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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식구들과의 한 때(뒤돌아보는 사람이 와디)
쉼터 식구들과의 한 때(뒤돌아보는 사람이 와디) ⓒ 고기복
와디가 쉼터를 자주 이용하게 되었던 것은, 한국에 오는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가 많기로 유명한 동부 자와의 뽀노로고(Ponorogo) 출신으로 주위 친구들이 쉼터를 이용할 때마다 들렀던 이유도 있었지만, 본인이 사고를 당하여 쉼터를 이용한 기간도 만만치 않았다.

와디는 용접 작업 중에 화상을 당해 얼굴에 붕대를 감고 한 달여를 쉼터에서 쉰 적도 있고, 화상 치료가 끝나고 나서는 철 구조물에 손등이 눌리며, 손가락을 다쳐 또 한 달여를 쉼터에서 쉬기도 했다. 병원에 누워 있기에는 거동이 자유로운 반면 용접이라는 일의 특성상 안면과 손이 완치가 되기 전에는 일을 할 수가 없었던 터라, 와디는 쉼터를 제 집처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참 뜸하다 싶더니, 기숙사에서 지갑을 분실하는 사고를 당해 쉼터를 찾아왔었다. 송금 수수료 문제로 같이 일하는 친구와 매달 번갈아 가면서 송금을 하였던 와디는, 마침 받아뒀던 월급과 친구로부터 빌린 돈을 모아 송금할 작정으로 기숙사 서랍에 돈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일을 끝내고 돌아온 기숙사에서 유독 자신의 지갑만 사라진 것이었다.

와디는 근무 시간 중에 작업 현장을 떠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훤한 마당에 누가 훔쳐갔을 거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이야기하지 못하고 쉼터로 전화를 해 왔었다. 그 일로 우리는 우선 외국인등록증 분실 신고를 한 후, 경찰에 도움을 요구했던 기억이 있다.

"그럼, 다시 들어올 계획인가?"
"이제 가정 꾸려야죠. 집에 전화할 때마다 아버지께서 '너 몇 살인데 그렇게 살래'하시는데, 결혼해야겠어요. 이제 서른네 살이에요."
"결혼하고 뭐하고 싶은데요?"
"레옥(Reog)을 배울까 해요."
"레옥? 잘 모르겠는데. 그게 뭐지요?"
"호랑이 모양 머리하고 여러 사람이 춤추는 것 있잖아요."
"아, 그거, 그게 레옥인가? 그건 왜?"
"좋아해서요. 만들기도 하고 공연도 할까 해요."

의외였다. 레옥이라는 것이 와디의 고향 뽀노로고가 본산지라는 것은 얼핏 알고 있었지만, 4년을 외국에서 일했던 그가 귀국해서 전통 공예와 공연을 생각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아버지가 공연을 하셔서 어려서부터 종종 레옥을 따라 했었거든요. 그게 저에게 맞는 것 같아요."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다는 건가?"
"인도네시아 오면 꼭 놀러 오세요."

와디는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놀러오라는 답변으로 에둘러 넘어갔다. 공원이나 TV에서 레옥 공연을 본 적은 있었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공연을 하는지 모르는 입장에서 호기심이 갔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어쩌면 와디는 내가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 보았던 가믈란(Gamelan)을 비롯한 전통 공연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짙은 화장과 전통 의상으로 치장을 하고, 노래도 하고 잔심부름도 하던 어린 아이들과 같은 시절을 보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디의 아버지가 직업적으로 공연을 하시는 분인지, 농사나 다른 직업을 갖고 계시면서 절기 때마다 레옥 공연을 하시는지 모르지만, 와디는 그렇게 사는 아버지가 싫고, 자신 또한 그렇게 사는 것이 싫어 그 자리를 벗어나고자 이주노동을 택했었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이제 가정을 꾸리고 아버지를 따라 레옥을 하기 위해 귀국한다고 한다. 와디는 산업연수생으로 왔을 때도, 3년을 다 채우지 않고 귀국했었다. 그리고 또다시 3년이 아닌 2년 만에 귀국한다는 것이다.

남들은 한 해, 아니 한 달이라고 더 있어 보려고 체류 기한을 넘기기도 하는데, 1년 동안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기회를 뒤로하는 와디를 보며, '회귀본능'이라는 단어가 그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와디의 본능을 자극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너 몇 살인데 그렇게 살래"라는 늙으신 아버지의 호통 이전에, 좀 더 자극적인 무언가 있었을 것 같다.

언젠가 기회가 되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여, 와디의 '레옥' 공연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덧붙이는 글 | '레옥'은 반다랑인(Bandangin)왕조의 끄드리(Kediri)공주와 결혼하려는 청년과 호랑이 왕자의 싸움을 묘사한 전통 공연으로, 30여명의 무용수에 의해 독립 기념일 등에 각 지역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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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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