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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둥이> 겉그림.
ⓒ 봄봄출판사
초등학교 저학년들 위한 유년동화 <순둥이>가 봄봄출판사에서 나왔다. 글쓴이는 김일광 선생님이고, 그린이는 김재홍 선생님이다.

화가 김재홍은 인간과 환경을 주제로 한 그림을 주로 그리고 있으며,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로 에스파스 앙팡상을 <고양이 학교>로 앵코립티블상을 받았다. 그리고 책날개에 기록된 동화작가 김일광의 소개가 특이하다.

"포항의 형산강이 보이고 영일만이 넘실거리는 '섬안'이라는 마을에 태어나 자랐습니다. 지금도 형산강과 영일만을 이웃하며 살아가는 걸 보면 강이나 바다하고는 참 인연이 깊은가 봅니다. 지금껏 쓴 동화도 바로 형산강과 바다가 들려 준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앞으로도 바다와 강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 합니다. 그들이 내어주는 것조차도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차답니다. 지금까지 낸 책으로 <아버지의 바다> <말더듬이 원식이> <물새처럼> <외로운 지미> <따뜻한 손> 등이 있습니다."

출신 대학이나 등단 잡지, 수상한 문학상, 근무처를 다 생략하고 자신의 삶과 문학적 지향을 소박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밝히면서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이런 데서 우리는 동화작가 김일광의 성품과 동화<순둥이>이의 내용을 얼핏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동화작가 김일광과 같은 지역, 같은 문학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오늘의<포항문학>을 있게 한 포항문학의 산 증인이자 포항문단의 어른이다. 책 내지에 "이승엽에게, 2007년 봄날, 김일광 아저씨가"라고 사인한 동화 <순둥이>를 5학년인 내 아들에게 건네기 전에 내가 먼저 읽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동화작가 김일광의 열렬한 독자였으니, 그가 풀어놓은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마음의 무늬를 가만히 그려보는 즐거움을 놓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화<순둥이>는 착한 순둥이가 자라서 어미가 되고, 그네가 낳은 새끼 강아지들을 다른 집으로 모두 떠나보낼 때까지의 과정을 작가 특유의 깊은 안목과 서정적인 문체로 담담하게 펼쳐놓고 있다. 그것은 어미가 자식들을 낳아 기르고 바깥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일의 슬픔과 애틋함과 꼭 같은 것이다.

어릴 때부터 집에 데리고 와 키우고 있는 아저씨와 순둥이가 나누는 대화로 동화의 중심 이야기가 펼쳐진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거나 무슨 큰 소리라도 들리면 얼른 숨어버리는 겁쟁이 순둥이를 아저씨는 좀 못마땅해 하고, 혹시 마음속으로 벙어리는 아닐까도 생각한다.

"좀 짖어 봐."
쥐똥나무 밑에서 천천히 기어 나오는 순둥이에게 아저씨가 말을 붙였습니다. 젖먹이 때부터 순둥이는 좁은 틈이나 작은 나무 덤불 밑에 숨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 곳에 있으면 왠지 안심이 되고 편안했나 봅니다.
<꼭 짖어야 해요?>
"그럼, 그래야지."
<개라고 꼭 짖어야 한다는 법이 어딨어요.>
"법은 없지만 그래도 짖어야…."- 10쪽

<짖을 일이 있어야지요.>
순둥이는 양쪽 귀까지 뒤로 눕히며 그렇게 대꾸했습니다. 곰곰이 따져 보아도 크게 짖을 일이 없었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나 나비를 보고 짖을 수는 없잖아요. 낯선 개가 대문을 밀고 들어와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습니다. 새들이 제 먹이를 물어가도 턱을 땅바닥에 대고는 슬그머니 눈감아 주었습니다. 심지어 도둑고양이가 담 위를 어슬렁거려도 그냥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런 게 다 짖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 23쪽


좀처럼 짖지 않던 순둥이는 '지나가는 사람이나 나비를 보고 짖을 수는 없잖아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저씨에게 '짖을 일이 있어야지요'라고 한다. 그러던 순둥이가 새끼를 놓고 그 새끼가 위험에 빠져있을 때 목숨을 걸고 악을 쓰며 울부짖고 있다. 강렬한 모성애의 발로다. 어찌 보면 우리 사람들은 그렇게 악을 쓰며 싸울 일도 아닌데 터무니없이 남을 헐뜯고 싸우고 하는지도 모른다.

순둥이는 새끼 4마리를 낳았다. 덩치가 좋고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첫째 튼실이, 입이 무척 까다롭고 앙상궂은 둘째 떼쟁이, 엉뚱할 정도로 호기심 많은 얼룩이, 겁이 많은 겁보이지만 하늘 올려다보기를 좋아하는 막내 희동이가 그들이다.

이들이 아저씨 집 마당에서 뒹굴며 노는 모습들은 우리 인간들의 삶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젖을 뗄 만큼 새끼들이 성장하자 아저씨는 이들을 전부 집에서는 기를 수 없어 하나 둘 차례로 다른 집으로 떠나보낸다. 이럴 때마다 아저씨를 바라보며 '꼭 보내야 해요? 안 보내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어미 순둥이의 젖은 눈빛, 그 강렬한 모성애를 잊을 수가 없다.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생명의 법칙이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러니까<순둥이>는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인 개를 등장시켜 부모와 형제 사이의 삶, 세상살이가 어떤 것인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동화이다.

이튿날
희동이는 바다가 보이는 하얀 집으로 떠났습니다. 순둥이는 한나절 내내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좁은 문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희동이도 낯선 집에서 하늘을 보고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늘 가득히 희동이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튼실이, 떼쟁이, 얼룩이도 환한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끄응 끙.>
순둥이는 다시 소리를 깊이 삼켰습니다.
하늘은 참 맑았습니다. - 61쪽

동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마지막 문장 "하늘은 참 맑았습니다"라는 반어적 표현이 동화의 감동을 배가시키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순둥이>는 김일광 선생님의 실제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를 바다와 하늘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영덕 바닷가 언덕배기 어느 집에 데려다 놓고 온 슬픔을 이 한 편의 동화에 담고 있다. 이는 떠나보낸 그 어린 강아지에게 보내는 송가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 '이종암의 책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순둥이

김일광 지음, 김재홍 그림, 봄봄출판사(2007)


태그:#김일광, #봄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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