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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계곡, 조무락골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아름다운 계곡, 조무락골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 김선호
화악산(1468미터)은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 위치한 석룡산은 화악산이 낳은 또 하나의 산맥이다. 1153미터의 석룡산이 산세나 규모면에서 결코 화악산에 견줘 뒤떨어지지 않는 걸로 보면 두 산맥의 웅장감은 보는 것만으로도 통쾌함을 전해 주고도 남는다. 그 통쾌함이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해 흐르니 그곳이 조무락골계곡이다.

강원도 화천과 경계선에 있는 가평군 북면은 불과 서너해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오지로 불렸던 곳이다. 38선과 가까워서인가, 조무락골로 진입하는 작은 다리 이름이 '삼팔교'이다. 전쟁의 흔적이 혹은, 전쟁의 기억이 쉽게 지워지는 것도 경계할 일이지만 그 기억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로의 도약을 해야 한다면 '삼팔교'라는 이 작은 다리가 주는 의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삼팔교 아래로 조무락골을 거쳐 가평천으로 시퍼렇게 흘러드는 물길이 웅장하다.

원시의 숲을 자랑하는 석룡산
원시의 숲을 자랑하는 석룡산 ⓒ 김선호
'석룡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궁금했으나 속 시원히 풀어주는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산 이름에 대한 궁금증을 안은 채 삼팔교를 지나 조무락골로 진입했다.

여기서부터 석룡산행의 백미가 시작된다. 여느 산행과 다르게 계곡길을 따라 트레킹 하는 기분으로 산을 향해 걷게 되어 있다. 그것도 원시의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깊고 푸른 물줄기를 따라가는 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조무락골 계곡을 따라 복호등폭포가 있는 화악산 중봉과 석룡산 정상으로 난 능선을 따라가는 코스를 택하곤 한다. 원점회귀코스다.

초여름에 만난 석룡산의 봄
초여름에 만난 석룡산의 봄 ⓒ 김선호
두 해 전 순전히 트레킹을 할 목적으로 '복호등폭포'가 있는 계곡길을 따라 간 적이 있기에 이번에는 '조무락 펜션' 뒤로 나 있는 샛길에서 시작되는 등산코스를 택했다.

숲의 싱그러움이 최고조에 달해 있음을 원시의 숲을 자랑하는 석룡산에서 마주한다. 나무들로 빽빽한 숲은 밀림을 연상케 하고 몇몇 산나물을 채취하는 이들 빼고는 등산객도 거의 없어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사정없이 쏟아지는 햇살이 조금 거추장스러울 뿐, 산을 오르는 일이 이토록 여유롭기도 드물 것 같다. 등산로 한쪽으로 계곡물이 따라온다. 계곡물이 등산로 한켠으로 흐르고 있어서 시각과 청각이 고루 시원함이 느껴진다. 벌써 시원함이 그리운 계절이다.

정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화악산
정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화악산 ⓒ 김선호
숲이 좋은 탓인가, 산새가 넓고 큰 탓인가, 석룡산은 유독 물이 풍부하다. 조무락골 계곡으로 흘러드는 크고 작은 물줄기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까닭에 석룡산은 여름산행으로 각광을 받는다.

푸른 숲과 맑은 물을 자랑하는 석룡산이지만 천미터 이상의 고도를 가진 산이기에 결코 만만치가 않다. 줄곧 오르막으로 이어진 산행길이 고되고 힘이 들다. 따가운 햇살이 발길을 더욱 더디게도 한다. 그럴때마다 불현듯 눈앞에 나타나는 화전민들의 흔적과 마주치고는 고단한 가운데 삶의 숭고함을 지켜냈을 그들을 생각하면 숙연해지곤 하는 것이다. 가평에 있는 깊은 산 속을 다니다 보면 가끔 이렇듯 화전민터를 발견하게 되곤 한다. 석룡산행을 하면서도 화전민들이 살았던 흔적을 자주 마주한다. 불과 몇십년전의 일이었건만 이젠 아주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도 눈앞에서 그 현장을 보면서 그게 진짜 있었던 일이냐고 되묻는다.

오래 머물고 싶은,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숲
오래 머물고 싶은,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숲 ⓒ 김선호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오르막도 임도와 마주한 잣나무 숲을 지나니 야트막한 산능선으로 바뀐다. 산이 깊어서 인가, 아마도 높은 탓인가. 늦은 봄꽃들이 이제야 피었다. 지난 봄, 천상의 화원을 이루었을 법한 널따란 능선길 여기저기에 피어난 피나물꽃이며 제비꽃과 별꽃들이 새삼스럽게 반갑다. 천미터 고지에 가까워지니 숲은 이제 갓 초봄을 벗어난 듯 연두빛 싱그러움이 넘실거린다. 석룡산 정상능선, 그곳에서 시간을 잊은 듯 이제 갓 피어난 봄꽃들을 만난다.

능선길이 그토록 예쁜 길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능선은 지루하리 만큼 꽤 길게 이어진다. 그래도 싫지 않다. 이런 길이라면 하루종일을 걷는다고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름 모를 산새들이 운다. 운치 있는 산길에 감응이라도 하듯 새들의 노래소리도 참 곱기도 하다. 참, '조무락골'이라는 지명은 '새들이 조잘거리며 논다'는 뜻에서 왔다고 한다. 석룡산 능선 길에서 만나는 산새들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복호등폭포가 시원스럽게 물줄기를 쏟아낸다
복호등폭포가 시원스럽게 물줄기를 쏟아낸다 ⓒ 김선호
정상이라고 하기에 너무 평범해 보이는 석룡산 정상엔 '즐거운 산행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돌이 정상팻말과 나란히 서 있다. 눈 앞에 우람한 산맥을 자랑하는 화악산이 보인다. 언젠가는 저 레이다기지가 우뚝한 경기 제일의 산도 올라야 하리라.

화악산을 바라보던 눈길을 거두니 발 아래가 천국이다. 초원과 꽃이 어우러지고 그 사이사이로 갓 피어난 연두빛 잎새들이 이루어 놓은 세상이 천국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싶었다. 올라오면서 본 능선길도 아름다웠지만 화악산 중봉과 맞대어 있는 석룡산 능선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세치혀가 너무 짧다. 다만, 그곳에 펼쳐진 숲의 아름다움이 산행 중 힘들고 고단했던 순간을 말끔하게 상쇄해 주고도 남는다.

맑고 청정한 조무락골 계곡
맑고 청정한 조무락골 계곡 ⓒ 김선호
아름다운 숲을 보여주었던 능선길을 지나 화악산 중봉과 갈라지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되는 비탈길로 내려선다. 다시 발길을 붙잡는 숲을 만난다. 이번엔 물푸레나무 숲이다. 넓게 군락이 형성되어 있는 걸로 봐서 조림지인 듯싶다. 갓 피어난 연두빛 잎새는 반점이 있는 수피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렇듯 한꺼번에 많은 물푸레나무를 보는 일이 처음이라 신기한 생각도 든다.

물푸레나무 숲을 빠져나오니 머지 않은 곳에서 숲을 뒤흔들 듯 우렁찬 계곡물 소리가 들려온다. 화악산 중봉과 석룡산 사이를 흐르는 조무락골계곡이다. 이 길을 내려서면 산길을 버리고 계곡길을 따라 걷게 된다.

푸른 용의 기상이 흐르다
푸른 용의 기상이 흐르다 ⓒ 김선호
석룡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돌과 용의 조합이란, 다름 아닌 조무락골의 푸른 물줄기 아니었던가. 계곡에 널려 있는 크고도 너른 바위돌 위를 구르듯 흘러가는 저 푸른 물줄기가 용트림이 다름 아니니 '석룡'은 거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석룡이 30미터가 넘는 폭포 하나를 품었으니 '복포등폭포'다. 호랑이가 등을 구부린 형상이라는 복호등폭포가 한 여름 못지 않은 물줄기를 세차게 품어내고 있다. 용 앞에 등을 구부릴 수밖에 없는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겼다. 이름하여 '독바위'. 바위의 생김이 꼭 호랑이 가죽을 쓴 것 같다 하여 '독바위'라는 이름을 얻었다. 세월이 흘러 독바위에도 서리 서리 푸른 이끼가 끼었다.

이어지는 물줄기를 따라 걷는다. 그치지 않고 흐르는 물길은 간단히 삼팔교를 건너고 가평천으로 합류한다. 이제 다섯시간의 석룡산 산행을 마감할 시간이다.

덧붙이는 글 | 5월20일에 다녀온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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