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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이노 조선 대학의 정문
이카이노 조선 대학의 정문 ⓒ 이카이노 조선 대학
이카이노에는 마음을 붙들어 매는 끈적한 노래가 흐른다. 제주도 말에 오사카 말이 섞인 말투다. 이카이노라는 곳은 특히 제주도에서 건너간 한인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1973년 공식적으로는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진 지명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곳에는 군데군데 '오모니 식당'이나 '조선 세탁소' 등의 간판이 눈에 띈다('오모니'는 일본어를 모어(母語)로 하는 자이니치들이 '오까아상(お母さん)' 대신에 '어머니'를 가타카나로 표기해 쓰고 있는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이카이노 이야기>는 바로 이곳, 일본 오사카의 재일조선인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일본에서 뉴스를 통해 한국의 소식을 접하는 이카이노 사람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TV에 나오자 열심히 들여다보면서도 밑에 뜨는 일본어 자막을 읽지 못해 애가 탄다. 목욕탕에서 남자들은 좌우를 나누어 상대편을 뜨거운 탕 속에 집어넣어 익히면서 싸움을 하기도 한다.

1950년 생으로 부모가 4·3사건과 6·25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자이니치 2세 원수일. 그가 "피를 타고 흐르는 아리랑" 타령을 하듯 자연스럽게 펜을 맡겨 썼다는 책이다. 제도화된 일본어를 용해시키는 '이식(耳植)의 일본어'는 경상도 말로 번역되어 나왔다. 후기에 붙여 원수일은 '감히 말하자면 조이스가 더블린에 집착하듯이 나는 이카이노에 집착한다고 생각한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지는 말입니더, 조선 사람 그만할라 캅니더"

일본에서 부락민 등의 소수민족에게 가해졌던 차별은 이카이노 사람들의 삶에 뿌리 깊은 형태로 남았는데, 이카이노 바깥에서 취직을 하거나 외부의 일본인과 결혼을 한다거나 하는 일들은 드러내놓고, 혹은 은밀히, 거부되는 일이었다. 이 까닭에 먹고 살기 힘든 자이니치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일본놈들이 맘먹고 쫓아내면 그만'이라는 겁을 먹기도 하며, '귀화'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

이카이노 이야기
이카이노 이야기 ⓒ 새미
"우리집 아버지, 같은 조선 사람한테 돈 떼이고 알거지가 돼서 죽었다 아입니꺼. 지는예 몇 번이나 아버지한테 조선 사람한테는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예 부탁받으면 거절을 못하는 성격에 결국에는 빌려주고 만다 아입니꺼. 그런 아버지 성격 다 알고 있으면서 자꾸 빌리러 온다 아입니꺼. 아지매,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돈 떼어먹으니 조선 사람들 인간성이 걸러 먹었습니더 참말로. 그래서 지는 말입니더 이제 조선 사람 그만할라 캅니더." - 54쪽

조선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이들에게 무엇이길래, 이들은 이를 붙잡고 힘든 삶을 부지해나갔던 것일까. 그건 어쩌면 선택이었을 수도 있지만, 불가능한 선택지라는 걸 가정한다면, 선택 이전에 강요된 정체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카이노에서 흩어져 사는 제주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카이노 '바깥'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일제시대'를 경험한 이들이기에 그러하다. - 169쪽

'현무암 기질 해녀들'의 악착같은 생명력

이카이노에선 힘겨운 생활고 속에 자식들이 목을 매어 죽거나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술꾼이 되어버릴 때, 생계를 잇는 역할을 여성들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남성들은 일본 사회의 차별로 인해 조선인 정체성을 유지한 채 정규직을 얻기가 힘들었다. 가부장제 하에서 낮은 사회적 지위에 익숙했던 여성들이 흔히 말하는 '천한 일, 궂은 일'을 마다않고 생활을 꾸려나갔다고 설명할 수도 있겠다.

한국에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원수일씨와 동세대 작가인 종추월씨의 소설로 <이카이노 타령>이라는 책이 있다.

자이니치 2세 작가 종추월씨의 <이카이노 타령>(우측)과 종추월씨의 시 <유언>을 가사로 한 노래가 실린 이정미씨의 <어기야디야> 음반(좌측 아래)
자이니치 2세 작가 종추월씨의 <이카이노 타령>(우측)과 종추월씨의 시 <유언>을 가사로 한 노래가 실린 이정미씨의 <어기야디야> 음반(좌측 아래) ⓒ 사상과 과학사, 통가라시 오피스(음반)
이 소설에서 남편과 아들들은 술집 오야붕이 되어버리거나, '세상의 대개를 정리해버리고' 집에서 빈둥빈둥 하거나, 행운의 표식으로 아내의 속옷을 입은 채 도박장에 간다. 히로뽕 중독에 기계 사이에 손가락이 절단되기도 한다. 연속방화범이 되어 자신의 노모를 두들겨 패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아수라장에서 사는 건 정이 많기 때문'이라고 믿는 여성들은 '햅번 샌들' 접착공으로 일하며 끼니를 잇는다.

햅번 샌들은 오드리 햅번이 신어서 유행한 신발로 원수일씨 소설에도 자주 등장한다. <이카이노 이야기>에 따르면 '햅번 샌들을 팔아 한 밑천 벌었다는 전설이 생기자 제주도에서 해녀들이 끊임없이 건너왔다'고 한다.

전직 해녀인 이 여성들은 곧잘 넋두리를 하면서도, 시어머니가 두 딸 밑으로 아들을 낳으라고 구박하자 셋째 아들을 낳고, '일본 놈들 이기려면' 아들 하나로 부족하니 또 낳으라고 구박하자 넷째 아들을 낳는다. 그렇게 애써 기른 아들들은 망나니가 된다.

사실 읽으면서 이보다 더 화딱지가 나는 부분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카이노 이야기>가 마냥 답답하고 한스럽지만은 않은 까닭은 어머니로도 아내로도, 조선인으로도 가둬지지 않았던 생명력이 건너건너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곱창집을 열어 생계를 꾸렸던 원수일씨는, '현무암 기질 해녀들'의 악착같은 생명력을 누구보다 정겹게 되살릴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큰고모나 작은 고모에게는 원래 설문대 할맘이 방뇨했다는 바다에 들어가 전복을 따는 해녀의 피가 흐르고 있는데, 일제시대만 해도 이들은 전복을 채취할 철이 되면 이카이노에서 대마도 해협을 건너 제주도로 갔다고 한다. 작은 고모는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지면 주위에 누가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해녀의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선희가 아기구덕을 흔들어 대며 자주 흥얼거렸던 자장가와 동일한 제주도 말이어서 히테카 짱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향수 내음이 절절이 묻어나는 신비로운 선율이었다. - 18쪽

덧붙이는 글 | 자료수집과 번역에 자이니치 여성 다큐멘터리 제작팀 R.C.S. GaGa가 함께 했습니다.


이카이노 이야기

원수일 지음, 김정혜.박정이 옮김, 새미(2006)


#자이니치#종추월#이카이노#이카이노이야기#원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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