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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863만원, 월급 72만원. 대한민국에서 이 돈으로 한 달을 살아낼 수 있는 가장은 얼마나 될까? 한 가구의 생계비로는 턱없이 부족해 보이지만, 이 금액은 공교롭게도 올해 적용되고 있는 최저임금(727,320원, 주 40시간 사업장 기준)과 택시노동자들의 평균임금(통계청 추산)의 수준과 같다.

택시노동자들이 이런 불합리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나섰다. 전국운수산업노조 민주택시본부는 19일 오후 3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최저임금법 쟁취를 요구하는 전국택시노동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전국에서 2천여명의 택시노동자들이 참여해 한목소리로 택시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법 적용을 요구했다.

▲ 민주택시본부는 지난 19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최저임금법 쟁취, 전국택시노동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 이지섭

하루 12시간 일해도 "기본급 52만원, 월급 110만원"

집회가 열린 곳은 국회의사당 앞 산업은행 옆의 인도였다. 택시노동자들은 30도를 넘나드는 찌는 더위를 피해 인도 주변의 가로수 그늘에서 집회의 시작을 기다리면서도 삼삼오오 모여 최저임금법 통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울에서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는 정아무개씨(57)는 "하루에 11~12시간 운전을 해도 기본급 52만원까지 합쳐서 110만원을 받는다. 주40시간제가 도입되니까 하루 근무시간을 7시간 20분에서 6시간 40분으로 바꿔서 주 6일을 근무하라고 한다. 과욋돈(초과운송수입금)은 퇴직금 대상 임금으로 쳐주지도 않으면서 최저임금에는 포함하라고 한다. 이게 도대체 앞뒤가 맞는 얘긴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회사마다 제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택시기사들은 보통 하루 일해서 번 돈의 일정량을 회사에 납입하고 남은 돈을 자신의 수입금으로 가져간다. 이 돈이 바로 '초과운송수입급'이며 여기에 회사에서 주는 기본급을 더한 것이 택시노동자들의 한 달 수입이다. 그런데 택시노동자들은 최저임금법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기본급은 기껏해야 20~5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경기불황이 지속되고 택시의 운송부담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등 승객들이 계속 줄어들면서 사납금을 내고 남는 초과운송수입 역시 계속 줄어들고 있다.

최저임금 적용하라, 초과운송수입금 보장하라

▲ 결의대회에 참가한 한 택시노동자가 "최저임금법관철"이라고 쓰인 홍보물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 이지섭
이런 상황에서 택시노동자들의 첫 번째 요구는 택시노동자들에게도 최저임금법을 적용해서 기본급을 현실화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법이 적용되더라도 초과운송수입금을 최저임금으로 포함시키면 '기본급+초과운송수입금'이 최저임금이 되기에 실질적으로는 사측이 기본급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인상할 필요가 없어진다. 최저임금법 적용이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급만을 최저임금으로 인정해서 회사가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을 보장하도록 하라는 것이 이들의 두 번째 요구다.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이 대표발의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있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에는 이런 택시노동자들의 요구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지난 2006년 12월 최용규 의원을 비롯한 57명의 국회의원이 서명한 이 개정안이 발의된 후, 4월 임시국회에서는 5월말까지 노동부안이 제출되지 않으면 6월 국회에서 원안대로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노동부는 아직까지 대안을 제출하지 않은 상태다.

"법안처리 결과에 따라 대선ㆍ총선 강력투쟁"

구수영 민주택시본부장은 "이미 상정되어 있는 이 법안을 고치지 말고 원안대로 통과시켜달라는 것이 우리의 요구"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광역시ㆍ도 소재 사업장은 3년 후에, 시 소재 사업장은 5년 뒤에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이는 사업자들의 요구와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벌써 몇 번째 약속을 어기고 법안 처리를 미뤄온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 본부장은 또 "최용규 의원안은 (사업장 소재지 단위에 관계없이) 시행시기를 2008년 1월1일로 하고 있는, 우리의 요구가 모두 담긴 법안"이라며 "이 법안의 처리에 반대하거나 법안을 수정하려는 의원이 있다면 10만 운수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과 대선ㆍ총선에서 50만 운수가족들의 표 조직을 통한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대사 발언에 나선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부장관이 내게 분명히 6월에 최저임금만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노사 합의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또다시 법안 처리에 책임있게 나서지 않고 있다. 공영제도 시급한 문젠데 공영제는커녕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한 달에 6,70만원 주면서 웃음을 팔라며 서비스교육을 한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 민주노총이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 한 택시노동자가 "최저임금법 개정하라"는 구호를 외친 뒤 국회의사당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다.
ⓒ 이지섭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대한 환노위 법안소위 심의는 20일 오전 9시부터 열린다. 법안 자체의 법안소위 통과는 무난할 것으로 보이나 문제는 원안이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통과될지의 여부다. 택시사업자 단체인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18일 아침에도 주요 일간지에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 반대를 주장하는 광고를 실으며 다음날 예정되어 있던 집회를 통해 국회를 압박하려던 노측에 맞불을 놓았다. 20일 법안 심의의 결과가 원안 통과냐 수정 통과냐의 여부에 따라 노사 양측의 팽팽한 대립양상은 어떤 식으로든 힘의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태그:#최저임금, #택시, #최용규, #초과운송수입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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