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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얼굴들
그리운 얼굴들 ⓒ 정기상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처지였다. 모두가 가난하였던 60 년대에는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하여도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어 진학을 포기하는 친구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나로서는 여행을 보내달라고 말할 염치가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수학여행지는 서울이었고 고등학교 때의 수학여행지은 제주도였다.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찌나 서운하였던지, 그 마음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갈 수 없다는 처지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쉬운 마음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원망하는 마음은 없었다.

내 고향 전북 고창엔 기차역이 없다. 당연히 기차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교과서에서 기차의 모습을 배우기는 했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고향에 기차역이 세워지지 못한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주민들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포기하였다는 것이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지역에서 살고 있는 많은 분들이 기차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였다고 한다. 일본이 수탈을 목적으로 기차를 놓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전력 반대하였다는 것이다. 땅이 울려서 농사가 되지 않는다는 핑계를 내세워 기차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였고 결국 이곳까지 들어오지 못하고 정읍에서 장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당시에 서울을 가려면 정읍까지 버스로 가서 정읍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타야만 하였다. 서울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곳에 가기만 하면 당장 성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을 정도였다. 서울로 향하는 마음은 컸지만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기차를 타야 서울에 갈 수 있었기에, 기차를 타는 것이 소원이 되기도 하였다.

기차가 타고 싶었다. 그러나 기차를 탈 기회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기차를 탈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었다. 기차를 타기만 하면 모든 꿈이 다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기차를 탈 수 없으니, 안타까웠다. 그러던 중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 서울에 사는 누나네 집에 가져다 줄 물건이 생긴 것이다.

어머니에게 떼를 썼다. 어머니 대신 가겠다고 고집을 피운 것이다. 어머니도 난감해 하셨다. 기차 비를 아까워하시던 어머니는 결국 나를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바쁘시기도 하였지만,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하늘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상을 가슴에 안을 수 있다고 믿었다.

고창에서 오후에 출발하여 정읍 역에 도착하니, 밤이 되었다. 버스도 많이 타보지 않은 상태였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고창에서 정읍까지 가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차멀미를 한 것이다. 멀미는 생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기차를 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해낼 수 있었다.

처음으로 기차를 타는 기쁨

정읍 역에서 저녁 8시 10분에 출발하는 서울 용산행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여행의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하던 때였다.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흥분되어 있었다.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540원이었다. 정읍에서 용산까지의 기차 삯이. 물론 화폐가치가 지금과는 다르지만, 그 돈으로 서울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어머니가 동행하지 못한 것은 그 돈을 아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돈의 가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기차를 탈 수 있다는 사실과 서울로 향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였다.

돌아갈 수 없는 그 때
돌아갈 수 없는 그 때 ⓒ 정기상
기차는 어둠을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내려앉은 새카만 공간을 달리는 차창 사이로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마음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겹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끝없이 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였었다. 어둠 너머 환한 세상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신이 났었다. 굉음을 울리며 달리는 기차는 마법이었다.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환한 불빛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세계였다. 그것에 취해 바라보고 있노라니, 8시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용산역에 도착하니 새벽 4시가 되어 있었다. 신기하였다. 이곳이 서울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곳은 분명 별천지였다.

그 뒤로 40여년이 지났다. 살아오면서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할 때마다 기차를 처음 타던 때의 경이로움으로 되살려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힘을 냈다. 그것은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어둠을 뚫고 달리던 철마의 힘을 생각하면 힘이 솟았다.

세상은 변하였다. 세월이 흘러갔으니, 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은 기차 여행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더욱 더 윤이 나고 빛나고 있다. 처음으로 가치를 탔던 느낌이 시간이 흘러갈수록 새로워지고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 때의 기차는 KTX처럼 빠르지도 않고 편리하지도 않았다.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입석이었다. 사람으로 그득 차 있는 틈바구니 사이를 누비면서 오징어를 팔던 판매원의 신바람처럼 내 가슴에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다. 540원 추억은 삶의 활력소였고 인생의 폭을 넓혀주는 동력이었다.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열차를 타고 싶다. 그리고 마음껏 달리고 싶다. 끝도 없이.<春城>

덧붙이는 글 | <철도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응모글. 단독 송고


#KTX#기차#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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