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저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 축구교실 그냥 안할게요."

8일 저녁, 샤워하고 나온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남편과 나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축구 중계방송이라면 새벽 3시에도 일어나 보고, 지쳐 힘들어하면서도 날마다 친구들과 공을 차며, 축구화를 빨아주면 좋다고 안고 잘 정도인 아들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놀랐다.

그런 아들을 학원하나 보내지 못해 마음이 아팠었는데 마침 '방과 후 수업'이 있다고 했다. 싼 수업료로 아이들의 취미생활과 공부를 가르쳐 준다면서 좋아하는 축구부에 들겠다고 했다. 솔직히 돈이 무서워 말렸지만 너무나 하고 싶어 하기에 5만 원을 내고 2개월을 했고 이번에 새로 신청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신청하라고 했었는데 아들이 갑자기 축구를 하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남편과 나는 번갈아가며 물었다.

"왜? 형들이 때리니?"
"애들이 따돌리니?"
"선생님이 뭐라고 하니?"
"선생님이 때리니?"

이것저것 물어봐도 아들은 그냥 고개만 저었다. 아무래도 형들이 때리거나 친구들이 따돌린다고 생각한 나는 걱정이 되어 자꾸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금세 눈물을 뚝뚝 흘렸다.

"도대체 왜 그러니?"
"엄마, 아빠가 요즘 너무 힘드신 것 같아서요. 저 축구 안 해도 돼요. 정말이에요…."

돈 때문에 축구'방과후 교실' 포기한 아들

▲ 경제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는 서민들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다. (사진과 기사내용은 관련 없음)
ⓒ 오마이뉴스 남소연
봉제하청공장에서 재단을 하던 남편은 월급이 너무 밀리고 나오질 않아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밀린 월급을 포기했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저녁에 소주 한 병을 놓고 남편과 마주 앉았다. 내가 떡볶이 장사를 해서 번 돈은 장사 시작하며 빌린 돈 갚아야하고 생활비에도 써야하고 아이들 급식비도 내야 한다.

그런데 집엔 도시가스가 끊긴지 일주일째고 몇 달 째 밀린 집세 낼 날은 다가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남편에게 어디서 빌려서라도 해보자고 말을 하고 있었는데 샤워를 하던 아들이 그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아들이 대견하고 가슴이 미어져서 남편도 나도 울었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빨리 아들을 철들게 만들어서 가슴이 아팠는데….

아들은 일하는 엄마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밥을 짓고 설거지를 했다. 일하러 간 엄마를 기다리며 4살 아래 여동생을 돌보고 그 동생과 밤마다 엄마 오는 길목에서 목을 빼고 엄마를 기다렸고 엄마가 떡볶이 장사를 하며 너무 힘드신 것 같아 나중에 크면 포장마차에서 음식 만드는 걸 도와드리겠다고 말을 해서 엄마를 자주 울렸던 그 아들이 또 엄마와 아빠를 울렸다.

괜찮으니 넌 아무 걱정 말고 축구를 하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축구를 하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아들을 설득하다가 결국 아들에게 지고 말았다. 축구는 나중에 해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작은 방으로 아들이 건너가자 남편은 "이제부터는 우리 아들 때문에라도 집에 빨리 들어오면 안 되겠다. 늦게까지 일해서라도 돈 많이 벌어야지"라고 말을 했다.

엊그제, 오후 늦게 문을 열고 밤늦게 문을 닫는 야시장을 돌아다니시며 도장 새기는 일을 하시는 윗집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요즘 맨날 뉴스에서 난리인 코스닥은 뭐고 코스피는 뭐예요?"

아저씨는 한숨을 쉬며 대답을 하셨다.

"코딱진지 낯짝인지 그런 건 내가 알아서 뭐 하겄소. 다 돈 있는 사람들 이야기지. 우리 같은 서민들은 죽어라 일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쁜데…. 나는 신문을 봐도 울화통이 터져서 그런 건 그냥 넘기요. 뉴스에도 그런 것 나오면 나는 그냥 다른 데로 채널을 돌려 버리고…."

요즘 들어 뉴스에선 연일 주가가 오르니 땅값이 오르니 난리이고 신도시가 어디에 들어서고 그걸 서로 분양받으려고 싸우고 다친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같은 하늘 아래에 살지만 우린 분명 딴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일거리가 없어 막노동하던 현미아빠는 날마다 술로 하루해를 넘기고, 작은 하청공장에서 해고당한 승민이 아빠는 공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보지만 나이가 많다고 받아주지도 않아 승민이 엄마가 새벽이면 우유를 배달하고 낮엔 직원 4명이 일하는 작은 공장에 나가서 번 돈으로 세 딸을 교육시키고 살아간다.

100원짜리 과자장사를 하는 할머니는 하루 3천원을 벌어 생활을 이어나가고 나같이 허름한 곳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돈 있는 사람들이 깔끔하게 인테리어를 해서 손님들을 유혹하는 가게에 밀려 늘 그 자리에서 허덕이며 살아간다.

연일 오르는 주가·신도시 발표는 남의 나라 이야기

▲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진은 남대문 시장의 모습. (기사 내용과 사진은 관련 없음)
ⓒ 오마이뉴스 남소연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했던가. 요즘 우리나라는 티끌 주우러 다니면 바보 소리 듣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언제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들고 있단 말인가. 아파트 한 채만 잘 사도 몇 달 지나지 않아 몇 천만원 벌기 우습고 주식만 잘 사도 부자 되는 건 따 놓은 당상이고, 자투리 땅 하나만 잘 사 두어도 그 땅이 부자를 만들어 준다니 신기하고 참 좋은 세상이다.

어째서 우린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단 말인가. 주5일제가 뭔지도 모르고 일주일 내내 작은 공장에서 12시간씩 아무리 죽어라 일을 해 봐도 날마다 세금 내고 먹고 사는 걱정을 해야 하고 아파트를 몇 십 년을 지으러 다녔어도 정작 내가 살 아파트는 하나도 없다고 한숨 쉬는 이웃 아저씨들이 있다.

날마다 떡볶이를 팔며 비록 떡볶이 장사를 해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참교육이 뭔지를 알려준다고 자부해보지만 아이들 학원 하나도 보내지 못하고 학원은커녕 가스비 걱정을 해야 한다. 가장 열심히 일하는 우린 대한민국에서 돈 버는 데는 가장 능력이 없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없어 딸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못하면서도 산이며 들로 데리고 다니며 자연공부를 시켰고 착하게 살고 열심히 살면 분명 좋은 날이 있다고 가르쳤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바른 길이라 가르쳤다. 그러나 속마음은 대한민국에 사는 한 넌 절대 그렇게 살지 말아달라고 외치고 있으니 이는 또 무슨 조화란 말인가.

돈이 돈을 버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린 가끔 로또복권 한 장을 사들고 일주일을 행복해 해보기도 하지만 휴지통에 들어가는 순간 우린 다시 가난한 나로 돌아와서 소주 한 잔에 눈물을 섞고 막걸리 한잔에 시름을 나눌 수밖에 없다.

뉴스에서 말하는 주가상승이나 신도시 개발 소식은 열심히 일하는 우리 서민들 귀에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으면 참 좋겠다. 그러면 우리 남편도 공장에서 한숨을 쉬지 않고 더욱 열심히 일을 할 것 같고 나 역시도 비록 떡볶이 장사를 하지만 콧노래 부르며 더욱 열심히 살 것 같아서이다.

9일 아침, 산동네 사출공장에서 일하는 내 친구 은숙이가 요즘 너무 늦게까지 일을 해서 힘들어 죽겠다고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딱히 위로할 말이 없어서 "내가 로또복권만 되면 너 집하나 사주고 편히 쉬게 해줄게"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내가 로또복권 되면 너 근사한 가게 하나 차려줄게."

우리 서로 좋아라하며 행복한 하루를 시작했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에서 주가가 아무리 오른들, 과연 이 행복을 따라올 수 있을까?

나는 오늘 서민들에게 이런 뉴스를 보내고 싶다.

"오늘은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행복을 담아서 뿌려 줄 것이고 시원한 막걸리 한사발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입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니 몸과 정신이 건강한 하루만 보낸다면 당신의 행복주가지수는 날마다 상한가를 치솟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아들의 행복지수를 높여 주기위해 오늘밤엔 운동장에 나가 축구 잘하는 아들에게 축구를 한 수 배워야겠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3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