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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과 태백의 경계에 올랐다. 굽이굽이 산굽이를 돌아 올라가면, 정선에서는 두문동재라 하고 태백에서는 싸릿골재라 부르는 높은 고개 위다. 싸리나무가 많아 싸릿재인데, 두문동재의 '두'자도 '싸리 두'란다.

야생화를 찾아나선 길이다. 외진 산속 오솔길을 혼자서 걷고 싶었지만 산행허가도 받아야 하고 대중교통도 닿지 않는다고 해 여럿이 가는 쪽을 택해 길을 나섰다.

▲ 금대봉이 마주 보이는 두문동재 정상과 곤드레 나물 산상뷔페.
ⓒ 이현숙
반갑게도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점심밥. 산상 곤드레 나물 뷔페란다. 아직 좀 이른 시간이지만 염치도 없이 우르르 몰려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여행에서 결코 빼놓을 수는 없는 먹는 재미, 아마도 그 재미를 위해 마련한 특별식인 모양이다.

먼저 밥을 받아들고 입맛 다시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군침이 넘어간다. 스텐 양푼에 곤드레 나물밥과 나물 몇 가지를 담고, 부추를 넣어 만든 양념간장으로 쓱쓱 비벼 먹는 그 맛. 논이나 밭에서 일하다가 둑에 나와 먹는 들밥처럼 모두 양푼을 들고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아, 잊을 수 없는 그 맛 보러 한 번 더 가고 싶어라.

사진 찍고 야생화 뭉개지 마세요!

산행에 앞서 산지기님의 주의 사항을 듣는다.

"우리가 좋아하는 산나물도 자라면 꽃을 피우고 꽃이 지면 씨가 맺힙니다. 그리고 그 씨가 떨어져 다시 싹을 틔웁니다. 현재 국립공원에서는 산나물채취 금지입니다. 야생화를 아끼는 의미에서 산나물은 조금이라도 뜯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다는 분들이 아주 귀한 야생화를 발견,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는 발로 짓밟아 뭉개버립니다. 귀한 야생화 사진을 혼자만 갖으려는 이기심 때문이죠. 야생화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어서 사람들의 출입을 금해야 하지만 이렇게 제한적이나마 출입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제발 야생화가 다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 분주령
ⓒ 이현숙
'발로 짓밟아 뭉개버린다는 말'을 듣는 순간 소름이 오싹 돋는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같은 인간으로서 수치심이 느껴진다. 길을 걸으면서 숲을 안내하는 분이 비슷한 말을 한다. '지난해 남쪽 산에 갔다가 이끼와 풀과 꽃무릇 한 송이가 피어 있는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을 봤어요. 그리고 꼭 3일 만에 그림 같은 풍경으로 모시겠다면서 손님을 모시고 갔는데 글쎄, 꽃 모가지가 똑 부러져 있더라구요.'

믿고 싶지 않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을 그들은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난 도대체 인간은 자연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로 고민. 자연과 어울려 그냥 살면 결국 우리도 자연의 일부인 건데. 꽃이 피어 있는 것도 꽃이 이미 진 것도 모두가 귀한 생명, 이 땅의 주인으로 함께 살아가면 될 텐데 하고 안타까워한다.

야생화 이름 알려 하면 아름다움이 도망간다

길은 오솔길, 외줄기다. 일렬로 서서 길을 가다 설명을 듣는다. 소백산에서 봤던 연분홍빛 철쭉이 여기에도 피어 있다. 이름은 참철쭉. 쥐오줌풀은 쥐오줌 냄새가 나서 향기롭지 못한 이름을 부여받았다는데 꽃은 대단히 아름답다.

ⓒ 이현숙
▲ 나는 이름을 몰라서 더 아름다웠던 야생화...
ⓒ 이현숙

쥐오줌풀은 작은 별모양의 보랏빛 꽃들이 오밀조밀 모여 한 송이를 이루고 있다. 하나하나 꽃망울이 터지면서 분홍빛도 되고 보랏빛도 되는 꽃. 쥐오줌 냄새가 나긴 하지만 그 꽃은 참 억울할 거 같다. 우리가 싫어하는 쥐와 오줌의 조합으로 불리고 있으니, 참 안 됐다.

꽃분홍으로 병 모양인 꽃은 병꽃, 작고 하얀 이파리가 네 개로 아리따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꽃은 별꽃. 흔히 서양란이라 불리는 난보다 꽃대가 작고 아기자기한 꽃은 감자란. 까만 우단 같은 표면에 종 모양으로 생긴 꽃 이름은 '검종덩굴'. 그 밖에도 벌깨덩굴, 깨감채, 미나리아재비, 딸기꽃, 광대수염, 둥글레 등 무수한 들꽃들이 우리를 향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인사를 하는 것도 같고 우리를 구경하는 것도 같은 표정이다.

줄을 쭉 이어가다가 꽃을 하나 발견하면 우우 한 곳으로 몰려온다. 나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입으로 외우고 또 외운다. 하지만 내 메모리 칩은 한계에 도달, 시원치 않다. 자꾸 잊어 버려 또 묻는다. 안내하던 분이 내 귀가 솔깃한 말을 한다. '야생화는 꽃 이름을 알려고 하는 순간부터 아름다움이 사라진답니다.'

귀가 솔깃할 뿐만 아니라 공감이 간다. 그저 바라봐 주면서 감탄해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데, 이름이 무얼까로 고민부터 하다 보면 진정한 아름다움이 도망간다는 것이다. 이름이 무엇일까로 고민하다가 이름을 안 다음부터는 아름다움도 호기심도 이름이라는 그 기호에 갇혀 버리게 될 거고.

ⓒ 이현숙
ⓒ 이현숙
▲ 이런 꽃이 다 있다니, 이름도 신기한 꽃, 검종덩굴
ⓒ 이현숙
30분쯤 가자 고목나무샘 팻말이 나온다. 산속 오솔길 삼거리다. 우리는 고목나무샘 길로 들어선다. 이제부터는 완만한 내리막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나무가 울창한 그늘진 길을 간다. 한참을 걸어내려 가니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있다.

고목나무 샘이란다. 이 샘이 땅 밑으로 흘러 검룡소로 들어가니 한강의 시초가 된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모여서 떠날 줄을 모른다. 우리는 그냥 넘겨다보다가 발길을 돌린다. 사람들은 이름이 붙여진 곳이라면 아예 점령을 해 버린다. 다른 사람 생각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내려오다가 바닥에 낮게 깔린 채 피어 있는 대성쓴풀이라는 야생화를 발견했다. 내리막길에서부터 설명을 들어온 터라 모두 그 귀한 생명을 가운데 놓고 빙 둘러선다. 남북한을 통틀어 오직 금대봉에만 자라는 한해살이 북방계 식물로 이런 분포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라는데, 1984년 발견 금대봉을 대성산으로 잘못 알고 붙여준 이름이 대성쓴풀이란다.

짝짓기하는 나비 한 쌍을 만나다

10분쯤 가니 제법 넓은 길이 나오고 길 옆으로 검룡소 표지판이 보인다. 작은 개울을 건너 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검룡소는 한강의 발원지다. 하루 2000톤에 달하는 수량이 깊은 샘에서 용솟음쳐 나오고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이끼 낀 암반 위 홈통을 따라 몸부림치면서 쏟아져 내린다. 샘 속을 들여다보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모를 정도의 깊이가 느껴진다.

▲ 바닥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소
ⓒ 이현숙
▲ 용틀임을 하면서 흘러내려가는 물구비...
ⓒ 이현숙
옛날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다가 이곳에서 안간힘을 다해 꼬리를 흔드는 통에 패였다는 암반 옆의 와폭은 그런 전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기묘하게 물이 요리조리 뒤틀며 흘러 떨어져 휘돈다. 마치 물이 온갖 재주를 부리면서 흘러가는 것처럼 그것의 몸짓에 따라 물을 사방으로 흩뿌리고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숲도 울창하여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인데도 우중충하고 으스스하다.

검룡소에서 솟아나온 물줄기는 정선의 골지천, 조양강, 영월의 동강, 단양, 충주, 여주로 흘러 경기도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한다. 그리고 서울을 관통하여 임진강과 만난 뒤 서해로 들어가면서 바다와 합류한다.

검룡소에서 나오다 맨땅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나비 한 쌍을 보았다. 나비는 공중이나 풀숲에서만 짝짓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다. 이 황폐한 돌투성이 길 가운데에서 그들은 성스러운 만남을 맺고 있었다. 오래도록 서서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그들은 꿈쩍도 않고 둘이 꼭 붙어 있다. 문득 걱정이 되었다. 저러다 천적에라도 들키면 곧장 황천행일 텐데 어쩌나 하는 순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노파심이었다.

▲ 나비의 거룩한 거사 장면... 그런데 짝짓기 시간보다 수태낭을 붙이는 시간이 더 길다고.
ⓒ 이현숙
나비는 짝짓기가 끝나면 수컷이 암컷의 교미기에 자신의 꼬리부분에서 생성된 분비물로 수태낭을 붙여 다시는 교미를 할 수 없게 만든단다. 때문에 짝짓기 시간도 시간이지만 수태낭을 붙이는데 걸리는 시간만도 4, 5시간은 걸린단다. 그런데도 다시 짝짓기를 하고 싶어 얼씬거리는 수컷을 만나면 날개를 들어 자신의 교미기를 보여준단다. 난 그들의 성스러운 행동이 모쪼록 지켜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아섰다.

길 중간 중간 야생화를 찾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언제부터 우리는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반했는지. 이젠 야생화도 숨으려야 숨을 수도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예뻐서 찾아 나섰다면 그들이 잘 자라나 번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우리 몫이라고 생각하며 길을 내려왔다.

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 중앙 고속도로∼남제천IC∼597번 지방도∼제천∼38번국도∼영월∼석항∼예미(정원 광장-곤드레나물밥)∼신동∼문곡∼사북∼고한(강원랜드 카지노)∼두문동재(싸리재) 정상.


태그:#두문동재, #싸릿골재, #검룡소, #야생화,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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