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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 AP=연합뉴스
프랑스 정치에선 자주 이변이 연출된다. 이달 중순 실시된 프랑스 총선 결과도 하나의 이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총선 결과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복잡한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모든 언론이 '푸른 물결(사르코지가 속한 대중운동연합의 색)' 현상을 대대적으로 예고한 것과 반대로, 이번 총선에선 2002년 시라크 대통령의 재선 직후 실시된 총선 때보다 좌파의 좌석수가 늘어났다.

대중운동연합이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 신중앙당(중도파인 프랑스민주연합에서 떨어져 나와 우파로 전환한 신당)의 도움 없이도 특정 사안을 의결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와 비교할 때(대중운동연합에 가장 긍정적인 여론조사에서는 577석 중 450 내지 500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됐다) 315석을 차지한 대중운동연합의 승리는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다른 우파까지 합치면 총 346석이다).

사르코지는 5월 16일 대통령에 취임한 후 '에타 드 그라스'(대통령 당선 직후 대중의 호의적인 반응이 지속되는 현상) 상태에 있는데 모든 언론이 이 사실을 국민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미약한 승리 거둔 우파, 지지부진한 좌파

그와 반대로 좌파는 모든 면에서 지지부진한 상태에 놓여있다. 세골렌 루아얄이 사회당 내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과 관련해 사회당의 주요 인물 사이의 불화만이 언론에서 주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사르코지 대통령 앞에는 탄탄대로가 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이들이 기대했던 상황대로 연출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정부에 뜻하지 않은 타격을 가했다.

이번 총선 결과 중 사르코지 정부에 가장 큰 타격을 준 것은 알랭 쥐페의 패배다. 1995년에서 1997년까지 시라크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맡았던 알랭 쥐페는 최근 사르코지 내각이 구성될 때 환경부 장관에 임명됐다. 환경부 장관은 내무부 장관 다음으로 중요한, 내각 2위에 해당하는 자리다.

그러나 보르도 시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알랭 쥐페는 보르도 총선에서 사회당 인물에게 패배했다. 이변이었다. 피용 국무총리는 총선에서 패배한 의원은 내각에 머물 수 없다고 밝혔고, 알랭 쥐페는 즉시 환경부 장관직에서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사르코지 대통령은 내각을 다시 구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19일 경제부 장관이던 보를루가 알랭 쥐페 대신에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 알랭 쥐페 전 프랑스 총리(마이크를 든 사람). 사진은 정당 불법자금 조달로 유죄판결을 받은 후인 2004년 2월 2일 보르도 시청 뜰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는 모습.
ⓒ AP=연합뉴스

대중운동연합이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함으로써 사르코지 대통령이 별 어려움 없이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원론적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총선에서 좌파 의석이 25% 증가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총선 1차 선거 전날 경제부 장관이던 보를루가 한 발언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반응이 이런 식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다.

보를루 장관은 정부가 '사회적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19.6%의 부가가치세가 부과되고 있는데, '사회적 부가가치세'라는 이름으로 부가가치세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국무총리는 사회적 보호를 위해 5% 정도 부가가치세율 인상을 고려하고 있는데 2008년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고용주들이 갹출했던 것을 부가가치세로 대치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국가에 많은 비용을 내야했던 고용주들의 부담을 줄이고 그 대신 모든 국민이 그 비용을 분담하자는 것이었다.

좌파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사회당 후보들이 내건 슬로건 중에는 "6월 17일, 24.6%의 부가가치세를 반대하는 투표를 하자"는 것이 있었다. 사회적 부가가치세를 반대하는 사회당에 표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사회당 대선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은 우파에게 많은 의석을 내줘서는 안 된다며, 1차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2차 투표에 참여해 달라고 강하게 호소했다.

'사회적 부가가치세' 발언으로 국민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눈치 챈 사르코지 대통령은 2차 선거가 있기 이틀 전에 "국민의 구매력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는 부가가치세 증가 방안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렇게 선언했음에도 프랑스 국민의 구겨진 기분은 펴지지 않았다. 당시 CSA 기관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60%가 이 정책에 반대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2차 선거에 불참한 사람이 1차 선거 때만큼이나 많았다는 것이다(프랑스 총선은 1차 선거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온 선거구에서는 당선자가 확정되지만, 그렇지 않은 선거구에서는 득표율 12.5% 이상의 후보들이 2차 선거를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기업주 부담 떠넘기려다 표 갉아먹은 우파

그러나 1, 2차 선거에 불참한 사람들의 성향이 같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2차 선거에서 우파가 압승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우파 시민들이 많이 불참했다면, 1차에 불참했던 많은 좌파 시민들은 2차에는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1차 선거에서 이미 100여명의 우파의원이 선출된 것에 비해 좌파의원은 단 한 사람만이 당선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좌파의석 증가 원인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다수 프랑스 국민의 관심을 자신에게로 끌어들이는 개인적 역량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러나 577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의 경우 많은 사람이 경쟁하기 때문에 대선 당시 사르코지처럼 카리스마를 국민에게 집중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후보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비록 많은 후보가 사르코지 선출에서 힘을 얻긴 했지만 말이다.

아니면 이런 해석은 또 어떨까? 그동안 사르코지 정부를 눈여겨봤던 국민에게 처음의 열광을 감소시킬만한 요소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새로운 것을 추구했던 국민이, 새로운 인물을 선출하긴 했어도 결과는 이전과 다를 게 없다는 결론을 얻은 것은 아닐까?

이는 마치 충동구매와 비슷하다. 어떤 물건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것은 그 물건 덕분에 삶이 달라질, 즉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물건을 손에 넣었어도 결국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구매한 후에나 확인되는 법이다.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사회당을 비롯한 좌파 정당은 다시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별로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당권 노리는 루아얄 "대선 당시 진보공약, 내 생각과 다르다"

▲ 사회당 대선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
ⓒ 로이터=연합뉴스
사회당에선 다들 권력싸움에 여념이 없다. 루아얄은 지난 20일 자신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것 중 '5년 동안 최저월급을 1500유로로 하겠다'는 것과 '주당 35시간 노동을 일반화하겠다'는 것을 자신도 믿은 바 없다고 발언했다. 대선 기간 동안 사회당의 정책을 어쩔 수 없이 대표하긴 했어도 그것이 루아얄 자신의 의견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함으로써 사회당과의 거리를 드러낸 것이다.

루아얄은 2차 선거 결과 직후 그간 동반자로 지낸 사회당수 프랑수아 올랑드와의 관계도 청산했다고 발표함으로써 공적, 사적으로 홀로서기에 나섰다. 루아얄이 23일 열린 사회당 전국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루아얄은 사회당보다는 자신의 지역구인 프와투-샤랑트 지역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루아얄은 사회당 사람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데, 동반자였던 올랑드의 당수 자리를 넘보고 있는 루아얄의 상황이 그리 좋진 않아 보인다.

사회당의 중요 인물이자 전통좌파인 장 뤽 멜랑숑 상원의원은 "우리에겐 (당내의) 쿠데타를 막을 책임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2년 대선에 출마할 사회당 후보를 지정하기 위한 당 대회를 올 가을로 앞당기자는 루아얄의 소망이 쉽게 이뤄질 것 같진 않다.

사회당과 연맹을 맺은 환경론자들의 상황도 별로 좋지 않다. 녹색당 의원인 이브 코셰는 당 해체, 새 정당 창설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이 제안은 24일 열린 녹색당 전국대회에서 채택되지 않았다.

이번 총선 결과 때문에 사르코지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개혁안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 의회에서는 조만간 사르코지가 내건 개혁안을 검토할 예정인데, 많은 프랑스인이 휴가를 떠나는 이번 여름에 될 가능성이 높다. 휴가를 떠나 국민의 저항력이 약해지는 여름을 이용하자는 게 정부의 계획인 듯하다. 우선 7월초부터 대학 자율화 관련 개혁안이 검토될 예정인데, 주요 당사자인 대학생과 교수의 반대 분위기가 벌써부터 조성되고 있다.

#사르코지#루아얄#알랭 쥐페#보를루#프랑스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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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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