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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피리어와 미시건호를 잇는 갑문으로 수천 톤급의 화물선이 들어서 있다. 수면이 낮은 미시건호쪽 갑문이 닫히는 것이 선미뒤로 보인다.
ⓒ 김창엽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5개의 큼지막한 호수로 이뤄진 '오대호'가 있습니다. 직접 가서 보면 파도가 일고, 모래사장이 있고, 끝이 안 보이는 바다 같은 곳인데요. 5개의 호수를 다 합치면 수표면적이 한반도보다 훨씬 큰 곳입니다.

5개의 호수는 서로 갑문 시스템에 의해 연결되어 있습니다. 갑문은 운하의 핵심 장치로, 수천 톤급의 배들이 수면 높이가 다른 이들 호수를 오갈 수 있게 해줍니다.

미국에서 갑문다운 갑문은 오대호에만 있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닌데요. 지금은 역사의 장으로 사라져 버린 운하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배가 갑문을 드나들 때면 적잖은 구경꾼들이 모여듭니다. 아예 전용 관람석이 갖춰진 갑문도 있을 정도니까요.

한데 오대호를 포함한 물길에 의해 한때 미국이 마치 '섬' 마냥 4개로 육지가 갈린 나라였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날도 지도상으로만 보면 미국은 육지 기준으로는 크게 두 조각으로 이뤄진 나라라고 할 수 있지요.

동과 서 두 개의 땅덩어리로 미국을 갈라놓은 것은 미시시피와 그 지류인 미주리 강입니다. 미시시피의 하류 즉 뉴올리언스에서부터 이 강을 거슬러 올라다가 보면 미주리 강의 발원지가 국경 너머 북쪽의 캐나다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캐나다와 국경을 하나의 단절선으로 가정하면, 결국 미국은 동서의 면적이 거의 엇비슷한 두 조각으로 이뤄진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셈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대서양 연안의 뉴욕부터 태평양 연안의 엘에이까지 강을 건너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한데 지금은 두 조각인 미국이 네 조각의 육지로 나뉘었던 때는 20세기 초반까지였습니다. 네 조각으로 나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2개의 운하이었고요. 바로 시카고-뉴올리언스를 이어주는 운하와 뉴욕시와 버펄로를 이어주는 운하이었습니다.

▲ 오하이주 클리블랜드 근처의 폐기된 운하. 교통수단으로써 역할을 잃은 운하는 지나간 역사를 보여주는 구경거리로 한 몫을 하고 있다.
ⓒ 김창엽
먼저 뉴욕과 버펄로를 잇는 수계가 등장함으로써, 이 수계의 동쪽과 서쪽, 즉 대략 오늘날의 뉴잉글랜드와 대평원의 동쪽이 각각 한 덩어리씩 두 덩어리의 땅으로 나누어졌습니다. 또 시카고 뉴올리언스를 연결하는 수계부터 미시시피-미주리 수계까지가 한 덩어리로 남고, 미시시피-미주리 수계의 서쪽에서 태평양까지가 나머지 한 덩어리로, 모두 네 덩어리가 돼 버린 거지요.

이쯤 되면 지리에 밝은 분들은 뉴욕에서 뉴올리언스까지 배타고 운하와 강만을 이용해 내륙 쪽으로도 오갈 수 있었다는 점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 사이에 널려 있는 오대호가 서로서로 연결돼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날 배타고 뉴욕에서 뉴올리언스 간다면 두말할 것 없이 대서양을 타고 남쪽으로 항해하다 플로리다 반도를 돌아, 멕시코만에 들어선 뒤 뉴올리언스로 가는 코스를 말하는 것이지만요.

운하는 세상사의 부침처럼, 교통수단도 부침이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미국에서는 식민지 개척 초기 단단히 한몫을 했던 교통수단이 지금은 찬밥 신세를 넘어서, 아예 거의 잊혀버린 존재가 됐으니까요. 두말할 것 없이 도로와 철도, 해운과 항공 이 4개의 교통수단에 밀린 탓이지요.

미국이 물길로 네 조각, 다섯 조각으로 다시 나뉘는 날이 올까요. 운하가 부활한다면 틀림없겠지만, 오늘날 미국의 교통 시스템을 본다면, 가까운 장래에는 어렵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길거리에서 자면서 2006년 8월부터 네 계절 동안 북미지역을 쏘다닌 얘기의 한 자락입니다. 

아메리카 노숙 기행 본문은 미주중앙일보 인터넷(www.koreadaily.com), 김창엽 기자 스페셜 연재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의 블로그(http://blog.daum.net/mobilehomeless)에도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태그:#미국, #운하, #홈리스, #오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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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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