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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김세옥 기자] "은은한 커피 향이 퍼지는 가운데 부드럽게 음악이 흐르는 카페를 차리고 싶어서 커피와 음악에 대한 공부를 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가족의 무관심과 가난을 핑계로 저에게 그런 꿈이 있었단 사실조차 잊고 지냈죠. 어렵게 다시 찾은 꿈인 만큼 소중히 지킬래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카페 티모르'에서 일하는 10대 바리스타 최은영(18)양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자신 역시 친구 집을 전전하며 당장의 삶을 걱정하기 전, 가슴 한구석에서 키우던 꿈을 이제야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최양이 일하고 있는 '카페 티모르'는 가정의 해체로 돌아갈 곳을 잃은 10대 청소년들에게 자활 기회를 주기 위해 한국YMCA전국연맹이 SK텔레콤과 KT, 스포츠토토의 후원을 받아 만든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으로 6월 28일 문을 열었다.

"2005년 겨울, 찜질방을 전전하다가 대구YMCA에서 운영하는 쉼터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갔어요. 당장 머물 곳이 필요했거든요. 그곳에서 자원봉사 나온 대학생 언니와 멘토링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도 얻고 제 미래와 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죠."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쉼터 교사가 최양에게 서울YMCA에서 운영하는 '바리스타 실무교육 과정'을 소개하며 공부를 권한 것이다. 일주일에 세 번,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왕복 8시간씩 걸리는 길을 한 달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최양은 "몸이 힘든 것도 있었지만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건 함께 교육받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차비도 아깝고 내 꿈을 이룰 기회가 왔는데 이 정도 어려움에 굴복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최양은 한 달 만에 바리스타 교육 과정 수료증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수료증이 있다고 해서 금방 커피 전문가로 일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나이도 경험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당장 생활비와 용돈을 벌어야 했다. 최양은 커피 향을 맡을 수 있는 곳에서 일하며 기회를 기다리기로 했다.

최양의 믿음대로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서울YMCA에서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위은영, 박혜영양과 함께 공정무역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을 운영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물론 만만한 일은 아니다. 매장과 고객관리는 물론 수익관리와 마케팅 등 카페 운영 전반에 대해 세 사람이 책임을 지고, 보증금 1000만원을 차차 갚아 나가며 월세 40만원도 이들이 내야 한다. 6개월 동안은 YMCA에서 파견 나온 활동가가 도와주지만, 이후엔 이들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해야만 한다.

"과연 잘할 수 있을지 두렵고 떨리지만 그보다는 잘 해내겠다는 의지가 더 커요. 처음 준비할 때만 해도 돈 많이 벌어 다시 가족들과 함께 잘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이젠 ‘카페 티모르’ 2호점, 3호점 이렇게 늘려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에게 언젠가는 반드시 기회가 오고 그것을 잡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싶거든요."

최양의 다부진 각오다.

가정해체로 거리로 내몰린 청소년들
사회적 뒷받침 절실...경제적 자립환경 만들어줘야

"아버지와 오빠에게 두들겨 맞는 게 지겨워서 집을 나왔어요. 좋은 일자리를 구해 돈도 벌고 나중에 대학도 가야겠다는 생각에 취업교육을 받아 보기도 했지만, 남에게 간섭 받지 않고 지내온 시간이 너무 길어서인지 잘 적응이 안 되네요."

반복되는 가정폭력을 피해 2년 전 가출, 쉼터를 전전해온 A(19)양은 앞으로의 삶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A양처럼 학대와 빈곤 등으로 가정 밖으로 내몰린 10대 청소년들의 자활은 과연 가능할까.

우리 사회는 위기 청소년들의 자활보다는 그들을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다시 들여보내는 일을 더 중요시한다. 청소년들은 가정에서 보호받으며 성장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가정이 이미 해체됐거나 기능을 상실했다면?

노혁 나사렛대 교수(사회복지학부)는 “빈곤과 학대 때문에 자의 혹은 타의로 가정을 나온 청소년들은 파괴된 가정에서 받은 고통, 그로 인한 정신적 손상 그리고 준비 없이 사회에 던져진 삼중고의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고만 한다면 오히려 문제가 더 악화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가출 청소년들은 가정이 자신에게 상처를 줬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저 돌려보내는 것에만 중점을 둔다면, 이들에게 가정은 평생 애증이 교차하는 곳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노 교수는 “가출 원인과 주변 환경에 따른 다각적이고 차별화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자활이다. 노 교수는 “일을 해 얻은 소득으로 위기 청소년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면 이를 기반으로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회성, 다시 말해 사회적 자립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렇게 스스로 역량을 갖추면 삶에 대한 자주성과 결정력을 갖는 정신적 자립 역시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위기 청소년의 특성에 맞는 자활 프로그램은 턱없이 부족하다.염미연 국가청소년위원회 상담자활팀장은 6월 29일 한국YMCA전국연맹(사무총장 이학영) 주최로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열린 ‘사각지대 10대 자활지원 방안 토론회’에서 “비행 청소년(33.2%)과 학업 중단 청소년(42.7%) 사이에서 취업 관련 요구가 높지만, 이들의 특성을 고려한 사전 동기 증진과 사후 관리 프로그램이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위기 청소년들은 학업, 훈련, 취업 등을 통한 자립 욕구가 강한 반면,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염 팀장은 “위기 청소년들은 취약한 환경으로 인한 저학력, 학습된 무기력, 사회 부적응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면서 “이들이 설혹 자립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더라도 중도 탈락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가청소년위원회와 보건복지부, 교육부, 노동부, 법무부는 위기 청소년의 자립을 돕기 위해 청소년자활지원관을 설치·운영하고 대안학교를 지원하는 등 다각도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관련 기관만 해도 위기청소년 상담지원센터(142개소), 청소년 쉼터(72개소), 청소년자활지원관(28개소) 등 다수다.

염 팀장은 그러나 “위기 청소년 지원 사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선 학업과 진로 그리고 직업에 대한 성취동기 증진, 원활한 사회 적응을 위한 사회기술능력 향상 프로그램 등이 함께 운영되어야 하는데 부재한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상담과 관리를 통한 지속적인 사후관리 시스템 마련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복남 청소년자활지원관협의회 실무대표는 “아직 사회인으로 준비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기술과 노하우만을 가르쳐 창업을 지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으며, 자칫 이들이 부정적인 사회 경험을 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면서 “단순한 직장 체험 정도로 청소년 자활에 접근할 게 아니라 삶과 사회를 배우는 소중한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청소년, #가출, #커피, #자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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