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4년 뉴욕 방문 시 전 목사님 가족과 함께
2004년 뉴욕 방문 시 전 목사님 가족과 함께 ⓒ 구은희
미국에는 '어머니날'과 더불어 '아버지날'이 있다. 매년 6월 셋째 주 일요일이 바로 '아버지날'인데, 이 날만 되면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 외에 또 한 분 생각나는 아버지가 계신다. 미국으로 유학 가 만난 '뉴욕 아버지'가 바로 그 분이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외삼촌이 계시는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 한국에서부터 교회 반주를 하고 중·고등학교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었던 나는 반주자나 지휘자로 봉사할 수 있는 교회를 찾고 있었다. 때마침 삼촌이 다니시는 교회에 부임해 오신 전재길 목사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목사님께서는 온 지 얼마 안 된 필자에게 중·고등부 성가대를 지휘하고 예배 반주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목사님께서는 교인들과 개인적으로 만나서 식사를 하시는 적이 없으셨고, 교회의 제도나 정치적인 면보다는 성경을 중심으로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관심 있으셨던 분이다. 전 목사님께서는 시골 교회 목회를 당신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계셔서 항상 한국에 가서 시골 목회를 하시고 싶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한 마디로 목사님의 모습에서 진정한 크리스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 실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소는 겸손하신 목사님을 더 겸손하게 보이도록 하였고, 모든 교인들이 존경을 한 몸에 받으셨다. 부모님을 떠나서 유학생활을 하면서도 결코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목사님 가정이 부모님을 대신해 주셨기 때문이다. 항상 사랑과 격려로 감싸 주셨고, 나의 기쁜 일, 슬픈 일을 작은 일까지도 함께 기뻐하시고 위로해 주시곤 하셨다.

미국 '아버지날'을 맞아 한국에 계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목사님께 카드와 작은 선물을 드렸고, 그때부터 목사님은 나의 '뉴욕 아버지'가 되셨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아버지날'이 되면 한국에 계신 아버지보다는 '뉴욕 아버지'가 더 생각이 난다.

몇 년 전에는 뉴욕에 계신 목사님을 10년 만에 찾아뵐 수 있었고, 지난해에는 우연히 한국에 나와 있던 시기가 비슷해서 서울에서 한 번 뵐 수 있었다. 북한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목사님께서는 이제 노인의 모습을 하고 계셨다.

부모님을 떠나서 혼자서 살던 나에게 여러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고, 기쁜 일이 있을 때는 같이 기뻐할 수 있는 가족이 되어주신 목사님과 목사님 가정을 생각하면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다.

복 중의 가장 큰 복은 '사람 복'이라고 나는 믿는다. 정말 유학 시절 동안 가족보다 더 가족같은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분들이 안 계셨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다. 항상 당신들 일처럼 기뻐하고 아파해 주시던 그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아버지날'을 보내면서 뉴욕 아버지가 더욱 그립다.

뉴욕 아버지께서 주신 사랑을 유학 시절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도록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를 만나서 인생의 전환기를 갖게 되었다는 학생들이 간간이 나오곤 한다.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뉴욕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뉴욕#전재길#아버지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