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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해복 소장의 조기 퇴임식
ⓒ 김정혜
22일 오후 2시. 김포시 농업기술센터 2층 강당은 많은 인파로 붐볐다. 농업기술센터 최해복 소장의 퇴임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이날 퇴임식은 정년을 2년 미리 앞당긴 조기 퇴임식이었다.

속속 모여든 많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한결같은 한마디를 한다. '이런 훌륭한 사람이 이렇게 일찍 공직을 떠나는 것이 무척 아쉽다'고. 그래 봐야 고작 2년 앞당긴 퇴임이 뭐 그리 아쉬울까 싶기도 하지만 조기 퇴임의 이유를 들어볼라치면 그 아쉬움이 그저 인사 치례는 아닌 듯싶다.

1970년 9월 23일 농촌 지도사로 첫발을 내디뎠으니 올해로 공무원 생활 딱 37년째인 최해복 소장. 말단 농촌 지도사로 시작해 농업기술센터의 수장 자리까지 올랐으니 객관적으로 보자면 공무원으로선 가히 성공적인 인생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최해복 소장은 단언한다. 그리 성공한 인생은 아니라고. 왜?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 아쉬움이 그를 평생 허기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아쉬움이기에 그를 그토록 허기지게 했을까. 그것도 37년이라는 그 긴 세월 동안… 그것은 배움에 대한 허기였다. 이에 그 한을 풀고자 2년이나 앞서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최해복 소장. 예순을 코앞에 두고 배움이라는 고지를 향해 다시 출발선에 선 최소장을 만나 가슴 속 응어리와 그로 인한 삶의 또 다른 열정을 들어봤다.

▲ 이젠 하고 싶은 공부 실컷 할 수 있어 너무 좋다는 최해복 소장
ⓒ 김정혜
- 3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몸담았던 공직생활을 떠나는 마음이 어떤지.
"그야말로 시원섭섭하다. 시원하다는 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마음껏 공부만 한 번 해보는 게 꿈이었는데 이젠 그럴 수 있어 시원하고, 섭섭하다는 건 우리 농촌을 위해 아직 할 일이 많은데 그 일을 뒤로 하고 단지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 자리를 떠나는 게 무엇보다 아쉽다. 그리고 내 가족과 별다를 바 없는 직원들을 매일 볼 수 없다는 것도 섭섭하다."

- 정년퇴임이 2년이나 남았는데 서둘러 퇴임을 하는 건 왜인지.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이다. 하나는 공부이고, 하나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일을 하고 싶어서다. 이 일들은 꼭 해보고 싶은 일이거니와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들이다. 기왕이면 좀더 편한 마음으로 일찍 시작하고 싶어서이다."

- 예순 가까운 나이이면 오히려 하던 공부도 그만둘 나이가 아닌가. 그런데도 공부에 그렇게 미련이 많은가.
"아주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집에서 살았다. 친척살이라는 게 당연 서러울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다른 서러움은 다 제처두고라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공부할 수 없는 것이 제일 슬펐다. 그래서 고등학교도 남들보다 2년 늦게 그것도 간신히 졸업을 했다."

- 공무원 생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 학자금을 벌기 위해 친척집 사진관에서 일했다. 그때 농촌지도사 시험 공고를 보게 됐는데 아무래도 사진관보단 농촌지도사라는 직업이 더 안정적이고, 대학의 꿈도 빨리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시험을 보게 됐다."

- 그래서 대학의 꿈은 이루었나.
"농촌지도사 생활 4년만에 사표를 냈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사표를 내고 보니 내가 너무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 최해복으로선 그 길이 최선이라 확신할 수 있었지만 가장으로선 분명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첫아이가 막 돌을 넘긴 무렵이었는데, 그 아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가족들의 생계까지 내팽개치고 내가 가고자 하는 그 길이 가족들에겐 가시밭길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그래서 다시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됐는데 공교롭게 또 농촌지도사 시험이었고, 운명인지는 몰라도 내가 떠난 그 자리에서 다시 일을 하게 됐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난 뒤, 방송통신대학을 통하여 대학의 꿈을 이루게 됐다."

- 대학의 꿈도 이루었는데 무슨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는 것인가.
"대학 과정을 공부하면서 더더욱 깨닫게 되었다. 배움이란 건 정말 무궁무진하다고. 그리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학문을 하는 일임을. 공부를 하고 있을 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 몰랐고, 잠을 자지 않아도 졸리지가 않았다. 워낙에 과제물이 많았다. 눈 한 번 붙이지 못하고 밤을 새워 과제물에 매달렸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밤을 새우고 출근한 날이면 피곤한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정신이 맑았다."

- 지금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나.
"지금은 선문 대학원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글 교육을 할 수 있는 전문가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3학기를 마치고 2학기를 남겨 놓고 있다. 이 일을 계기로 사회복지 관련 공부에 좀더 전념해 볼 생각이다."

▲ 37년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며 잠시 눈시울이 붉어지는 최해복 소장
ⓒ 김정혜
- 그 공부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수년전, 몽골인 하나가 작업을 하다 팔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그때 그 몽골인이 우리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제대로 항의 한 번 못했고, 당연히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때 그 몽골인이 한국을 떠나면서 '반드시 한국에 복수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인격적인 대우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항의 한 번 못한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결코 좋은 인상으로 기억될 수 없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난다면 국가적으로도 치명적인 일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싶었고 그리하여 그들이 당당한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적으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다."

- 지금 하고 있는 공부와 관련하여 외국인 근로자들과 어떤 다른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 있나.
"매주 일요일마다 '부천 외국인 근로자의 집'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글 중급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 그렇다면 이제껏 한글을 가르친 외국인들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
"지난 12월.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글 말하기 대회'가 있었는데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온 핫산(31·남)이라는 친구가 대상을 받았다. 그 친구는 작업장이 있는 김포 석정리에서 부천까지 한주도 빠짐없이 한글을 배우러 다녔는데, 내게 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말 실력이 너무 형편없어 대회에 나가기가 영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어찌나 의지가 굳건한지… 일주일이 넘게 그 친구와 합숙을 하다시피 했다. 그 친구는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 가며 정말 열심히 했다. 그 결과 대상을 받았고 부상으로 상금까지 30만원 받았다. 그때 함께 얼싸안고 엉엉 울었다."

-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 외에 그들을 위한 또 다른 계획이 있는지.
"부천이나 고양, 파주 등지에는 '외국인 근로자의 집'이 있는데 김포에는 없다. 지금 김포에도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생산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김포 경제에 미치는 그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태다. 그들을 단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멸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 품으로 보듬어 안는 노력이 지금으로선 가장 필요할 때다.

그런 이유로 김포에도 제대로 된 '외국인 근로자의 집'을 하나 만들고 싶다. 그래서 그들이 온전한 인격체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돕고 싶다. 그리한다면 후일 그들이 이 나라를 떠나고서도 한국을 알리는 친선 대사의 몫을 톡톡히 하지 않겠는가."

- 하고자 하는 그 일이 사회적 환원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맞다. 나는 평생 김포시 공무원으로 살았다. 다시 말하면 김포 시민들이 우리 식구들을 먹여 살렸고, 내 자식들을 공부시켜 주었다. 김포 시민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내게 주었다. 이젠 내가 돌려줄 차례다.

김포를 위해서, 김포 시민을 위해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온전한 김포 사람이 되어 그들이 김포 시민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내가 김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퇴임 후,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살아오면서 지금껏 여행다운 여행 한 번 못 갔다. 이번엔 큰 맘 먹고 아내와 여행을 가고 싶다. 못난 남편 만나 평생 고되게 살아오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곁을 지켜 준 아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여행 한 번으로 다 갚아질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아내를 위해 근사한 여행 선물을 해주고 싶다."

얼마 전, 한심한 공무원들이 국민들의 분노를 산 일이 있다. 실제 출장을 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2년 동안 무려 47억 원이라는 출장비를 지급받은 서울시 성북구청 공무원들. 과장 26명이 한 달에 12차례 출장을 다녀온 것처럼 가장해 한 사람당, 적게는 190여만 원에서 많게는 530여만 원까지 출장비를 지급받은 것이다. 정말 몰염치한 공무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나라엔 바로 최해복 소장 같은 공무원도 있다. 2년 앞서 내디디는 새로운 출발의 길, 그 길을 응원하는 뜨거운 박수와 환호가 진정 아름답다.

태그:#최해복, #조기퇴임식, #김포시 농업기술센터, #외국인노동자,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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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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