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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가지
최근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 대한 인기 상승을 반영하기라도 한 듯 각 출판사마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 출간이 한창이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빅4'라고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히가시노 게이고,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도 이에 맞추어 속속들이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이중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아웃>은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필독서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아웃>의 표지를 통해 작품의 성격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등을 지고 거꾸로 서있는 4명의 여성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다. 이 4명의 여성이 작품의 등장인물이며 이들은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즉 일상에서 '아웃(out)'된 자들의 이야기이다.

마사코, 요시에, 구니코, 야요이는 야간근로제 도시락공장에서 일하는 여자들이다. 살아온 배경과 환경은 각각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궁핍한 삶에 지쳐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둘러싼 환경과 요건은 고달프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문제아 딸을 부양해야만 하는 요시에나와 술주정뱅이, 도박, 주먹질까지 서슴치 않는 남편 때문에 고통 받는 야요이, 허영심과 사치·낭비로 인한 소모성 삶을 살아가는 구니코 그리고 각각 타인처럼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남편과 실어증 걸린 아들 사이에서 위태롭게 견디고 있는 마사코가 그들이다. 그들의 삶은 정해진 규격과 특별할 것 없는 메뉴로 똑같이 반복적으로 채워지는 도시락과 닮았다. 그들이 밤새 만드는.

나약하고 무력한 인간의 모습 처절히 파헤쳐

사건은 야요이가 우연히 남편을 살해함으로써 시작된다. 우발적인 상황에서 일어난 범행이었다. 야요이는 마사코에게 도움을 청하고 마사코는 야요이를 돕는다. 둘은 그렇게 절친한 관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마사코는 무슨 이유에선지 야요이를 돕는다. 그리고 이 일에 요시에를 끌어들인다. 처음에 아연실색하던 요시에도 돈을 준다는 말에 마지못해 가담한다.

선량하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한 요시에였지만 쪼들리는 살림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 나중에 구니코까지 가담하게 되며 이들 4명의 범행은 점차 대담해져간다. 브레이크 고장 난 자동차가 내리막을 향해 무섭게 질주하는 것처럼 언젠가 파멸할 것을 알면서 이들은 그 속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운명을 깨닫는다.

그리고 여기에 또 다른 인물이 있다. 사타케. 과거, 죽음에 이르는 욕망과 파멸이 주는 황홀감을 알아버린 남자다. 사타케는 야요이의 남편 살인사건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된다. 사건의 진범을 알아내기 위해 복수의 칼날을 갈던 사타케는 마사코의 존재를 찾아내게 되고 그가 과거에 느꼈던 파괴와 학대의 욕망을 마사코에게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은 인간 밑바닥에 존재하는 추악하고 어두운 본성을 마구 헤집어 들춰내고 있다. 돈 앞에 한없이 무력해지고 나약해져버리는 인간의 모습과 불리한 현실을 두고 자기 식대로 합리화하고 쉽게 지워버리려는 이기적인 모습이 아주 처절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본래 인간이란 이런 것이야, 이런 상황에 닥치면 너희는 안 그럴 것 같냐'며 작가는 조소어린 물음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그 물음은 때론 너무 지독해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게 바로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작가는 반격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들 '아웃'된 삶을 살고 있지 않으랴

그러한 인간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구차해짐과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연민의 마음도 생긴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의 결말에 이해와 용서를 구했던 것일까.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 가운데 단 한번도 '이해'나 '연민'의 감정의 틈을 허락하지 않던 작가였다.

그런데 결말부분에 이르러 서로를 처절하게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던 사타케와 마사코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맺음은 한편으로는 어리둥절하다. 그러나 눈 밝은 독자라면 그 결말의 암시를 작품의 중간 중간에서 이미 엿보았을 것이다. '당신은 나와 많이 닮았어'라는 사타케의 말에서.

직장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아웃'당하고 집안에서는 남편과 아들로부터 '아웃'당하고 사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아웃'당하는 등 이 작품에서는 제도권 밖에서 혹은 바닥에서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의 초상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들은 삶의 출구를 찾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 부단히 노력한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그런 부류는 반드시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크건 작건 간에 무엇으로부터 '아웃'당하며 살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우리의 삶은 우리 나름의 출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안간힘의 연속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보듬어 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고 이 작품은 말하고 있다. 어쩌면 나와 닮은 그들일지도 모르기에. 사타케와 마사코가 그랬던 것처럼.

덧붙이는 글 | 아웃1,2/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도서출판 황금가지/각권 1만원 

<일본소설 맛보기>
어쩌다보니^^ 일본소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아마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크게 매료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일 것입니다. 아직 매니아라고 불릴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일본 소설만이 주는 독특한 즐거움에 흠뻑 빠진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읽은 일본소설의 다양한 세계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아웃 1

기리노 나쓰오 지음, 황금가지(2007)


#기리노 나쓰오#아웃#일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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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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