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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죽간 박물관을 관람하고서 세 번째 답사지인 '몽산(蒙山)'으로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몽산은 산동성 10대 풍경 중의 하나에 속할 정도로 산수가 아름다운 곳으로 이름난 곳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공자 같은 성인도 감탄한 곳이며, 이백, 두보, 소식과 같은 시인묵객들이 자취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니, 몽산은 임기시내에서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며, 비교적 가까운 곳이라 여겼던 '제갈량기념관'은 임기시에서 기남(沂南)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다시 기념관으로 가야 한다고 하였다. 하루 동안에 두 곳을 모두 답사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몽산'을 가기로 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몽산가는 표를 사기 위해 무려 일곱 번 정도 자리를 옮겨가며 물어본 것 같았다. 임기 사람들이 하는 말을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해 더 시간이 걸렸다. 지금껏 답사하면서 임기처럼 방언이 심한 곳은 처음이었다.

아들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여 '엄마, 오늘 거기 꼭 가야 돼. 다음에 가면 안 돼?'라고 하였지만, 몽산이든 제갈량기념관이든 어디든 가야했기에 결국 표를 사들고 버스에 올랐다.

2시간 30분 만에 '평읍(平邑)'이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60원을 달라고 하는 택시기사와 흥정을 하여 45원을 주고 몽산까지 가기로 하였다. 평읍이라는 곳도 시골이지만 '몽산'으로 가는 길은 더 시골이었다. 요즈음 마늘과 양파, 감자가 많이 나오는 철인지 여기저기 출하하기 위해 내 놓은 물건들이 많이 쌓여 있었다. 검게 그을린 시골 사람들이 더러 길가에 앉아 과일을 팔고 있었다.

▲ 앞에 보이는 산이 몽산이다. 산을 앞에 두고 올라가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 조영님
몽산에 도착하니 오후 1시였다. 매표소 직원은 몽산을 등반하고 하산하기까지는 5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하였다. 예상했던 케이블카는 없었다.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차량을 이용하면 1인당 200원이면 된다고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오후에는 차량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오전이라면 모르지만 오후 1시에 등반을 하기에는 날씨도 무덥고, 하산하면 저녁이 될 것 같아 산행은 포기해야했다.

나는 산악인도 아니요, 산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산을 눈앞에 두고 올라가지 못하고 돌아서려니 여간 마음이 섭섭한 것이 아니었다. 산은 정상에 올라보아야 하고, 바다는 철썩거리는 물에 발이라도 담가 보아야 제 맛인데 그러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몽산에 올라 공자님을 떠올리고, 소식(蘇軾)의 시를 읊조려보려 했던 계획은 다음의 기회로 미루어야했다.

다시 임기시내로 돌아왔다.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을 둘러보고 서점으로 향했다. 임기 시내에는 택시 뿐 아니라 오토바이를 개조하여 뒷좌석에 두 사람이나 네 사람 정도 태울 수 있도록 만든 차량이 많이 있었다. 택시보다 안전하지는 못하지만 가까운 시내를 운행하기에는 가격이 저렴해서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비용은 대략 4원 정도이다.

▲ 임기시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오토바이 기사분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가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까 일부러 포즈를 취하고 환하게 웃었다.
ⓒ 조영님
순박해 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분의 오토바이를 이용하려고 가까이 갔는데 속이 매스껍고 구역질이 나려고 하였다. 세상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양치질을 해 보지 않은 것 같은 치아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누런 치아를 보지 않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불가능하였다. 입을 막고 제일 가까운 서점으로 가자고만 하고 얼른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인류는 건강을 위해 소금으로 이빨을 닦거나 요지로 이빨을 쑤시는 등의 작업을 이미 수 천 년 전부터 해왔는데 이 분은 왜 하지 않았을까? 내가 살아온 잣대로,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이 분을 재단하기에는 너무나 순박한 얼굴이었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상식은 상식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상식과 습관, 타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 낯선 이방인의 실존도 인정되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에 들러서 아들이 좋아하는 공룡 그림책과 만화 시리즈를 샀다. 아직 중국어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림과 만화를 보고 키득키득 웃는 아들이 재미있다. 서점을 나와서 다시 오토바이를 개조한 차량을 이용해서 '기몽호(沂蒙湖)'라는 큰 호수로 갔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아슬아슬하게 자동차 옆을 스쳐 지나가는가하면 신호등을 무시하고 질주해도 경적을 울리며 경고하는 자동차도 없다. 자전거 뒷자리에 올라앉은 것처럼 엉덩이가 들썩들썩 덜커덩덜커덩 하였다.

▲ 임기시내에 있는 '기몽호(沂蒙湖)'. 정말 호수일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크다.
ⓒ 조영님
시내를 관통하며 흐르는 '기몽호'는 호수가 아니었다. 누가 이렇게 커다란 물줄기를 호수라고 하겠는가? 지난번 제남에서 본 '대명호'의 큰 규모하고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다. 그렇지만 크기만 할 뿐 달리 볼 만한 것은 없었다.

땅거미가 슬금슬금 내려앉기 시작하자 기몽호 공원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가는 것을 보고 우리도 택시를 타고 어젯밤 묵었던 빈관으로 돌아왔다. 저녁은 양고기 꼬치, 닭고기 구이, 당면과 시금치가 들어간 두부탕, 물에 삶은 땅콩 한 접시로 하였다. 아들은 양고기 꼬치가 맛있다고 열 개도 넘게 먹었다.

▲ 포장마차에 저녁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여기서 양고기 꼬치로 저녁을 해결했다.
ⓒ 조영님
옆 자리에 앉은 남자들이 웃옷을 벗은 채 맥주를 한 박스 옆에 놓고 마시고 있다. 그리고 연방 가래침을 발밑에다 퉤퉤 뱉었다. 비위가 상할 법도 하겠지만 이런 광경도 이제 많이 익숙해져서 나와 아들은 개의치 않고 양고기 꼬치를 맛있게 먹었다.

임기시에서 이틀 밤을 자고 연대로 돌아왔다. 몽산 아래까지 갔으나 정상을 보지 못하였던 것도, 제갈량 기념관, 안진경 고리(故里), 순자묘(荀子墓)도 둘러보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답사였다.

태그:#임기시, #몽산, #기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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