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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일,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회사측으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이랜드그룹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항의하며 서울 마포구 홈에버 상암점을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 우먼타임스
[주진 기자] 벌써 5일째구나. 전화만 하면 울어버리는 막내아들, 우리 큰딸! 엄마가 너희들을 너무 사랑하니까 이 싸움을 해야만 한단다. 지금은 우리가 힘들고 괴롭지만 참고 이겨낸다면 너희들은 노동자가 되어도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겠니?”

지난 6월 30일부터 비정규직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홈에버 상암점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랜드 여성 노동자의 글이다.

대형 할인마트 ‘홈에버’ 상암점에서 비정규직으로 4년간 일해 온 40대 후반 정모씨. 고등학생, 중학생 두 아들을 둔 정씨는 늘어만 가는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는 욕심에 일을 시작했다. 홈에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90%가 정씨와 같은 생계형 취업 주부들이다.

“회사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죽어라 일한 죄밖에 없어요. 하루 6시간씩 줄곧 서서 일하면서 제때 식사도 못 하고,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가지 못 했어요. 그렇게 꼬박 한 달 일하고 80만원 남짓 손에 쥐었죠.”

1년 내내 휴가 하루 다녀오지 못할 정도로 힘들게 일했지만 이들은 ‘신앙’을 모태로 한 회사와 공동운명체라는 애사심으로 버텨왔다. 문을 연 지 4년이 넘었지만, 내내 노조가 없었던(홈에버 상암점은 올 5월 말에야 뒤늦게 노조를 결성했다) 것도 이같은 착한 믿음 때문이었다.

정씨는 회사가 성차별은 물론, 노동자들에게 인권 탄압을 해왔다는 새로운 사실도 폭로했다. 그에 따르면 남자가 들기에도 무거운 엄청난 물량을 혼자서 레커로 끌거나 손으로 나르는 건 다반사였고, 똑같은 비정규직인데도 남녀 간에 급여나 처우에서 차이가 매우 컸다고 밝혔다.

또 고객 서비스 만족도를 평가한다는 명목 아래 주부 모니터단을 운영했지만 실제로는 직원들을 감시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왔다고 주장했다. 누가 인사를 잘 하지 않는지, 누가 자리를 자주 비우는지 시시콜콜한 항목을 체크해 지적된 대상자들에게 인사 교육을 따로 시키는 등 노골적으로 인권탄압을 해왔다는 것.

투쟁, 노동, 비정규직이라는 말도 처음 들어봤다는 이 평범한 아줌마들을 누가 차디찬 대리석 바닥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악바리’로 만들었을까.

“사실 겁도 나지만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각오로 매달리고 있어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입사 6개월차 새내기 주부 신모씨는 “제발 희망을 갖고 일하고 싶다”는 말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설움을 토로했다.

“높은 연봉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조건을 들어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지금까지 일하던 정든 직장에서 계속 일하게만 해달라는 건데, 그렇게 무리한 요구인가요?”

그러나 이들의 일터는 현재 목숨을 건 살벌한 전쟁터로 변해 있다. 3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사측이 고용한 용역 직원들이 팽팽하게 대치 중이다. 이랜드측은 “교도소 징역살이를 해도 상관없는 깡패를 투입하겠다”는 말로 협박하는가 하면, ‘3단봉’ 등의 무기까지 사용하며 힘없는 여성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김경미 이랜드 일반노조 월드컵 분회장은 “적은 인원으로 싸우기가 너무나 힘들다. 관심과 연대를 부탁한다. 비정규직 악법을 철폐하고, 꼭 승리하겠다”고 말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민주노총은 7월 8일 전국 조직을 동원해 이랜드의 전 유통 매장을 점거하고, 이랜드 상품에 대한 불매 운동을 펼치겠다며 전면전을 선포했다. 장대 같은 폭우 속에서 눈물 반, 빗물 반이 된 모습으로 목이 터져라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던 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의 절규가 귀에 쟁쟁하다.

“혹시 길을 가다 우리의 투쟁 현장을 보시거든 외면하지 마시고, 희망의 말씀이라도 해주세요. 이것은 우리 모두의 투쟁입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보이니까요.”

태그:#홈에버, #비정규직, #정규직, #여성,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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