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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인민대회당 전경. 2년여에 걸친 논란 끝에,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노동계약법이 표결, 통과됐다.
베이징 인민대회당 전경. 2년여에 걸친 논란 끝에,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노동계약법이 표결, 통과됐다. ⓒ 모종혁

허울뿐인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이 시행된다.

6월 2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人民大會堂)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상무위원회 28차 회의에서 노동계약법(勞動合同法)이 표결, 통과됐다. 이날 오후 4시에 열린 기자회견 석상에서 신춘잉(信春鷹) 전인대 법제위원회 부주임은 "상무위원회에 참석한 대표 146명 가운데 단 한 명의 기권을 제외한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어 노동계약법 초안이 통과됐다"고 발표했다.

1995년부터 시행된 노동법을 대체하는 노동계약법은 고용안정을 위한 장기고용 강화, 노조의 노동자 권익 보호 기능 강화, 노동자 해고 요건 강화, 노무 파견 형태의 고용 규제, 노동계약 이행 관련 처벌 규정 강화 등 중국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면서도 정작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소홀했던 중국이 이제야 제대로 된 노동 관련 법률을 제정한 것이다.

리판(力帆)자동차 생산조립라인. 노동계약법에 대한 중국 기업계의 반발은 거셌다.
리판(力帆)자동차 생산조립라인. 노동계약법에 대한 중국 기업계의 반발은 거셌다. ⓒ 모종혁

외국자본 유치, 과잉노동력으로 노동자 희생만 강요

개혁개방 이래 중국은 외국자본의 투자 유치를 목표로 오랫동안 노동자의 법적 보호를 등한시했다. 농촌에서 발생한 과잉노동력은 사용자가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는(强資弱勞) 노동시장을 형성해 노동자의 권리 침해가 숱하게 자행됐다.

1994년 제정된 노동법은 철저히 기업경영의 효율성에 초점을 두고 노동자의 권리 행사를 제한했으며 사용자의 이익을 담은 내용이 주를 이뤘다. 최소한의 법적 보호마저 침탈당한 중국 노동자들은 단체행동으로 맞서, 노동쟁의 건수는 1998년 9만3649건에서 2005년 31만3773건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중국 노동쟁의 건수 추이.
중국 노동쟁의 건수 추이. ⓒ 대한상공회의소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위시한 중국 4세대 정치지도자들의 정책 목표 전환은 노동계약법 제정에 영향을 줬다. '조화로운 사회 건설'의 기치를 내건 현 중국 정부는 기존의 선부론(先富論)에 입각한 불균형 고도성장 위주의 정책에서 공부론(共富論)에 입각한 균형성장과 분배, 형평을 강조하고 있다.

해마다 10%에 가까운 고도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단기고용 관행과 임금체불, 무단해고, 사회보장제도 미비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버려진 노동자들의 불만은 중국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불만과 사회불안 요소를 해소코자 이번에 중국 정부에서 불평등한 노동시장 및 법률 환경에 메스를 댄 것이다.

중국 법률 및 법규 제·개정 추이.
중국 법률 및 법규 제·개정 추이. ⓒ KOTRA 상하이무역관

노사협조주의에서 노동자 보호주의로 내디딘 제1보

이번에 통과된 노동계약법은 격렬한 산고 속에 간신히 탄생한 산물이다.

2005년 12월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발의된 뒤 2006년 3월 공개된 노동계약법 1차 초안은 각계각층에서 20만여 건의 의견이 접수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노동자 보호를 지지하는 목소리와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우려하는 기업 및 일부 지방정부의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한 것.

특히 일부 외국인 투자기업은 "중국을 떠나야 할 판"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실제로 법안이 심의되는 과정에서 한국상회를 비롯해 미국상공회의소, EU상공회의소 등 각국 기업단체는 노동계약법 제정을 반대했다.

노동계약법 초안 작성에 간여한 탕리 서남정법대학 교수는 "본래 노동계약법은 기존의 노동법을 상위법으로 하고 노동계약 부문만 보강하는 입법 형태였다"고 말했다.

탕 교수는 "중국 입법사상 처음으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대외에 공개되자 과도한 노동자 보호조항에 대한 국내기업과 외국인 투자기업의 반발이 거셌다"면서 "기업계의 의견을 일부 수용해 작년 12월 2차 초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법제일보>는 "노동법을 대체한 노동계약법은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권익침해 방지에 초점을 둔 것"이라며 "중국의 노동정책이 노사협조주의에서 노동자 보호주의로 전환하는 제1보"이라고 보도했다.

베이징 현대자동차 생산조립라인. 이번에 제정된 노동계약법은 중국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 현대자동차 생산조립라인. 이번에 제정된 노동계약법은 중국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 모종혁

경제 및 기업 관련 법제화에 정신없이 급페달

노동계약법 제정은 중국 산업과 기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저렴한 노동력과 세제 우대정책이라는 당근을 보고 진출한 외국인 투자기업이 받는 충격은 크다. 노동집약적 산업이 많은,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익명의 한 한국투자기업 대표는 "장기고용 의무화, 실습인력 및 파견근무에 대한 과도한 간여 등 이직이 많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중국 노무환경의 현실을 도외시한 법률"이라며 "지키기 어려운 규정을 내세워 경영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지난 몇 년 사이 탁상공론에 입각한 많은 외국인 투자기업 관련 법안들이 쏟아져 나와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라고 말했다.

중국 법률 및 법규 제·개정 추이.
중국 법률 및 법규 제·개정 추이. ⓒ KOTRA 상하이무역관

실제로 중국은 외국인 투자기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경제 및 기업관련 법제화에 급페달을 밟고 있다.

지난달 5일 한국은행 '해외경제정보'는 "중국은 작년 파산법을 개정하고 올해 들어서 물권법 제정, 기업소득세법 개정, 반독점법 심의 등 경제 및 기업관련 법률의 정비를 가속화하고 있다"면서 "중국에 진출한 기업에 세금부담 증가, 생산비용 상승 등 큰 부담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박한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상하이무역관 차장도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은 현재 입법혁명 중"이라며 "WTO 가입 후 한 해 평균 2만2000여건 꼴로 법률 법규와 지방정부의 규장을 제정하거나 개정했고 올 3월까지 새로 나오거나 수정된 것도 3832건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기업 관련 주요 법안 현황.
중국 기업 관련 주요 법안 현황. ⓒ 한국은행

값싼 노동력에 의존한 '묻지 마'식 투자의 종언

각박해지는 투자환경과 법률조건 속에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경영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작년 6월 대한상공회의소가 35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실태조사에서 55.1%가 경영환경이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앞으로 투자계획에 대해서는 96.7%가 현상 유지만 할 것이라며 임금상승(23.9%), 구인난(22.5%), 세제(10.2%), 과당경쟁(9.2%), 환율불안(7.8%) 등을 현지경영의 애로요인으로 꼽았다.

이태희 주중 한국대사관 노무관은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일련의 경제 및 기업관련 법제화는 중국 정부에서 노동자의 권익과 사회안전망을 확보해 노동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며 "깐깐해지는 정부의 노동정책과 의식이 높아가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직시할 것"을 주문했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바라보며 '묻지 마'식 투자와 진출을 하던 시절은 지난 셈이다.

현행 노동법과 노동계약법의 주요 조항 비교

구분현행 노동법노동계약법

서면 노동계약 체결

서면 계약 체결 원칙만 규정

-고용 후 1개월~1년 서면계약 체결 의무화

-1년 초과 시 무기한 노동계약 체결로 간주

-미체결 시 임금의 2배 배상금 부과

노동계약 변경

상호합의로 변경 가능

사용자-노동자 쌍방이 서명한 서면형식만 법적으로 유효

인력 채용

-

채용시 보증금 수취 및 신분증 보관 금지

실습 기간

최대 6개월까지 가능

-계약 기간에 따라 1~6개월 시용기간 설정

-실습 기간 중 해고 시 객관적인 입증 자료 필요

-약정 임금의 80% 및 최저임금 이상 지급

노동계약 해제 관련 경제보상금

근속 1년에 1개월분

-근속 1년에 1개월분 지불

-고수입자의 보상한도 제한 : 소재지 월평균 급여의 3배 및 12개년분

노무 파견

-

-파견노동자와 2년 이상 고정 기한 계약 체결

-파견노동자의 권익 침해 시, 파견업체와 사용업체에 연대 배상책임 부과

무기한 노동계약

10년 이상 근속 후 계약 갱신 시(쌍방 합의)

-노동자 요구 시 체결 필요 : 1) 근속 10년 이상 2) 연속 2회 고정 기한 계약 후 3회 계약 시

-위반 시 경제보상금의 2배 배상금 지불

위법 해고

원칙적인 배상 책임 규정

-노동자 희망 시 계속 고용, 원하지 않을 경우 경제보상금(연/1개월 급여)의 2배 배상금 지불

노동자 해고 절차

해고 조치 후 노조의 의견제출권 규정 

해고 조치 전 노조 사전통지 의무화 및 노조에 사용자 의견제출권 부여

노동자 측의 계약 해제

(기업 과실)

노동계약 약정 준수하지 않음(임금, 노동조건)

-사용자 측의 노동 계약 이행 하자 발생 시(임금 전액의 적기 미지불, 사회보험 미납부)

-경제보상금 지급 필요

해고 제한

-직업병환자, 산재환자

-질병, 부상의 치료 기간

-임신, 출산, 수유기 등

신규 추가 : 15년 이상 근무 및 퇴금연령까지 5년 미만인 자

인력 감원

감원 시 30일 전 노조 협의 및 노동당국 보고 필요

-20인(또는 전 직원의 10%) 이상 감원 시 30일 전 노조 협의 및 노동당국 보고

-인력 감원 허용 상황을 4가지로 제한

-감원 시 장기근속자, 생활곤란자 우선 잔류

파트타임노동

-

1일 평균 4시간, 1주 24시간 이내 시간급 보수 계산 방식의 노동 형식

 

ⓒ KOTRA 다롄무역관

#중국#노동계약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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