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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환이 콘서트를 한다고 했다. 가수가 콘서트를 한다니 특별한 일도 아니다. 게다가 안치환이야 이틀이 멀다 하고 현장 무대를 뛰어다니는 가수가 아닌가. 그런데 그 제목이 가슴 한켠을 '쿵!'하고 울렸다. '그래, 나는 386이다!'

안치환은 공연 안내문으로 386들에게 띄우는 초대장을 직접 썼다.

"그 해(1987년) 23살 청년이었던 저는 이제 43살 중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386이란 말이 자랑스럽게 펄럭이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만큼 그 말이 부담스럽고 실망스러운 요즘, 무명의 386! 이 땅의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당신에게, 한낱 가수로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 '잘 살아왔노라'고, '힘내라 친구야'라고 다독거려주고 싶습니다."

그의 말처럼 386이란 말이 '부담스럽고 실망스러운 요즘', 당당하게 '나는 386이다'고 외치는 안치환을 만나고 싶어졌다. 콘서트 취재를 핑계로, 그의 노래들을 화제로 삼아, 세상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인터뷰는 14일 저녁 그의 작업실인 서울 연희동 '참꽃' 지하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그는 다소 지친 모습이었다. "이번 공연이 너무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노래하는 것보다 말하는 게 더 힘들다"며 가끔 담배도 꺼내 물었다.

'그래, 나는 386이다' 콘서트는 오는 23일 저녁 7시 서울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 콘서트홀에서 3시간에 걸쳐 펼쳐진다.

ⓒ 오마이뉴스 김정훈
"386의 가치, 그 시절의 순수성을 지키고 싶었어요"

"그래 나는 386이다 나는 386이다 / 그 누가 제 아무리 싼 값에 폄하해 버려도 그날의 투쟁의 역사 오~ 눈물의 함성 / 바로 거기 너와 나의 청춘이 있었다 / 4월은 혁명의 달이요 5월은 핏빛의 항쟁 / 우리의 찬란한 6월은 어디로 갔을까 / 더 이상 욕하지 마라 더 이상 욕되이 마라 / 우리의 순결한 6월을 난 지키고 싶다"('그래, 나는 386이다'(안치환 글ㆍ곡) 중에서).

- '그래, 나는 386이다'는 콘서트와 노래 제목이 도전적으로 들리는데, 이번 콘서트를 기획하고, 또 그 같은 제목을 단 배경이 무엇입니까.
"올해가 6월항쟁 20주년이 되다 보니까 연초에 뭘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음악 하는 후배와 기획하는 친구들이 만나러 왔어요. 그래 얘기하다가 노래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딱 떠오른 게 '그래, 나는 386이다'예요. 386이란 말이 때로는 영광의 이름으로 때로는 배신의 이름으로 얘기되고 있지만, 저도 386(그는 65년생으로 연세대 사회사업학과 84학번이다-기자)이고, 지금은 비판·조롱·폄하되는 386에 대한 가치, 그 시절의 순수성을 얘기하고 지키고 싶었어요.

386이라고 그럴 때 일반 사람들이 아는, 욕먹는 386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100명이나 될까요? 50명 안짝이겠죠. 그런데 내가 아는 386은 무명의 386일지언정 그 시대를 통해서 자기의 삶을 일구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오고 있어요.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몇 아이의 아빠가 된, 남편이 된, 아내가 된, 그들이 진짜 386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 대한 옹호라든지 위안이라든지, 그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죠."

- 최근 손병휘씨도 <삶86>이란 음반을 내고 '386'란 곡도 실었더군요. 이번 콘서트에서도 무대에 함께 오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로 교감이 있었나요?
"역시 손병휘는 저의 라이벌이에요(웃음). 항상 고민할 때 상의하는 친구죠. 그 음반 녹음도 함께 여기서 진행했었죠. 역시 병휘가 좋은 노래를 썼더라구요. 그래서 이번 공연에 함께하면서 손병휘씨도 '386'을 부르죠. 그리고 '우리나라' 팀, 또 노동자들과 노래를 많이 하는 서기상·윤미진씨도 함께합니다. 철저하게 지금까지 열심히 활동을 해왔던 그런 친구들이고, 또 제가 요구하는 합창곡을 충분히 소화해줄 수 있는 연륜이 있는 사람들이죠(웃음)."

이번 콘서트에선 총 33곡 정도를 부를 예정이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마른 잎 다시 살아나' '광야에서' 등 20년 전 6월의 아픔과 기쁨을 추억할 수 있는 노래를 비롯해 지난 3월에 발표한 9집 음반에 실린 '처음처럼' '세상이 달라졌다' 등 신곡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 히트곡까지 다양하게 선곡했다. 마지막 무대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감동적인 합창의 시간, 돌아봄의 시간, 희망의 시간, 미래의 시간"으로 준비된다.

ⓒ 참꽃
- 이번 공연 안내문을 386에게 띄우는 초청장 형식으로 썼는데, 이번 무대가 386들에게 어떤 자리가 되기를 기대합니까.
"사실 이번 공연 만들면서 너무 부담스럽고 힘든데, 어쨌든 제가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최선을 다해서 할 겁니다. 386들이 좀 많이 와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386은 경제·돈·가정·교육, 또 뭐 경조사(웃음)… 여러 가지 직접적인 낱말들 속에서 살아가는 세대잖아요. 소위 기성세대죠. 그런데 우리의 뒷덜미를 잡거나 불편하게 하는 단어들, 통일·환경·FTA… 이런 말을 들을 때 적어도 귀를 기울이거나 울컥할 수도 있는, 정말 열린 세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386들이 지나쳤던 기억들, 일상의 삶에서 잠시나마 해방되어 함께할 수 있는 무대가 됐으면 좋겠어요. 과거 기억의 한 끄트머리를 잡고 잠시 자위하는 시간이기보다는 앞으로 살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는 자리는 될 거예요. 나의 정체성이라든지, 나의 뿌리라든지, 이런 것을 서로 확인하는 자리일 수도 있겠구요. 그래서 힘은 들지만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달라졌는가

- '그래, 나는 386이다' 노래에는 '더 이상 욕되이 마라' '그 누가 더럽히는가' 등의 노랫말이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50~100명의 386을 가리키는 것인가요?
"저는 일차적으로 그 사람들이 욕되이 하고 더럽힌다고 생각 안 해요. 사실 욕심만큼 성에 차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그 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릴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 사람들이 영광을 누렸기에 감당해야 할 화살인 거죠. 그런데 꼭 그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순수성을 호도하거나, 그럼으로써 반사이익을 얻는 사람들도 있고, 또 그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386도 있어요. 제가 만나본 386 중에는 '그때는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백기를 들고 딴 쪽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죠. 그 때는 조금 안타까웠는데 꼭 초점을 거기다 맞추지 않아도 될 거 같아요."

"세상이 달라져 세상이 달라져 / 저항은 어떤 이들에겐 / 배부른 밥이 되고 권력이 되었지만 /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흥! 빼앗겼어 워워워~"('세상이 달라졌다'(정희성 시ㆍ안치환 곡) 중에서)

- 9집에 실린 '세상이 달라졌다'란 노래도 권력으로 간 386세대를 빗댄 얘기처럼 들리던데요?
"노랫말은 정희성 선생님의 시예요. 운동의 역사, 항쟁의 역사에서 공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무명의 풀들은 아니죠. 그 명예와 공을 가지는 사람은 있죠.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안 가지면 다른 사람들이 가졌을 거예요. 중요한 건 그 권력을 어떻게 행사하고, 누구를 위해 행사하는가의 문제죠. 그것이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그런 시가 나왔고. 또 거기에 동감했기 때문에 그런 노래가 나올 수 있는 것이고, 또 그런 노래를 들었을 때 동감하는 이유는 세상이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달라진 건 확실한 건 같아요."

ⓒ 오마이뉴스 김정훈
- 노랫말은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오히려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는 세상을 역설적으로 얘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데.
"그렇게 얘기할 수 있죠. 기층민중이나 노동자, 빈민층의 입장에서 볼 때 사실 세상은 달라진 게 없잖아요. 아직도 그 분들은 싸우고 있고. 우리가 싸워왔던 6월항쟁의 의미는 군부독재 타도였고 민주화였기 때문에 그 이상을 넘어가는 민족적인 문제나 계급적인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6ㆍ29가 났을 때 완전히 사분오열되고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있었죠. 여전히 남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등을 돌리고 있고, 애써 시선을 피하고 있고, 그런 게 지금의 세상이죠. 저도 그런 말 자격이 없지만."

"저는 앞에서 스크럼 안 짜봤어요"

"서럽다 뉘 말 하는가 흐르는 강물을 / 꿈이라 뉘 말 하는가 되살아오는 세월을 / 가슴에 맺힌 한들이 일어나 하늘을 보네 / 빛나는 그 눈 속에 순결한 눈물 흐르네 / 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 가네 가네 한 많은 세월이 가네"('마른 잎 다시 살아나'(안치환 글ㆍ곡) 중에서)

- '마른 잎 다시 살아나'라는 노래는 이한열 열사 추모곡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이한열 열사 추모곡은 따로 있어요. 그것도 제가 만들긴 했는데, '그대 떠난 빛고을에…'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가 있는데, 썩 훌륭한 노래가 아니었어요, 빨리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그 때 동시에 나온 게 '마른 잎 다시 살아나'였는데 오히려 추모곡의 품으로서 훨씬 더 넓고 괜찮은 노래죠. 정확히 추모곡은 아니지만 열사에 대한 추모와 도도한 시대의 흐름에 대한 믿음을 담으려 했으니 그렇게 이해해도 무방한 노래예요."

ⓒ 오마이뉴스 권우성
- 87년 6월항쟁 당시 학생이었던 걸로 아는데, 어떻게 6월을 보냈나요?
"그때 연대 4학년이었는데, 그때는 연대를 중심으로 데모가 많이 이뤄졌잖아요. 시위 도중에 다 지쳐서 백양로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었어요. 근데 저는 앞에서 스크럼 안 짜봤어요. 뒤에서 노래를 많이 했지. 돌을 날라주거나 뒤에서 돌 몇 번 던져보거나. 그렇게 쉬고 있는데 주위에서 '자, 다시 스크럼을 짭시다'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스크럼을 짰죠. 그 스크럼이 교내를 한바퀴 돌고 저희 과가 있는 건물 앞을 지나게 됐는데, 아, 어색한 거예요. '내가 이런 정도는 아닌데? 내가 이런 투사는 아닌데?' 그 30~40분의 느낌이 참 두렵기도 하고, 왜 어차피 할 거, 이런 느낌들, 묘한 감정들이 많이 들었어요.

어쨌든 그런 시위 과정에서 낮에는 시위하고, 저녁엔 학교 앞에서 술 먹다가 친구 하숙방에서 노래도 만들고, 같이 막 격론하고, 그랬던 아주 뜨거웠던 6월이었죠. 언제 다시 그런 삶이 있겠어요. 그 현장에 없었으면 6월을 얘기할 때 아마 피상적으로 얘기하겠죠. 그렇지만 그렇게 얘기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죠. 그게 바로 눈앞의 나의 경험이고, 생활이었으니까요."

- 박종철 열사와는 65년생으로 나이가 같고, 이한열 열사와는 같은 대학 동문이기도 합니다. 지난 6월 9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기념공연에도 참석했을 때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번 6월항쟁 20주년 시청 앞 공연하면서 사실 기대를 많이 했었어요. 그 때 20대들이 이젠 양복 입고 뚱뚱해지고, 얼굴 좀 찌그러져 갖고(웃음) 애들 손을 잡든지 소주병이나 맥주캔 들고 와서 앉아서 같이 함께하기 바랐는데… 그날 하루종일 내 입에 맴돈 말이 뭐였느냐면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였어요. 오랜만에 선후배들 만나서 술 먹으면서 왜 그런 걸까 얘기해봤는데, 386들이 아직도 늑대처럼, 정부 주도, 관 주도는 싫어하는 그런 야생성이 살아 있구나, 그런 농담도 했지만, 많은 걸 다시 생각하게 되는 그런 날이었던 것 같아요."

늑대와 개새끼들

"너는 왜 길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 편안한 먹일 찾아 먹이를 주는 사람들 찾아 / 다들 개들의 무리 속으로 떠나가는데… 오늘은 사람들 사이에서 늑대를 본다 / 그대의 빛나는 눈빛 속에 늑대를 본다 / 홀로 어슬렁거리는 외로운 정신을"('늑대'(도종환 시ㆍ안치환 곡) 중에서)

- 그럼 자신도 그 같은 야생성이 살아 있는, 길들여지지 않는 늑대라고 생각하나요?
"전 늑대가 아닌 것 같아요. 늑대가 되려고 애썼다가… 요전에 9집 음반 나오고 어느 일간지 인터뷰를 어쩌다 했어요. 욕을 바가지로 먹었는데. 길들여지지 않는, 나는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도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서글픈 경험을 했었죠. 나는 그런 늑대가 세상에 많길 바라요. 이 거리 저 거리에서, 양이 되길 강요하는 이 세상에서 그런 번뜩이는 늑대들이 많이 돌아다녔으면 좋겠어요."

"니 밥그릇 앞에 내 밥그릇 앞에 / 영원한 적은 없어 영원한 친구도 없어… 절대의 가치는 없어 절대의 신념도 없어… / 니 밥그릇 앞에 내 밥그릇 앞에 / 넌 개새끼야 넌 개새끼야"('개새끼들'(안치환 글ㆍ곡) 중에서)

- 반면 8집에는 '개새끼들'이란 곡이 있는데, 늑대의 상대 개념으로 이해해도 될는지?
"늑대랑 개새끼들이랑, 글쎄요. 어쨌든 '개새끼들'이란 노래를 만들고 나서, 아 내가 이런 노래를 만들 수 있구나, 노래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내 가슴을 치면서 행복해했어요. 노래를 만들고 나서 참 좋았죠. 나는 참 좋아서 라이브 때 그 노래를 부르는데, 아, 관객들이 뭐랄까, 힘들어하는 거 같아요, 불편해하는 것 같고. '왜 니 노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얘기하면 '아냐, 사람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노래도 많아, 임마' 이렇게 얘기도 하죠. 그런데 노래라는 건 그런 거 아니에요? 노래라는 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힘을 주고 편안하고 행복하게도 하지만 불편함을 줄 수도 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 참꽃
"아무도 그 누구도 손 내밀지 않을 때 / 내 쉴 곳 내 기댈 곳 어디일까 둘러보니 / 내 안의 바로 내 안의 또 하나의 내가 있어 / 안녕, 어둠 속에 떨고 있는 착한 나여!"('내 안의 나'(안치환 글ㆍ곡) 중에서)

- 후기에서 '이제 타협의 시대는 끝났습니다'고 선언했던 8집(<외침>ㆍ2004년 출반)에 비해 지난 3월 발표한 9집에선 자아성찰적인 노래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혹시 자신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가 달라진 건 아닌가요?
"바뀐 게 아니라 3집(1993년 출반)의 경우에도 그랬어요. 1·2집에는 소위 저항가요가 많았는데, 3집 때는 동구권이 몰락하고 모두가 제 갈 길로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서 도대체 나는 어느 길을 갈 것인가를 고민했거든요. 돈키호테처럼 '철의 노동자'를 다시 음반에 싣는 게 아니라 나를 돌아보자 생각했어요. 그 때도 남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이렇고 내가 이런데, 그런 얘기들을 실었죠. 요번 9집도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자, 그래서 그런 노래들을 주로 싣게 됐어요. 변화라기보다는, 제가 갖고 있는 전체 정서 속의 한 부분의 노래들을 모은 음반, 그 정도인 거 같아요."

"나는 저항가요 가수"

"너의 환상 속에 난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나무겠지 / 사계절 늘 푸른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 저 나무겠지 / 그러나 난 그런 사람이 아냐"('너의 환상'(안치환 글ㆍ곡) 중에서)

- '운동권 가수' 또는 '민중가수'라는 호칭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혹시 부담스럽지는 않은지요?
"저는 민중가요라는 게 별로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트로트가 민중가요냐, 우리가 말하는 저항가요가 민중가요냐 되묻고 싶을 때도 있어요. 민중이 시위현장이 아닌 생활 속에서 가족과 함께, 술자리에서 벗들과 함께 부르는 민중가요가 무엇이 있느냐, 라는 질문을 묻고 싶은 거예요. 민중가요란 일부 민중가요에 대해서 글을 써서 일을 하는 사람들 입맛에 맞는 말이지 저처럼 실질적으로 그런 노래를 만들고 했던 사람 입장에선 동의할 수 없는 얘기죠.

저항가요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고, 그 시대를 거쳐 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그래서 민중가수라고 할 때 '부담스럽다, 저는 아직 진행형'이라고 얘기해요. 지금은 그 말에 대해서 자꾸 최면을 걸어요. 무감해지자. 내 길을 가는데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 이번 콘서트 초청장에는 '한낱 가수'라고 적혀 있더군요.
"조금은 자조적인 말이죠. 한낱 가수죠. 누가 볼 때는 진짜 맘에 안 드는 놈일 수도 있고, 누가 볼 때는 괜찮은 놈일 수 있고…."

"나라살림 잘 해달라 맡겨놨더니 오 년 동안 뭘 했는지 / 몰라라 세계화다 민주주의다 부르짖더니 벌거벗은 / 임금님 꼴 되었네"('악몽98'(안치환 글ㆍ곡) 중에서)

- '악몽98'이란 노래가 발표된 지 10년 가까이 흘렀지만, 어찌 들으면 오늘을 풍자하고 있는 것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글쎄요, 사실 저는 정치에 대해서 얘기를 할 만한 저기도 없고… 그런데 이런 얘기는 하고 싶어요. 그래도 세상을 조금 더 낫게 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까지 왔고, 참여정부에 들어서도 애정을 가지고 인내를 가지고 지켜봐왔잖아요. 사실 그렇게 많이 욕을 먹을 만큼 잘못한 게 없을 수도 있죠. 그렇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큰 부분은 있는 거 같아요. 더욱더 안타까운 건 그냥 아무나 쉽게 욕을 한다는 거죠. 진보진영이라고 얘기했던, 그 많은 사람들이 해왔던 전체가 도매금으로 아웃돼버리는 상황 있잖아요. 참 안타깝죠."

가수 안치환의 꿈은?

"사막에 마른풀처럼 살아가다 가다 보면 / 때론 지치고 너무 힘들어 / 주저앉고 싶어져 / 마시고 떠들고 취해서 / 껄껄 웃고 울어도 /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 / 나를 목마르게 해"('슬럼프'(안치환 글ㆍ곡) 중에서)

- 20여년 동안 노래를 불러오면서 '슬럼프' 노래처럼 힘들 때는 없었는지요?
"많죠. 바빴으니까 견딜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만약에 바쁘지 않고 자꾸 나를 생각하게 되고 자꾸 딴 데 시선을 돌렸으면 더 많이 힘들었을 텐데. 힘들었을 때라고 하면, 글쎄요, 90년 초부터 92년·93년까지, 3집 전까지, 노찾사를 나오고 나서죠. 어쨌든 그때는 조직에 있거나 팀에 있다가 나오면 죽일 놈이잖아요. 주변의 따가운 비판을 견뎠어야 했고, 그와 더불어 가수로서 나의 길을, 더군다나 기존의 바닥이 아닌 데서 스스로 길을 헤쳐가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어요.

더구나 그 마당이 일반 대중가요판이었던 거예요. 대중가요 판에서 나를 찾고 나를 유지시키고 내 음악을 계속 한다는 것에 대해 힘들어했던 때인 것 같아요. 그래도 큰 힘이 됐던 건 나는 노래를 만들고 부를 수 있었다는 거죠. 가수로서 내 노래를 내가 만들 수 있다는 거, 그게 가장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 참꽃
- '내가 만일'이란 노래가 나왔을 때 일부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 않았나요?
"그런 얘기 많이 들었는데요. 이렇게 물어봐요. '내가 만일'이 나쁜 노래야? 나는 그런 노래 부르면 안 돼? 항상 '철의 노동자' 부르는 안치환이길 바래? 이렇게 그냥 속으로 물어보죠. 그 노래가 나쁜 노래가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준 노래였기 때문에 저한테는 (그 같은 비판은) 설득력이 없었어요."

"나 당신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지 / 나 당신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까… 누가 당신을 보고 아줌마라 하겠어 / 지금도 당신은 처녀 때랑 달라진 게 없어 / 사람들이 나 보고 정말 장가 잘 갔대"('아내에게'(어느 잡지에 실렸던 글에 덧붙여 안치환 글ㆍ곡) 중에서)

- 9집에 실린 '아내에게' 노랫말이 조금 '닭살스런'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게 어느 광고 문구였어요. 기자님은 그런 얘기해봤어요? 못하잖아요.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사랑한다는 얘기. '당신 처녀 때랑 달라진 게 없네', 그럼 아내가 '당신 왜 그래?'(웃음)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죠. 진심이 담긴 얘기면 얼마나 좋은 얘기예요. 사람들이 웃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래서 그 노래 부를 때 진지하게 부르려고 해요. 우리 나이 때라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들을 수 있는 노래지, 닭살, 이렇게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 길을 가네 이 길 이미 있는 길 아니라네 / 가시밭 험한 산 넘어 물 건너 새 길을 내어 /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 흘리며 가는 길이라네 / 혼자서 가는 길 아니라네 둘이서 손잡고 가는 이 길"('혼자서 가는 길 아니라네'(고은 시ㆍ안치환 곡) 중에서)

- 9집에 실린 '혼자서 가는 길 아니라네' 이전에도 '동행' 등 통일을 노래한 곡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 3월엔 금강산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고, 지난 7일엔 '통일문화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등 계속 통일 노래를 불러오고 있는데요….
"제 음반에 통일 관련 노래는 꼭 한 곡씩은 들어가는 편이에요. 남북관계를 보면 가끔 짜증나기도 하고 하지만 항상 해야 할 얘기 아닙니까. 지난번 남북철도 경의선 시험운행 때도 가서 옆에 있었거든요. 감동적인 시간이었지만, 나중에 한편으론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냥 이으면 이어지는 건데….

6ㆍ15 정상회담 때 그날 '동행'이란 노래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정상회담 때 고은 선생님께서 (북에) 같이 가셨잖아요. 전화해 글을 부탁드리고, 6개월 뒤에 받아 그걸 노래로 만들었어요. 그 노래 만들면서 남과 북의 정서를 미리미리 좁혀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들으시면 알겠지만, 약간 북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리듬의 흐름도 좀 그렇잖아요."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정지원 시ㆍ안치환 곡) 중에서)

- 사람이 정말 꽃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합니까. 여전히 희망을 사람에게 두고 있나요?
"박노해 시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고 얘기하는데 그런 정도의 느낌은 아닐지언정, 결국 모든 것이 다 사람의 의지에 의해서 진행되고 바뀔 텐데, 사람에 대한 믿음, 사람에 대한 사랑, 그런 걸 갖는 게 중요하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는, 사실은 아름다운 사람도 있고 아름답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아름답자고 부르는 노래죠. 노래는 희망이에요, 노래는 바람이고, 노래는 꿈이고,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노래로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죠."

- 그렇다면 가수 안치환의 꿈은 무엇인가요?
"하하, 글쎄요. 며칠 전 TV에 김건모가 나와서 '내 꿈은 나는 거야'라고 얘기하던데. 김건모가 얘기했듯이 꿈하고 목표하곤 다른 거죠(김건모는 한 TV프로그램에서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목표와 꿈을 구분했다). 가수로서 목표는 일반적인 거고, 꿈은… 이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노래를 해왔던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나는 그런 부분이… 꿈이라고 얘기하는 게 차라리 편한 것 같아요.

인간해방! 모든 인간이 행복하고, 정말 세상에 사는 게 죽을 때까지 기쁠 수 있는 것, 유토피아라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세상, 그게 올 수 없다고 생각을 하지만, 너무나 힘들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런 게 꿈이 될 수 있고. 통일도 꿈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통일은 가능한 거 아닌가 싶기 때문에 꿈이라고 얘기할 수 없을 거 같기도 하고…."

태그:#안치환, #콘서트, #386, #저항가요, #민중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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