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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5월 1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선상에서 이라크 전쟁의 임무 완료를 선언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함교에 '임무 완료'라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사진 위쪽). 힐러리 상원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 문제를 거론하며 부시를 비판하는 글을 게재했다(사진 아래쪽).
ⓒ www.hillaryclinton.com

미국 의회가 한미동맹을 확인하고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에 한국군이 참전한 사실에 감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고 한다. 결의안은 한국이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이라크전에 파견한 동맹국이며, 이라크 재건과 안정화 사업에 2억6천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음을 명시했다는 내용이다.

미 하원외교위원회가 한국의 해외 파병에 처음으로 감사 결의안을 채택한 사실을 놓고, 보람과 긍지로 마냥 즐겁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괴감과 착잡한 심경을 뿌리치지 못하는 현실이 오히려 답답할 따름이다.

한국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보낸 테러와의 전쟁을 칭찬은커녕 비난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전 세계를 대 테러 전쟁의 거대한 전쟁터로 만들었다"는 세계적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AI)의 연례인권보고서 비판을 듣는 우리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앰네스티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비롯된 공포정치가 세계를 위험할 정도로 분열시키고, 인권 침해의 악순환이 가속화돼 인권의 신성불가침이 무력화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자기 나라 이익을 위해 벌인 부도덕한 전쟁에 동맹국으로서 줄서기를 '강요'하며 한국을 끌어들인 전쟁이었으니, 미국으로서는 감사의 마음에 앞서 미안한 마음을 지녀야 당연하다.

겉으로는 감사하면서 한국 윽박지르는 미국

▲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렇다면 미국은 그러한 마음에 걸맞은 자세와 행동을 보여줘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한국을 윽박지르며 한민족의 평화를 향한 발목을 잡고 달려드니 될 일인가.

미국은 이달 말로 예정된 대북 쌀 지원을 2·13 합의 초기 조치 이행 때까지 유보해 달라는 뜻을 우리 정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미국 정부가 주한 미국 대사관을 통해 북한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때까지 쌀 지원을 유보해 달라는 뜻을 우리 정부에 전해왔다는 것이다.

지난 4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남북관계 진전은 6자회담에 반보 뒤처져 가야한다"며 남북 화해와 협력의 노력에 제동을 걸었던 '속도 조절론' 내지는 '반보 지체론' 요구인 셈이다. 남북관계가 활기를 띄려고 할 때마다 미국의 견제가 어김없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우선 당장 오는 29일로 예정된 남북장관급 회담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걱정이다. 한국 정부도 이달 말로 합의했던 대북 쌀 차관 수송을 2·13합의 이행이 진전될 때까지 미룰 방침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6자회담 진전을 어렵게 만든 장본인이 과연 누구인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의 틀을 마련한 '9·19 공동성명' 이후 미국은 북한의 돈줄을 막아버린 방코델타아시아 북한 자금 동결 문제를 터뜨렸다. 이로 인해 6자회담은 1년이 넘도록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미국은 지난 2·13합의에서 방코델타아시아 문제 해결 등을 약속했다. 문제가 이런 식으로 될 일이었다면 미국이 애초부터 이 문제를 일으켜 6자회담을 어렵게 만들지 말았어야 옳다. 6자회담 교착의 책임을 미국이 부인하기 어렵게 된 꼴이다.

따라서 미국은 방코델타아시아 문제를 먼저 풀고 나서 북한의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게 도리요 순서다. 그럼에도 방코델타아시아 문제의 주체인 미국 재무부가 손을 놓고 딴전을 펴 문제의 해결이 지지부진해진 상태다. 2·13합의의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미국의 책임이 엄연하다.

이처럼 미국이 자신의 약속은 지키지 않으면서 상대의 약속 이행만 고집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하물며 엉뚱하게도 2·13합의의 약속 이행과 무관한 남북관계의 약속을 깨가면서까지 미국 편만 들어 북한을 압박하라고 한국 정부를 몰아붙인다면, 누가 봐도 옳지 않다.

미, 한국 도움 고맙게 여긴다면 한민족 평화 노력 방해는 말아야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한국군이 도와준 것을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한다면, 한국 정부가 기울이는 한민족 평화를 위한 노력을 돕지는 못할지언정 이를 방해하는 짓은 말아야 한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식'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지려고 할 때마다 이를 견제하고 나서서야 되겠는가.

북한이 평화의 단계로 나오면 나올수록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6자회담 진전에도 도움이 됐으면 됐지 걸림돌이 될 턱이 없다. 미국은 개성공단의 평화적 의미와 결과를 왜 애써 외면하려는가.

미국이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을 견제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한반도 평화에 대한 미국의 진정성을 누가 믿으려 하겠는가. 6자회담이 진전과 교착을 오락가락하는 것도 미국이 패권전략을 위해 한반도를 희생물로 삼아 적대적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미국은 얼토당토않게 남북관계 '속도조절론'을 내세울 게 아니라 남북관계의 평화로운 진행이 6자회담 진전에도 기여하게 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문제 당사자로서 한국정부의 남북관계 우선론을 당사자 해결주의 원칙으로서 존중해야 마땅하다는 뜻이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서도 북한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브루스 커밍스 미 시카고대 교수의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북 쌀 차관 약속의 이행을 미루겠다는 한국 정부의 방침이 사실이라면, 이 또한 결코 납득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세기 일제 식민지 지배에서 분단과 전쟁, 냉전 등에 이르기까지 외세의 개입과 침탈로 우리 민족이 숱한 불행과 수난을 겪지 않았던가.

민주화를 이룩한 것도 우리 자신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였다. 6·25 전쟁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의 열차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민족의 혈맥을 이을 수 있었던 것도 다른 어느 나라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의지에서 나온 힘 때문이었다.

남북한은 남북회담을 정례화, 제도화함은 물론,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한민족의 생존과 평화를 위한 노력을 결코 늦춰서는 안 된다. 우리 민족의 평화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비로소 이룩할 과업이지 강대국들의 국제적 흥정의 산물로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태그:#알렉산더 버시바우, #남북관계 속도조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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