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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혁명 드라마로 예외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동문수학하던 그 시절>. 후난 제1사범학교 학생들이 드라마와 관련된 행사의 게시판을 제작하고 있다.
중국혁명 드라마로 예외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동문수학하던 그 시절>. 후난 제1사범학교 학생들이 드라마와 관련된 행사의 게시판을 제작하고 있다. ⓒ 모종혁

마오쩌둥이 수학한 후난 제1사범학교 본관 전경.
마오쩌둥이 수학한 후난 제1사범학교 본관 전경. ⓒ 모종혁
"마오쩌둥 주석의 인간적이고 소박한 청년 시절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어요."

후난성 장샤시에 사는 차오위안위안(24·여)은 요즘 홍색(紅色·중국혁명) 드라마 한 편에 빠져있다. 오랫동안 한류 팬으로 즐겨보던 한국 드라마를 섭렵했던 그에게 이러한 변화는 뜻밖이다.

차오는 "그동안 고리타분한 내용과 경직된 형식에 얽매인 홍색 드라마는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었다"면서 "가벼운 형식에다 한국 애정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빠른 내용 전개에 관심이 끌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말부터 중국 국영 CCTV는 공산중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이 후난 제1사범학교에서 공부하던 젊은 시절을 그린 드라마 <동문수학하던 그 시절(이하 '동학소년')>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이 드라마는 중국 전역을 시청권으로 하는 제1종합채널을 시작으로 제8드라마채널을 거쳐, 현재 전국 각지의 지방방송국에서 황금 시간대에 전파를 타고 있다.

차오가 <동학소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드라마의 배경이 된 후난 제1사범학교 주변에 살기 때문이다. 1911년 열일곱 살에 고향인 샹탄현 사오산을 떠나 후난성 수도인 창사에 온 마오쩌둥은 1913년부터 1918년까지 후난 제1사범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평소에는 마오 주석에 대한 관심이 적은데다 비슷한 드라마나 영화가 너무 많았다"면서 "위대한 지도자가 아닌 사랑과 진로에 고민하던 한 젊은이의 모습이 현재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사망 30년 뒤에도 주목받는 공산중국의 '국부' 마오쩌둥

작년 9월 9일 마오쩌둥 서거 30주년을 맞아 마오 기념배지를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샤오밍싱.(왼쪽에 등을 돌리고 선 이)
작년 9월 9일 마오쩌둥 서거 30주년을 맞아 마오 기념배지를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샤오밍싱.(왼쪽에 등을 돌리고 선 이) ⓒ 모종혁
13억 중국인에게 마오쩌둥(1893~1976)의 존재는 각별하다. 중국공산당의 창시자,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부(國父), 마르크스·레닌과 비견되는 위대한 공산주의 사상가(東方紅)….

마오는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작년 9월 9일 마오 사망 30주년을 맞아 중국 전역에서는 각종 기념행사가 열렸다. 대부분의 행사는 중국공산당이 주관한 것이 아니라 반관반민 성격의 민간단체들이 이끌었다.

같은 날 쓰촨성 청두시 텐푸광장에서 필자는 흥미로운 행사를 목격했다. 고향에서 사설 마오쩌둥기념관을 운영 중인 샤오밍싱이 지인들과 더불어 자비를 털어 시민들에게 마오 기념배지를 증정하는 것이었다.

샤오는 "마오는 아편전쟁 이래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자본주의의 침탈 속에서 중국 인민을 각성시켜 신중국을 건국한 위대한 인물"이라며 "마오가 없었다면 오늘날 부강한 중국은 결코 건설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성 샹탄현 사오산에 있는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중국인들. 중국인들에게 마오는 '국부'와 같은 존재이다.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성 샹탄현 사오산에 있는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중국인들. 중국인들에게 마오는 '국부'와 같은 존재이다. ⓒ 모종혁
중국 전역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마오에 대한 추모붐을 목도한 장뤼하오 창샤방송그룹 부회장은 여기서 힌트를 얻어 드라마 제작을 구상한다. 후난 제1사범학교 재학시절의 마오를 소재로 한 청춘 멜로드라마를 제작키로 한 것.

마침 작년 10월에는 오랫동안 마오의 대역배우로 이름높던 왕리셴이 대만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11월에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센터에서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이 그린 마오쩌둥 초상화가 1740만 달러에 판매되어 워홀 작품 가운데 역대 최고 경매가를 기록했다.

장 부회장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마오의 큰 아들 안잉(1922~1950) 미망인인 샤오화와 둘째 아들 안칭을 찾아 드라마 제작 의사를 전달했다. 안잉과 안칭은 마오쩌둥이 가장 사랑했었다고 고백한 둘째 부인 양카이후이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마오쩌둥과 양카이후이는 후난 제1사범학교의 학우로, 이들 사이에는 안잉, 안칭, 안룽 3형제를 두었다. 샤오화와 마오안칭은 드라마 제작을 적극 동의했다. 그 뒤 안칭은 지난 3월 23일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숨졌다.

'인간' 마오쩌둥에 대한 상반된 평가 속에 대부분 호평

후난 제1사범학교에 보존된 교실에서 마오쩌둥이 앉아 공부하던 책상과 의자.
후난 제1사범학교에 보존된 교실에서 마오쩌둥이 앉아 공부하던 책상과 의자. ⓒ 모종혁
드라마 <동학소년>의 제목은 마오쩌둥이 1925년 지은 시 '창샤 친위안춘에서'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동학소년>은 방영되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마오쩌둥은 위대한 영웅의 이미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1949년 공산중국 건국이래 마오와 관련된 수백편의 드라마와 영화가 제작됐지만 마오는 언제나 근엄하고 엄숙한 인물이었다. <동학소년>이 그린 마오는 이런 드라마의 공식을 깨뜨렸다.

양카이후이를 위해 연서를 쓰거나 쑥스럽게 사랑을 고백하는 청년 마오의 모습은 오늘날 소심한 남학생과 다를 바 없다. 시험 준비를 위해 거리를 거닐면서도 책을 보거나 친구들과 언쟁을 벌이며 답안을 찾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서점에서 책 사는 문제로 직원과 말다툼을 벌이거나 동전을 던지며 성질을 부리는 마오의 모습은 여느 다혈질의 중국인과 같았다. 졸업 후 장래 때문에 여러 고민을 하고 베이징으로 가기 위해 부모에게 손 벌리는 모습도 마오의 나약한 심성을 보여준다.

장터거리를 책을 보면서 걸어다니는 마오쩌둥. 다른 학우들보다 나이가 많았던 마오는 다른 학우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책을 끼고 살았다.
장터거리를 책을 보면서 걸어다니는 마오쩌둥. 다른 학우들보다 나이가 많았던 마오는 다른 학우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책을 끼고 살았다. ⓒ 모종혁
중국의 대표적인 포털사이트 바이두 '동학소년' 카페에서 일부 네티즌들은 드라마 상의 마오를 지나치게 가볍게 묘사했다고 비난한다. 일부 언론에서도 "드라마가 대중성에 치중하고 스토리를 흥미 위주로만 그리다보니, 마오와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가 과장되거나 왜곡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젊은 마오의 모습이 사실감이 더해져 생동감과 참신성이 돋보였다"고 호평했다. 차오위안위안도 "한류 드라마에 빠진 젊은이들의 기호에 딱 맞는 줄거리와 극 전개를 지녔다"고 말했다.

이를 보여주듯, CCTV 제1종합채널에서 방영된 <동학소년>의 평균 시청률은 6%로 올해 CCTV 드라마 중 1위를 차지했다. 제8드라마채널이 재방하여 지난 달 30일 종영된 '동학소년'의 마지막 편은 시청률이 8%로, 지난 몇 년 사이 CCTV 드라마 가운데 최고를 기록했다.

바이두 카페의 한 네티즌은 "<동학소년>은 최근 중국 드라마 중 가장 뛰어난 청춘 멜로물로, 나로 하여금 젊은이가 지녀야 할 적극적인 정신과 열정적인 조국애를 제시했다"고 격찬했다.

드라마 속에 숨은 중국공산당의 뜻

마오쩌둥이 자주 찾아서 책을 읽고 사색에 잠겼던 유에루(岳麓)서원. 양카이후이와 사랑을 속삭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오쩌둥이 자주 찾아서 책을 읽고 사색에 잠겼던 유에루(岳麓)서원. 양카이후이와 사랑을 속삭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 모종혁
드라마 <동학소년>의 방영은 마오쩌둥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져 중국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마오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마오는 1950년대 반우파운동과 대약진운동, 1960년대 문화대혁명 등 여러 정책 결정의 오류를 범해 중국을 퇴보시키고 수천만 명의 인명을 앗아간 인물이라는 혹독한 평가도 받고 있다. 마오가 공산주의 성전인 <자본론>보다는 봉건왕조 역사서인 <자치통감>을 탐독하고 수십 명의 여성들을 탐닉했던 것은 중국에서 더 이상 이야깃거리가 아니다.

인간적이면서도 비전과 결단력을 고루 갖춘 마오의 21세기 신(新)영웅 형상은 반관영 통신사 <중국신문>이 벌인 투표에서 나타냈다. '내 마음 속의 영웅'이라는 제목의 인터넷 조사에서 마오는 6명의 제시 인물 중 1위에 올랐다.

지난 달 9일 <인민일보>는 "35세 이하가 60%인 4000여명의 인터넷 투자자 가운데 2536명이 마오를 1위로 꼽았다"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오늘날 중국 네티즌, 특히 젊은이들의 영웅관을 파악하는데 참고가 될 만한 자료"라고 보도했다.

영웅 마오쩌둥과 인간 마오쩌둥까지. 한국에서도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 S.슈람의 <毛澤東>을 통해서 영웅이 되었던 마오는 해리슨 솔즈베리의 <새로운 황제들>, 장룽의 <마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통해 권력욕에 사로잡힌 독재자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영웅 마오쩌둥과 인간 마오쩌둥까지. 한국에서도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 S.슈람의 <毛澤東>을 통해서 영웅이 되었던 마오는 해리슨 솔즈베리의 <새로운 황제들>, 장룽의 <마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통해 권력욕에 사로잡힌 독재자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 모종혁
중국정부는 드라마 <동학소년>의 제작과 방영에 있어 다방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는 마오쩌둥을 오늘날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본받을만하며 거리감이 없이 친근한 우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다.

지난 5일 <경제일보>는 "<동학소년>은 20세기 초 마오쩌둥을 위시한 우수한 젊은이들이 재기발랄하고 기개가 넘친 학습생활과 낙관적이고 진취적인 생활태도로 살아갔음을 보여준다"면서 "오늘날 배움의 길을 걷는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본보기를 제시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6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베이징에서 10여명의 전문가가 모여 <동학소년>이 보여준 중국 드라마의 지향점 및 오늘날 젊은이의 의식관에 대해서 토론했다"고 보도했다.

토론회에서 루하이보 중앙희극대학 교수는 "<동학소년>이 변화하는 시청자의 요구를 받아들여 새로운 청춘드라마의 범례를 만들었고 한국·일본 드라마의 영향에서 우리만의 가치관을 지닌 주류 드라마 진영의 위신을 지켜주었다"고 평가했다.

양신구이 중국공산당 문예국장도 "중대한 혁명사건이나 중요한 혁명인물을 형상화한 작품에 계속 제작해야 한다"면서 "다양한 형식을 담아 중국만의 특색, 중국만의 스타일, 중국만의 기풍을 지닌 작품을 만들 것"을 역설했다.

드라마 한 편에도 중국정부와 중국공산당의 뜻과 의지가 깊이 숨어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베이징 텐안먼(天安門)광장에 걸려있는 마오쩌둥 초상화. 마오에 의해 죽음의 목전까지 떨어졌던 덩샤오핑(鄧小平)은 영원히 마오의 초상화를 걸어둘 것이라고 했다. 마오는 중국공산당의 일당통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베이징 텐안먼(天安門)광장에 걸려있는 마오쩌둥 초상화. 마오에 의해 죽음의 목전까지 떨어졌던 덩샤오핑(鄧小平)은 영원히 마오의 초상화를 걸어둘 것이라고 했다. 마오는 중국공산당의 일당통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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