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들과 감자 캐는 모습
아이들과 감자 캐는 모습 ⓒ 김현
행주치마의 속으로 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구웠는지 더운 김이 홱 끼치는 굵은 감자 세 개가 손에 뿌듯이 쥐였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 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감자가 맛있단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막 사랑이 익어가는 두 청춘남녀의 행동에 넌지시 미소가 배어 나온다. 그런데 그 사랑을 표현하는 점순이의 말이 얄밉기도 하다. 주려면 곱게 주지 ‘느 집엔 이거 없지?’가 뭐냐.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라 그렇지 않아도 눈치 보며 살고 있는 판인데 저런 말꼬라지를 하니 어느 남자가 곱게 받아들일까.

그런데 갑자기 웬 감자타령이고, 사랑타령이냐고. 며칠 전 아이들 외가에 가 감자를 캐면서 동백꽃의 사랑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어린 아이들이 사랑이 뭔지 아냐고 할지 모르지만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사랑을 안다. 물론 그 사랑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사랑과는 조금은 다르지만 말이다.

감자의 바같줄기에 다닥다닥 붙은 감자모양의 변이들. 이 놈들은 흙속에 있지 못하고 흙 밖의 줄기에 달려있다.
감자의 바같줄기에 다닥다닥 붙은 감자모양의 변이들. 이 놈들은 흙속에 있지 못하고 흙 밖의 줄기에 달려있다. ⓒ 김현
“야, 딸. 점순이가 남자한테 왜 감자를 준 것 같아?”
“집에 있으니까 주었지 왜 주어.”
“집에 있다고 아무한테나 그냥 주냐?”
“그럴 수도 있지. 걔네 집엔 감자가 없으니까.”

“그래. 그럼 아들 넌 여자가 ‘느 집엔 이거 없지?’ 하며 감자나 사과를 주면 먹을래?”
“그걸 왜 먹어. 기분 나빠서 한 대 때려줄 거야.”
“야, 생각해서 먹을 것 주는데 기분 나쁘다고 때리는 게 어디 있냐.”
“아빠는, 주려면 그냥 주지 우리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약 올리는데 그걸 먹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야, 혹시 점순이라는 여자가 남자애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좋아하면 곱게 주지 약 올리겠어. 그럼 웃기는 얘지. 안 그래 누나?”
“맞아. 겨우 감자 주면서….”

ⓒ 김현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와 아이들 이모가 죽는다고 웃는다. 아이들에게 옛날엔 감자도 없어서 못 먹었다고 해도 곧이들으려 하지 않는다. 하기야 경험한 게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데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옛날을 그대로 이해시키려 한 사람이 잘못인지도 모른다.

감자 이야길 하고 있으려니 옛날 생각이 난다. 어렸을 땐 감자나 고구마 이삭을 주으러 다녔었다. 비닐봉지나 귀 떨어진 바구니 하나씩 손에 들고 다 캐 간 고구마밭이나 감자밭을 뒤지고 다녔다. 대부분 작은 알이 흙속에 숨어 있다 발견되었다. 그러다 어쩌다 운 좋게 대물이라도 발견하면 무슨 횡재한 기분이 들어 의기양양하곤 했다.

그런데 그건 감자를 캐면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두 아이들은 호미로 흙을 파다가 어쩌다 큰 감자를 발견하면 의기양양 소리친다.

“이거 왕감자다 왕감자. 이건 내꺼야. 아무도 손대면 안 돼. 알았지.”

그러면서 누가 만질까 봐 한쪽에 갖다 놓는다. 아이들 일이란 게 늘 그렇지만 어른들에게 일도 아이들에겐 놀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일이 놀이가 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하다가 싫증나면 바로 팽개친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다시 한다. 그러나 어른은 놀이가 아닌 일이기에 싫증이 나도, 아파도 꾹 참고 한다. 해서 농사일을 하는 대부분의 시골노인들은 관절염을 앓고 있다.

달팽이가 감자에 붙어 있다. 이 녀석들은 그날 아들 녀석의 즐거운 놀이 상대가 되어주었다.
달팽이가 감자에 붙어 있다. 이 녀석들은 그날 아들 녀석의 즐거운 놀이 상대가 되어주었다. ⓒ 김현
거기에 논일 밭일 많이 하는 아녀자(노인)들은 퍼렇게 긁은 심줄이 지렁이마냥 꾸불꾸불한 하지정맥류 환자들이 많다. 그래도 그런 걸로 병원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있는 도시 사람들이야 병원에 가 치료를 한다 어쩐다 하지만 시골사람들은 그냥 참고 일한다. 그런 것쯤은 병으로 생각지도 않는다.

감자를 캐고 있는 장모님의 장딴지도 푸른 심줄이 툭툭 튀어나와 있다. 아이들은 그걸 보고 ‘징그러워’ 하면서도 손으로 톡톡 건드려본다. 그러면 장모님은 웃으면서 ‘에끼 이놈들, 할미가 고생해서 그런 거야’ 하곤 웃음으로 넘긴다.

그런데 문제는 농약에도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는 거다. 장모님의 발등이 파랗게 물들어 있어 물으니 농약물이 들었다고 한다. 무슨 물감을 바른 것 같다. 비누로 씻어도 잘 닦이지 않는다며 싱겁게 웃는다. 혼자 살며 농사짓는 시골노인의 비애려니 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장모님은 딸들과 손자들과 함께 일하는 게 즐거운가 보다. 자식 손자들이 오면 늘 혼자 드시던 밥도 함께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감자를 캐면서도 아이들이 호미로 감자를 찍곤 하면 ‘그건 니가 찍었으니 니가 먹어야 된다잉’ 하면서 넉넉하게 웃는다. 감자 하나하나가 돈이고 자식들 먹을거리지만 아이들에겐 늘 그렇게 웃음으로 대한다. 찜통에서 잘 익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처럼 말이다.

ⓒ 김현

#감자#김유정#동백꽃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 나! 따로 가지 말고 함께 가자.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