·스펀지산호(Sponge coral), 사람의 뇌처럼 생긴 두뇌산호(Brain coral) 등이 펼쳐져 있다.

 

산호정원에는 블루탱(Blue tang)·유니콘피쉬(Bluespine unicorns)·앵무새물고기(Parrot fish)·그루퍼( Grouper), 그리고 다양한 고비(Goby) 등을 관찰할 수 있었다. 바위 틈에는 회색의 곰치(moray)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못생겼다.

 

곰치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시력이 나쁜 곰치가 먹이를 주려는 다이버들의 손을 먹이로 착각하고 문 것이지 먹으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저 단단한 이빨에 물리면 손가락이 제대로 붙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해마는 수컷이 새끼를 낳는다고?... 그리고, 두 번째 입수

 

해초에는 엄지손가락 길이만 한 '해마(Sea horse)'가 꼬리를 감고 있다. 해마는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마차를 끌었던 신하로 나온다. 해마는 수컷이 암컷 대신 출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마의 수컷에는 육아 주머니가 있는데 암컷은 그 육아 주머니에 알을 낳는다.

 

수컷은 20여 일이 지나면 출산을 하는데, 심한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이것 때문에 수컷이 임신한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알이 클 때까지 품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수면 위로 올라갈 시간이다. 천천히 호흡으로 폐 속의 공기의 양을 조절하며 상승한다. 공기방울을 따라 상승한 수면 위에서는 오후의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면서 파도의 찬란함을 전하고 있었다.

 

두 번째 다이빙은 무룽구섬(Murogo)의 북쪽에서 입수한다. 최대수심 30m으로 바다거북이 많다는 포인트이다. 하강하면서 만나게 되는 뱃피쉬(Batfish)는 다이버를 피하지 않는다. 20여 마리의 배너피쉬(Banner fish, '깃대물고기'라는 뜻)가 떼 지어 몰려다닌다. 배너피쉬는 등지느러미가 마치 깃대같이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완전히 펴면 족히 2m는 될 것 같은 큰닻해삼(Synapta maculata)이 바다뱀처럼 보여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물론 사람이 공격하지 않는다면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지만 바다뱀은 육지의 뱀보다 30배 이상 독이 강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가끔 보이는 초록색 거대한 앵무새고기(Parrot fish)들은 입을 벌려 바닷물 속의 플랑크톤을 거르고 있었다.

 

니모는 말미잘 속에서 찾아야 한다... 니모 아빠가 여자?

 

15미터 수심에는 말미잘에 둥지를 튼 클라운피쉬(Clown fish, '광대물고기'라는 뜻) 가족이 있다. 말미잘 안에 살기 때문에 아네모네피쉬(Anemone fish, '말미잘물고기'라는 뜻)라고 불리기도 한다. 제주도 바다에서도 볼 수 있는 데 우리나라 이름은 '흰동가리돔'이다.

 

우리에게는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으로 친숙하다. 영화는 산호초에 사는 '광대물고기(clown fish)'라는 이름의 작은 물고기인 말린이 인간에게 잡혀간 아들 니모를 찾아 떠나는 모험 이야기다. 온갖 고생 끝에 말린은 결국 니모를 구출하고, 하수구를 통해 호주 시드니 앞바다로 빠져나온다.

 

영화에서의 이름 '니모(Nemo)'는 아네모네(aNEMOne)에서 딴 것이다.영화에서처럼 클라운피쉬들은 치명적인 독을 내뿜는 말미잘과 공생하면서 다른 물고기의 공격을 막아낸다. 그들은 몸을 덮고 있는 점액질에 말미잘의 촉수에서 떨어져 나온 피부조직을 붙이고 다님으로써 말미잘의 공격을 예방한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말미잘의 자포는 클라운피쉬를 자신의 몸으로 인식하여 공격을 하지 않게 된다.

 

클라운피쉬는 엄격한 모계사회를 이루며 생활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클라운피쉬는 몇 마리가 같이 모여 살든 간에 가장 덩치가 큰 개체가 암컷이 되며, 그 다음으로 큰 개체가 수컷이 된다. 그러나 더 재미있는 것은 다른 나머지 개체들은 모두 성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로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암컷과 수컷 한 마리 중 사고나 어떤 일로 인해 죽거나 사라지면 그때가 돼서야 성이 없던 개체들 중 한 마리만이 성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에도 물론 가장 덩치 큰 개체가 암컷이 되는 것이다.

 

만약 암컷이 죽으면 파트너였던 수컷이 성을 전환하여 암컷을 대체한다. 동시에 성이 없던 개체들 중 한 마리가 새롭게 생식기능을 갖춘 수컷으로 변한다. 수컷은 정소와 기능성 없는 난소를 가지고 있다. 이후 또다시 성전환이 자극을 받으면 정소는 기능을 멈추고 퇴화되는 반면 난소는 점차 활동성을 갖게 된다. 영화에서처럼 바라쿠다의 공격으로 엄마가 죽고 니모와 아빠가 남겨졌다면, 니모의 아빠 말린이 성전환을 하여 엄마 역할을 하고, 니모가 아빠 역할을 해서 계속 생활해야 하는 것이다.

 

고독을 즐기는 씬벵이... 낚시하는 물고기

 

노란색의 씬벵이(Frogfish, '개구리 물고기'라는 뜻)가 몸을 숨기고 있다. 비늘이 없어 미끈거릴 것 같은 피부에 온몸에 울퉁불퉁한 돌기가 있다. 관절이 있는 가슴지느러미는 헤엄치기보다는 걷기에 알맞게 진화되었다. 마치 발이 있는 것 같다. 네발로 돌을 잡아 버티기도 하고 걷는 것처럼 유영한다.

 

지금까지 보았던 씬벵이는 무리를 이루지 않고 항상 단독으로 있었다. 이렇듯 씬벵이는 상대의 존재를 참지 못하는 고독을 즐기는 동물이다. 사실 억지로 수족관 내에 함께 넣어두었더니 서로 잡아먹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 씬벵이도 생식기간 동안에만 유일하게 상대의 존재를 참아준다.

 

수컷은 주둥이로 암컷을 쿡쿡 찌르면서 암컷을 유혹한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정자를 뿜어 수정을 시킨다. 그러나 짝짓기가 끝나면 암수는 따로 헤어진다. 씬벵이는 보통 물고기들처럼 헤엄쳐서 먹이를 잡아먹지 않는다. 낚시를 해서 먹고 산다. 입과 연결된 낚싯대 끝에는 미끼까지 달렸다.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가슴지느러미로 바위 위에 버티고 앉은 채 먹잇감이 다가와 입질하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낚시꾼이다.

 

미끼 또한 잡고 싶은 물고기에 따라 갯지렁이, 갑각류, 해초류 등 다양하게 사용한다.미끼에 현혹돼 다가오는 물고기는 순식간에 씬벵이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먹이를 삼킬 때 커지는 씬벵이의 입 또한 엽기적이다. 평소의 12배까지 크게 벌어진다. 자신의 몸보다 2배나 큰 물고기를 통째로 삼킬 수 있다. 자신보다 큰 먹이를 삼키고는 소화가 될 때까지 제자리에 앉아있다.

 

거북의 등을 타고 용궁으로 가다

 

해초를 뜯고 있는 거북이를 발견했다. 거북이의 등에 타기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전에 필리핀 바다에서도 몇 번 성공한 적이 있었기에 자신이 있었다. 숨을 죽이고 뒤에서 거북을 덮쳤다. 놀란 거북이 자리를 박차고 헤엄치기 시작한다. 물속의 스쿠터가 따로 없다. 이대로 용궁까지 가면 좋겠다. 한 손으론 등을 잡고,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론 등에 붙은 조개와 이끼들을 긁어주었더니 시원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동물을 학대한다고 노발대발하는 사람도 있다면 거북이의 등을 청소해주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준비해야겠다.바다거북은 패달처럼 생긴 발은 마치 새가 날갯짓하듯이 움직여 시속 24㎞를 낼 수 있다. 또 한 번에 4800㎞까지 헤엄칠 수 있다. 미끈한 등은 물속에서 저항을 줄여준다. 사람의 경우 세계 신기록이 시속 6.9㎞이다. 결국 거북이가 이긴다.

 

바다 밑에 가라앉은 노예선인가

 

마지막 세 번째는 풍구(Fungo)섬 근처의 난파선 다이빙이다. 입수를 하여 바닥에 도달하자 모랫바닥이다. 순간적으로 하강할 때 방향을 잘못 잡았나 생각했다. 그러나 가이드를 따라 50m 정도 이동하니 그리 크지 않은 난파선이 있었다.

 

누구도 이 배의 선명과 침몰된 날짜를 모른다. 다만 수없이 이 바다를 지났던 노예 선적 중 하나로 추측할 뿐이다. 지금은 바다 속 생물들의 서식처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작은 틈에는 청소새우가 살고 있고 갑판에는 수많은 해송들이 정원을 이루고 있다.

 

다이빙 중 버디와의 상호협조는 필수다. 특히 난파선 내부로 들어갈 때는 버디의 행동을 항상 주시하고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이동해야 한다. 언제, 어떤 이유든 버디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 곧바로 출구로 나와서 상승해야 하기 때문이다.

 

난파선의 내부로 들어가기로 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녹슨 철판 사이로 지나간다. 좁은 공간을 조심스럽게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자칫 부주의한 발차기라도 한다면 부유물들이 시야를 가릴 뿐만 아니라 길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잔지바르의 추억

 

마지막 다이빙을 마치고 올라온 수면에는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다이빙을 마치고 리조트로 돌아왔다. 나의 친절한 버디와도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내일 펨바섬으로 이동해서 다이빙을 더하고, 화요일에 출발하는 타자라 열차를 타고 잠비아로 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내일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다르에스살람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금요일에 출발하는 타자라 열차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도시인 리빙스턴에 메모를 남기기로 약속했다. 인연이 된다면 빅토리아 폭포 아래서 다시 만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는 30일간 동남부 아프리카를 여행한 기록이다. 케냐- 탄자니아-잠비아-짐바브웨-남아프리카공화국-나미비아를 거쳐 6개국을 2006년 1월 2일부터 1월 31일까지 여행했다. 


태그:#아프리카, #탄자니아, #잔지바르, #스쿠버다이빙, #아네모네 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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