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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 오후 경기도 광주 특전교육단에서 간부 226명, 사병 343명 등 총 569명으로 구성된 자이툰부대 6진 1차 교대병력 환송식이 열렸다. 하루전인 27일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인해 한국군이 월남전 이후 처음 전사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여서 환송식은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지난 2월 28일 오후 경기도 광주 특전교육단에서 간부 226명, 사병 343명 등 총 569명으로 구성된 자이툰부대 6진 1차 교대병력 환송식이 열렸다. 하루전인 27일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인해 한국군이 월남전 이후 처음 전사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여서 환송식은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국이 이라크 정부와 의회에 이 법안을 반드시, 빨리 통과시키라고 대대적으로 압력을 가한다.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이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미국이 자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 총리직에서 밀려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라크 내 대부분의 정파와 종파가 이 법안에 반대하거나 껄끄러워한다. 이 법안은 바로 '석유법'이다.

2003년 미국이 대량살상무기 제거와 민주주의를 빙자하여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세계의 양식있는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한 전쟁의 진짜 목적은 중동지역 패권과 석유였다. 전쟁 초반부터 미 부통령 체니와 끈끈한 연결고리를 가진 핼리버튼이 몇백억 달러 규모의 군수계약을 따냈다는 소리로 떠들썩했다.

그리고 현재 어떤 형태로든 장기주둔을 모색 중이라는 미국이 이라크 석유를 통한 경제적 이익에 눈독 들이지 않을 리 만무하다. 그런 가운데 부시 행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법안이 이라크 석유법이다.

석유법은 미국과 영국의 이해관계를 위해 고안된 법이다. 처음부터 미국 정부가 고용한 미국 컨설팅회사 베어링포인트의 도움을 받아 법안을 작성하고(물론 처음부터 영문으로 작성했다), 석유메이저와 국제통화기금(IMF)에 넘겨 총 8개월 동안 검토한 뒤 이라크 정부에 넘겼다. 그리고 지난 2월 이라크 내각의 승인을 받아 이제 의회 승인절차를 남겨놓고 있다. 아무리 점령군 치하라지만 법 하나를 만드는 과정이 이렇게 철저히 외세의 손 안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을까.

'석유 채굴권' 앞으로 32년 동안 서방 다국적 기업에

미국이 겉으로 내세우는 석유법의 내용은 '석유수입 균등 배분'이다. 이라크 석유 수입을 인구 비례에 따라 18개주에 골고루 나눈다는 것으로, 지난해 10월 수니파 의원들의 반발과 대거 불참 속에서 통과된 이라크 연방제법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여기까지만 놓고 보더라도 이해관계와 정치적 견해가 상충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쿠르드 자치정부는 원유 개발과 수출에서 독자적 권한을 행사하길 원하며 현재 이라크 정부의 핵심세력인 시아파는 중앙정부의 통제권을 강조한다. 연방제에도 반대했던 수니파는 석유법 초안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이 많다.

그런데 석유법의 심각한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석유자산 채굴권과 생산권을 최대 32년 동안 서방 다국적 기업에 넘기는 것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이라크 석유산업을 정상화한다는 명목으로,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지하고 대신 투자를 한 외국기업이 석유를 가져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법안에서는 석유 메이저들이 투자비를 회수할 때까지 이익의 75%를 가져갈 수 있게 하고 그 이후에는 20%의 이익을 보장한다. 20%라는 비율만 해도 국제 관행보다 훨씬 높은 수치일 뿐더러, 75%라는 이윤 보장율은 중동 지역의 다른 나라들이 체결하는 계약의 7배에 달한다. 게다가 이윤 보장 계약은 일반적으로 석유 탐사나 추출이 특별히 어려운 지역에서 체결하는데, 이라크의 경우는 상황이 정반대이다. 석유 생산비용은 배럴당 1달러에 불과하지만 국제시장 판매가격은 배럴당 60달러로 조건이 매우 좋다.

이 법이 시행될 경우 이라크에 매장된 석유의 19%만 국영회사 관할로 남고 나머지 81%는 외국기업의 '투자'에 노출된다는 예측도 있다. 결국 엑손모빌(Exxon/Mobil), 셰브론텍사코(Chevron/Texaco), BP(BP/Acomo), 셸(Royal Dutch/Shell)과 같은 대규모 정유회사는 힘들이지 않고 남의 나라 자원으로 폭리를 취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가히 사상 최대의 석유수탈 음모라 할 만하다. 물론 미국이 이야기하는 이라크의 '안정화'가 요원해 보이는 조건에서 이러한 음모가 과연 현실화될 것인지, 언제쯤 가능한 일인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무엇보다 가슴아픈 것은 이라크 민중들은 석유자원이 풍부한 나라에 살면서도 그 혜택을 별로 못 누리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이라크인들은 전쟁의 피해는 물론 빈곤, 물자 부족, 전기와 수도 문제 등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고생을 하고 있다. 석유 공급량이 부족해서 주유소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도 자주 볼 수 있다고 한다.

석유 때문에 파병 연장? 정부의 착각

그런데 한국에서도 자이툰부대 주둔 연장을 위해 '석유'를 핑계로 동원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대표적으로 국방부 산하 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자이툰부대가 내년에도 주둔해야 쿠르드 자치정부의 유전개발에 참여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5월 31일 "이라크서 석유채굴권 확보 위해 자이툰 파병 연장해야"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국방연구원의 제안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그들의 제안이란 첫째 "한국 기업이 이라크에서 더 많은 비즈니스 활동을 벌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야 한다", 둘째 "장기적으로 이 지역에서 석유 채굴에 대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이툰 부대의 파병이 연장돼야 한다"등이다.

한 마디로 미국의 전쟁을 거들면서 자원 수탈에서도 한 몫 챙길 수 있으면 1년쯤 더 있어도 되지 않느냐는 논리이다. 미군의 저항세력 소탕작전과 분열공작에 이라크 민중들이 피를 흘리건 말건, 이라크 국민의 10분의 1이 이미 난민으로 전락했건 말건 비즈니스와 석유 채굴권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천박하고 반인륜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기회'와 '기득권' 운운하지만 정작 현실적인 근거를 대지도 못한다. 현지의 한국 기업은 자이툰부대 때문에 오히려 활동에 심한 제약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리지 않았던가?

석유는 이제 주둔 근거를 완벽하게 상실한 자이툰부대 파병을 어떻게든 연장하려는 세력이 마지막으로 대는 핑계에 불과하다. "미국의 자이툰 주둔 연장 요청"이라는 제목을 단 <조선일보> 6월 15일자 사설만 보아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일보>도 가끔은 현실을 인정할 줄 아는 것인지, 사설은 지금까지 자이툰부대의 주둔기한이 33개월, 파병 연인원이 약 1만 7000명, 국방예산만 4000억원이라며 숫자를 줄줄이 나열한다. 이라크 주둔 외국군들이 너도나도 철수를 결정했거나 병력을 줄일 예정이라는 소식까지 전한다. 심지어는 "이제 누구도 자이툰부대가 임무를 완수했다는 데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라고도 이야기한다. 이쯤되면 이 사설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해진다. 끝부분을 읽어 보자.

한국국방연구원 등에서는 자이툰 부대가 연말에 철수할 경우 한국기업들이 이라크 석유채굴권 확보와 전후 복구사업 진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일부 경제 부처도 비슷한 의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이툰 부대의 주둔이 지나치게 장기화되는 것도 안 되지만, 자이툰 부대원들이 흘린 땀이 헛된 일이 돼서도 안 된다. 신중하고도 지혜로운 결정이 필요한 때다.

그렇다. 말을 빙빙 돌려가며 "신중하고도 지혜로운 결정"을 당부하는 것이 고작이다. <조선일보>조차도 지금에 와서 자이툰부대가 더 주둔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차마' 못 꺼낼 정도인 것이다.

더구나 지난해 말에는 더 이상의 기한 연장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까지 한 바 있다. 지난 4년 동안 듣도 보도 못한, 그다지 현실적이지도 않아 보이는 석유 이야기로 파병 문제를 어떻게 해 보려는 생각이라면 그것은 정부의 오만한 착각이다. 한 번 속지 두 번은 속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puaam)에도 올렸습니다.


#이라크#자이툰#파병#석유#채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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