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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산골 마을, 시간도 멈춘 듯 고즈넉한 풍경...
조용한 산골 마을, 시간도 멈춘 듯 고즈넉한 풍경... ⓒ 이현숙
그런데 경주를 가야겠다 맘먹으면서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낸 민박집에 호기심이 생겼다. 유기농 농사를 짓는 조용한 산동네인데, 자연경관도 공기도 아주 좋다는 설명에 구미가 당긴 것이다. 쾌적하고 편안하기는 특급호텔보다 민박집이 낫다는 내 고집에 힘입어.

감포 가는 길, 추령터널을 지나 첫번째 버스정류장에서 지나온 길로 0.8km. 그리고 산 쪽으로 1km를 더 들어가야 하는 곳이라는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걸어서 가기는 좀 벅찬 거리. 친구의 마음이 어떤지 슬쩍 떠보았다. 오우케이. 단번에 승낙. 친구 차로 찾아가보기로 했다. 대로에서 나와 반 바퀴 돌아 산으로 올라가는 길. 눈앞에는 구불구불 길이 이어지는데 동네는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는다. 헌데 첩첩산중에 길은 잘 닦여져 있다.

친구는 운전대를 잡고 연신 탄성을 지른다. 아니! 경주에 이런 곳이 있었어. 어떻게 이런 산속 길을 이렇게 잘 닦아 놨어. 탄성에도 차는 잘 나간다. 꼬불꼬불 오르던 길이 내리막길로 이어지다가 다시 올라간다. 그리고 드디어 마을이다. 산골짜기에 콕 틀어박혀서 밖에서는 보이지도 않던 동네가 소박한 모습을 드러낸다. 사뿐히 언덕으로 올라가자 민박집 표시가 아래로 나 있다.

황토로 지은 일자 집
황토로 지은 일자 집 ⓒ 이현숙
옛날 식으로 꾸며진 방 내부
옛날 식으로 꾸며진 방 내부 ⓒ 이현숙
황토로 지은 일자 집이다.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옆집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면서 반색한다. 그리고 자고 간다는 말도 예약을 하고 왔다는 말도 안 했는데 집을 보라며 친절하게 안내까지 해 준다. 우리는 아, 이 마을은 모두 이렇게 친절한가 보다 이웃집 아주머니까지, 하면서 마루 위로 올라가 이 방 저 방 방문을 열어본다.

난 순 시골사람 기질이라 친환경적인 것, 즉 옛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내 눈을 단번에 현혹시키는 방이다. 예전에 장판을 바르고 나서 마르면 콩댐을 하던 그 방바닥에다 벽에도 황토가 발라져 있다. 방을 다 열어 보니 몇 개는 방만 있고, 몇 개는 부엌과 욕실이 딸려 있다.

쪽마루에 앉아서 앞을 바라보아도 좋고 마당에 서서 뒤를 바라보아도 좋다. 앞 논에는 우렁이가 산단다. 해충도 잡아먹고 잡초도 뜯어 먹으면서. 또 앞마당 끝으로 항아리가 여러 개 놓여 있다. 된장을 직접 담가 판매도 한다는데 아주 맛있더라며 아까 그 아주머니가 말한다. 그러고 보니 이 아주머니 옆집 아주머니가 아닌 게 확실. 손님이란다. 남편의 병환 때문에 이 집에서 장기간 머물고 있는.

누구나 편안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사랑방
누구나 편안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사랑방 ⓒ 이현숙
마당 우측에 있는 이 집에서는 토,일요일에만 두부를 해서 판다.
마당 우측에 있는 이 집에서는 토,일요일에만 두부를 해서 판다. ⓒ 이현숙
난생 처음 본 석류꽃, 나는 마당 옆에 있는 이 고운 석류꽃에 반했다.
난생 처음 본 석류꽃, 나는 마당 옆에 있는 이 고운 석류꽃에 반했다. ⓒ 이현숙

구경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집 첫머리에 있던 개방된(문이 없는) 방으로 들어갔다. 사랑방과 정자를 절충해 놓은 공간이랄까. 아무튼 찐득찐득한 더위에도 시원하고 편안했다. 이 아주머니, 우리가 앉자마자 음료수를 주신다. 우린 공짜인 것 같아 미안해하면서도 받아 마셨다.

주인도 없는 집에 와서 친절한 안내로 집구경도 하고 좋은 공기도 마시고 편히 앉아 쉬기도 하는데 거기에 음료수까지. 마음이 불편해지려는 찰나, 우리 마음을 알아챘는지 슬그머니 주인 전화번호가 적힌 말판을 뒤집어 보여준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주인이 한 술 더 뜬다. 자기가 없더라도 음료수도 마시고 커피도 타서 마시면서 마음껏 쉬었다 가란다.

참 요새 세상에도 공짜가 있다니. 우리는 그 말만 믿고 그 시원한 방에서 늘어졌다. 그즈음 우리를 안내하던 아주머니도 슬그머니 자리를 비운다. 난, 참, 과분한 대접에 감동, 마음까지 흐뭇해졌다. '아직도 이런 마음을 가진 분이 있구나' 하다가, 아니지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제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거지' 생각하니 기분은 최상.

돈, 돈, 하면서 앞뒤 돌아볼 겨를 없이 달리다가 이러다간 정신이 멸망할 것 같다.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 조만간 모두 전후좌우 살피면서 천천히 쉬었다 가자 하는 식으로 바뀔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아무튼 아주 훌륭한 마음에 감동 받아 편안한 집에서 기분 좋게 한 두어 시간 잘 쉬었다 왔다.

돌아오는 길, 이번에는 경주 사람 친구가 잘 아는 카페를 보여주겠단다. 길이 많이 달라져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도착. '마리오 델 모나코'라는 카페로 들어갔다. 들어가 앉자마자 건장하게 생긴 남자가 물컵을 가져 온다. 그런데 이 남자 한국사람 같지 않은 얼굴이다. 맥시코나 남미 쪽 사람 같다.

카페 '마리오 델 모나코' 전경
카페 '마리오 델 모나코' 전경 ⓒ 이현숙
친구가 제법 잘 아는지 말이 오가고 난 좀 멋쩍어하며 국적을 묻는데 한국사람이란다. 게다가 성악가란다. 머리는 뒤로 꼬아 땋아서 착 붙였고 청년처럼(나이는 모르지만)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 좀 독특해 보인다.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문화센터에도 나가고 방송국에도 나간다는데. 물론 콘서트도 한단다. 여기서도 간단하게.

그는 예술가도 수입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카페를 차렸다고 한다. 나도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끄덕. 혼자 운영한다는데 맥주도 맛있고, 통감자 구이도 제법 맛있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그는 급하게 카운터를 지나가 천장에 돌돌 말려 올라가 있던 자신의 사진 휘장을 끌어내린다. 그리고 자신은 휘장 옆에서 씩 웃으며 포즈를 취한다.

연출력도 뛰어난 주인장 '성악가'
연출력도 뛰어난 주인장 '성악가' ⓒ 이현숙
까페 안에서 보이는 풍경...
까페 안에서 보이는 풍경... ⓒ 이현숙

와우, 관객을 위한 연출도 할 줄 아는 성악가! 나는 굿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었다. 나보다 나은 그의 세상 사는 방법을 칭송해 주는 의미였다. 내가 조심스럽게 물어본 결혼에 대한 대답은? 했다며 당당히 대답.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더니, 기껏 가게 앞에 세워진 오토바이와 했단다.

바로 앞이 분황사 뒤편이고 천마총 부근이라니까, 난 경주까지 갔다가 유적지 뒤꼭지만 본 셈이다. 그러나 경주의 속살을 은밀히 만져보고 온 것 같아 기분은 아주 좋았다.

바야흐로 여름휴가의 계절이 돌아왔다. 너무 여러 곳을 찾아다니느라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기보다,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심신을 쉬어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넉넉한 인심에 취해 마음의 여유도 찾고 느리게 사는 방법도 연습해 본다면 정말 멋진 여름휴가가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제가 다녀온 민박집 이름은 초당방이고, 동해바다는 자동차로 2, 30분 정도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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