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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권 영업시간단축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금융노조 주최로 '한국노동자 노동시간,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 이지섭
6월 4일, 금융노조는 은행연합회관에서 "한국노동자, 장시간노동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날 주제발표 후 이루어진 사례발표에서 김재현 금융노조 정책본부장은 금융노동자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영업시간단축 요구의 배경을 실제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느끼고 있는 문제와 연결해서 설명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주목할 만한 항목들을 살펴보면, 우선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곳의 직원 수가 적절하다"는 항목은 32.8점의 점수를 받아 은행노동자들은 직원 수가 적어 노동강도가 세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동강도가 심한 이유에 대해 36.6%가 "현재의 업무량 과다"를, 34.2%는 인원부족을 꼽은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김재현 정책본부장은 "이런 조사결과가 임단협 요구사항의 토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퇴근시간에서 출근시간을 뺀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산정했을 때(휴게시간 포함) "은행노동자들은 월 250시간의 장시간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시중은행이 11시간 52분, 국책은행이 11시간 48분, 특수은행이 10시간 56분으로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의 근무시간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이 12시간 55분의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했고 그 다음은 우리은행, 신한은행, 국민은행 순이었다.

한편, 이번 영업시간단축 요구에 반발하는 일반소비자들은 주로 은행의 본점이 아니라 지점에서 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지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퇴근시간이 늦어지는 이유로 꼽은 이유가 흥미롭다. 본점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이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로 꼽힌 것이 '마케팅'이었다(본점 11.8%, 지점 88.2%).

이 밖에 "기타"를 제외하고 본점에서 가장 큰 이유로 꼽힌 '직장문화(눈치)'는 본점 52.2%, 지점 47.8%로 비슷했으나 '업무관련 교육연수'는 본점 33.1% 지점 66.9%, '연체독촉'은 본점 21% 지점 79%로 나오는 등 지점 노동자들이 늦게 퇴근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객 관련 업무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지점 노동자들의 잔무처리 시간은 "3-4시간 이상"이라는 응답이 절반이 넘었다. 김재현 정책본부장은 "IMF 이후 간접금융에서 직접금융으로 전환되면서 은행이 투자상품, 파생상품 판매소로 전락한 현실을 보여주는 통계"라고 지적했다.

또한 은행에서 진행되고 있는 캠페인 수는 평균 4.2개로 많은 노동자들이 실적압박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특히 우리은행은 캠페인 수가 8.7개에 달했다. 이는 "집에 가서도 친구, 친지에게 가입권유 전화를 해야 하는 실적압박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김재현 정책본부장의 주장이다.

▲ '은행노동자들 근로조건 실태'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김재현 금융노조 정책본부장
ⓒ 이지섭

김재현 정책본부장의 이런 발표는 최근 임단협 요구안에 '영업시간단축 요구'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언론의 뭇매를 맞은 상황에서 영업시간단축이 한국의 일상화된 장시간노동과 연결된 문제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영업시간단축은 돈 많이 받는 사람들의 배부른 소리가 아니라, 그 이면에 깔려있는 '하루평균 12시간의 장시간노동'이라는 열악한 근로조건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참석한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근로시간단축은 양극화가 극심하게 진행된 한국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서는 절반의 논의밖에 되지 않는다"며 "비정규직은 주40시간제조차 제대로 적용되지 않아 노동단축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근로시간단축은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빼고서 말할 수 없다. 둘이 같이 이루어져야 진짜 '노동운동의 대의'"라고 주장했다. 인력문제 해결 없이는 "마케팅"에 시달리는 장시간노동의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은행의 장시간노동은 "정규직 / 비정규직 / ATM 3단계로 분화해 고객을 응대하는 시스템"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신규인력고용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없이 영업시간단축, 근로시간단축을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주제발표를 맡았던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마무리 발언에서 "언론에서 영업시간단축만을 부각시키면서 영업시간단축이 조준했던 '실근로시간단축'은 묻혀졌다"면서 "금융산업의 장시간노동은 일반국민들은 잘 모른다. 영업시간단축과 실근로시간단축을 연결할 논리적 고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영업시간단축은 금융소비자들이 절대로 찬성할 수 없는 주제다"고 말하면서 "창구 추가고용, 영업시간 끝난 후의 업무 프로세스의 효율성 문제 등도 함께 고려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에는 경총의 이호성 경제조사본부장, 김인곤 노동부 임금근로시간정책팀장 등 경제계와 정부측 인사도 참여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됐으나 근로시간단축의 일반적 내용에 대한 각자의 입장만을 이야기하는데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금융노조는 이 날 열린 2차 산별중앙교섭에서 "단체협약 8개 의제 14개 안건 18개 조문" 신설 및 개정, 임금 9.3% 인상 등의 요구안을 내놓고 협상을 벌였다. 다음 산별중앙교섭회의는 6월 7일에 있을 예정이다.

태그:#금융노조, #영업시간 단축, #장시간 노동, #근로시간 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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