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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버거ㆍ장 모르 <말하기의 다른 방법>
ⓒ 눈빛출판사
존 버거와 장 모르가 함께 쓴 <말하기의 다른 방법>은 사진과 말과 글이 어우러진 책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진집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서문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산악지방에 사는 농부들의 생활을 담은 사진집’을 별러왔던 모양이다. 실제로 ‘마르셀’이라는 알프스 고지대에 사는 한 노인의 일상 장면을 이 책은 보여준다.

위에는 사진을 놓고 아래는 이 농부의 생생한 말을 그대로 옮겨준다. 사진가가 소의 머리 전체가 아닌 눈 부위만 클로즈업해서 찍자 농부가 말한다. “이건 사진 찍을 게 못 돼!”라고. 그러고는 침묵 후에 한마디 덧붙이기를 “사람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야. 머리를 찍으려면 머리 전체, 그리고 어깨까지 찍어야 하거든. 얼굴 일부만 나오게 하지 말고.”

▲ 농부 마르셀.
ⓒ 눈빛출판사
자, 여기 앞의 농부가 왼손을 허리춤에 짚고 찍은 또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농부는 이 사진을 받아들고 흡족해 한다. “이제 내 증손자들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겠군”이라면서. 어쩌면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데서, 온전히 실어 나르고 있는 데서 오는 만족감은 아닐는지?

사진은 때때로 왜곡되어 전달되기도 한다. 촬영하는 이가 인물의 어떤 순간, 어떤 모습을 포착하느냐에 따라 인물의 인상이나 삶의 현장은 완전히 달라지거나 뒤바뀔 수 있다.

장 모르는 자신의 경험 사례를 들려준다. 그가 한 통신사에 보낸 ‘티토와 고물카의 첫 번째 회담 장면’사진은 실리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통신사가 요구하는 내용은 음산하고 위협적인 인물로서의 티토였다. 그런데 장 모르는 인간적이고 호감을 주는 모습으로 티토를 담았던 것이다.

▲ 티토와 고물카의 첫번째 회담.
ⓒ 눈빛출판사
한 장의 사진은 보는 이에 따라 그 내용과 의미가 달라진다. 똑같은 사진일망정 똑같은 눈은 아니라는 것이다. 장 모르는 재미있는 실험 결과를 보여준다. 실제로는 ‘송수관 위를 시원한 잠자리로 청한 소년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무엇인지 묻는다. 물론 대답은 한결같지 않다. 제각각이다.

1부 ‘내 카메라 너머에’가 장 모르가 찍고 쓴 것이라면, 2부 ‘모습들’은 존 버거가 접근해 보고 있는 사진에 관한 이론적 고찰이다. 내용이 어려워 쉽게 정리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핵심을 추려볼 수는 있다.

사진은 “어떤 연속체에서 꺼내 온” 불연속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시간의 전후가 단절되어 있다. 존 버거는 이를 ‘(당시) 기록된 순간과 (지금) 바라보는 순간 사이의 심연’으로 표현한다. 사진은 시간의 흐름이 아닌 어떤 한 순간을 기록한다. 여기서 무언가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그 위에 과거와 현재를 덧붙이”는 것이므로 사진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송수관 위를 시원한 잠자리로 청한 소년의 모습을 찍은 사진.
ⓒ 눈빛출판사
사진이 담고 있는 어떤 ‘모습의 수수께끼’에 다가가기 위해 사진을 보는 이가 접근하게 되는 과정을 다섯 개의 도식으로 풀어 보이기도 한다(화살표와 원으로 표현한).

우선 사진은 시간을 싹둑 잘라서 그 순간 진행되고 있던 사건이나 사건들의 단면을 드러낸다. 그러나 보는 이는 이 잘린 단면을 매개로 하여 시간의 단절을 메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메우는 과정에서 의미는 확대된다. “(사진 속의) 사건과 대면하고 있는 관념은 그 사건을 확대하여 다른 사건들과 접목시키고 그렇게 하여 지름을 늘인다”는 설명이다.

존 버거의 사진에 관한 이론적 고찰은 솔직히 읽기에 불편하다. 그러나 희미하게나마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독자들을 배려하는 처지에서 권하고 싶은 페이지들은 아무래도 이 책에 실린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존 버거ㆍ장 모르/ 옮긴이: 이희재/ 펴낸날: 2004년 11월 11일/ 펴낸곳: 눈빛출판사


말하기의 다른 방법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이희재 옮김, 눈빛(2004)


태그:#장 모르, #존 머거, #사진, #인물,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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