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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어디 있니?> 글 : 김숙분 / 그림 : 정림
<여우야 여우야 어디 있니?> 글 : 김숙분 / 그림 : 정림 ⓒ 가문비 어린이
'여우' 하면 어떤 단어가 생각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우'란 말을 들었을 때 '꾀가 많다' '얄밉다' '눈치가 빠르다' '구미호' 이런 말을 떠올립니다. 주로 학생들이 생각하는 말들입니다.

그럼 어른들은 어떨까요. 옛날 어른들은 약삭빠른 사람을 지칭할 때 '백여시' 같다는 말을 주로 사용했어요. 백여시란 단어는 나이 든 여우처럼 능글맞고 교활하고 눈치 빠른 사람에게 쓰는 부정적인 말입니다.

그러나 '아기 여우'를 주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말하라 하면 전혀 다른 답이 나온답니다. '귀엽다' '부드럽다' '꼭 안아주고 싶다' 등 주로 친근한 단어들입니다.

사실 여우는 우리 민족과 친근한 동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무서운 존재로 등장하는 동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렸을 땐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 잠 잔다 / 잠꾸러기 /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 세수한다 / 멋쟁이 /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 밤 먹는다 / 무슨 반찬? / 개구리 반찬 / 죽었니? 살았니? / 죽었다 (또는) 살았다" 하며 여우놀이 같은 노래를 부르며 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의 간을 빼먹는다는 여우의 이야길 들을 땐 온 몸이 오싹해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우야 여우야 어디 있니?>(김숙분 / 가문비 어린이)에 나오는 여우는 무서운 여우가 아닙니다.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람을 그리워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눈을 주어 세상을 보게 한 착하고 여린 여우입니다.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아기 여우

숲속에 엄마 여우와 아이 여우가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엄마 여우와 아기 여우는 먹이를 구하러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도끼를 든 나무꾼을 만나게 됩니다. 나무꾼을 만나게 된 엄마 여우는 깜짝 놀란 아기 여우를 안심시키며 주문을 외어 참나무로 둔갑을 합니다.

"스릉 스릉 흥흥, 바랑 바랑 흥흥!"

엄마 여우가 외우는 주문도 참 재미나게 표현되었어요. 나무꾼은 잎이 무성한 참나무가 여우가 둔갑한 것인 줄도 모르고 나무에 기대어 스르륵 잠이 듭니다. 아기 여우도 엄마 품에 안기어 잠이 듭니다. 엄마 여우는 나무꾼이 잠에서 깨어 갈 때까지 그렇게 서 있습니다. 나무꾼에게서 전해오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의 느낌을 느끼면서.

참나무로 변한 엄마 여우는 나무꾼을 놔두고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나무꾼을 배려하는 마음에서에요. 사실 요즘 우리 사람들도 자기 욕심이나 어떤 위기 앞에서는 남몰라 하는데 엄마 여우는 그러지 않았어요.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이에요.

며칠 후 엄마 여우와 아기 여우는 사람으로 둔갑하여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갑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젊은 새댁과 아기가 되어서요. 사람들의 음식을 먹어본 아기 여우는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그런 아기 여우를 엄마 여우는 걱정합니다. 여우가 사람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기 여우는 엄마 여우가 먹이를 구하러 간 사이 마을에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자주 듣던 여우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과 만나게 되고, 아이들은 아기 여우를 장님인 재동이 아저씨에게 갖다 줍니다. 재동이 아저씨의 보살핌을 받으며 함께 살지만 결국 아기 여우는 엄마 여우를 따라 숲으로 갑니다.

그런데 아기 여우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재동이 아저씨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자신을 가족처럼 생각한 재동이 아저씨를 혼자 두고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재동이 아저씬 앞을 못 보는 장님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기 여우는 엄마 여우한테 재동이 아저씨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자 엄마 여우는 누군가가 아저씨에게 눈을 줄 수 있어야 눈을 뜰 수 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눈 이식 같은 겁니다.

재동이 아저씨 집에서의 마지막 날 밤, 아기 여우는 결심합니다. 자신의 두 눈을 아저씨에게 주기로요. 아저씨가 잠든 사이 아기 여우는 자신의 눈을 주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기다리는 엄마 여우의 흐느낌 소릴 들으면서요.

새벽녘이 되어도 간간이 엄마 여우의 흐느낌 이어졌습니다. 어느 새 재동이 아저씨는 잠이 든 것 같았습니다. 아기 여우는 이불에서 빠져나와 똑바로 앉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간절히, 아주 간절히 재동이 아저씨와 자신의 눈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스릉 스릉 흥흥, 바랑 바랑 흥흥!’

아기 여우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동이 아저씨가 볼 수 있게 될 것을 생각하니 기뻤습니다.

주문을 외우자 아기 여우의 눈은 점차 멀어져 갔습니다. 잠시 아무것도 안 보이게 된 아기 여우는 밖으로 나옵니다. 잠시 후 아기 여우의 울음 소릴 들은 엄마 여우는 아기 여우에게 달려옵니다. 아기 여우의 모습을 본 엄마 여우는 가슴이 미어짐을 느끼며 아기여우를 등에 태우고 집에 돌아옵니다. 그리고 자신의 한 쪽 눈을 아기여우에게 줍니다.

<여우야 여우야 어디 있니?>는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읽는 동화입니다. 어른들은 이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놀이를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인간과 여우의 사랑 이야길 통해 진정한 사랑이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타인을 위한 마음이란 걸 배우게 될 겁니다.

현대인은 물질의 풍요 속에 살면서 순수한 그 무엇을 잃고 삽니다. 그리고 자연은 함께 하는 존재가 아니라 정복의 대상이고 파괴의 대상으로 봅니다. 그렇게 인간에 의해 파괴된 자연은 이제 슬픈 목소리로 울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살아가던 여우도 호랑이도 이젠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여우, 호랑이 같은 동물들과의 이야기도 더 이상 들을 수 없습니다. 전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은 모처럼 이 짧은 동화를 읽으면서 유쾌한 즐거움과 진한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면서 말입니다.

여우야 여우야 어디있니?

김숙분 지음, 정림 그림, 가문비(어린이가문비)(2007)


#여우야 여우야 어디 있니#김숙분#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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