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처음 나를 반긴 건 '운악산 봉선사'라고 커다랗게 한글로 쓴 입구의 현판이었다. 그 글씨를 보자 꽉 막힌 가슴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무나 읽을 수 있도록 크게 쓴 한글. 다른 절에 갔을 때 현판이 한문이어서 불만스러운 적이 없었는데도 한글로 된 현판을 보자 새삼 친근하게 느껴진다.
봉선사의 역사는 고려시대부터이다. 원래 봉선사 자리에는 고려 광종 20년(969년) 법인 국사가 창건한 운악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차례 난리를 겪으며 폐허가 된 것을 1469년(조선왕조 8대 임금 예종 원년) 정희왕후 윤씨(7대 세조의 왕비)가 세조의 영혼을 봉안코자 다시 일으켜 세운 뒤 봉선사라 했다 한다.
자작나무숲을 지나 초록 이끼가 가득한 연못을 지나 절마당에 이르니 대웅전 처마밑에 걸린 현판도 역시 한글이다.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큰법당이라고 한글로 쓴 커다란 현판, 정말 이채롭고 다정하다. 아이도 어른도 다 읽을 수 있으니. 1970년 운허선사(춘원 이광수 팔촌 동생)가 대웅전을 세우면서 써서 달았다는 현판이다.
절마당 입구에는 봉선사 대종(보물 제397호)을 설명하는 안내문이 있다. 임진왜란 이전에 만든 동종 중에서 몇 개 남지 않은 것으로 예종 원년(1469)에 왕실의 명령에 따라 만든 것인데, 조선왕조 전기 동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또한 이 절에는 춘원 이광수 선생 기념비도 있다. 그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하기 전 4년 동안 남양주 사능 부근 작은 집에서 산 적이 있는데 그때 한 해 겨울을 봉선사에서 지낸 인연으로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봉선사를 보고 나와 광릉으로 향한다. 봄의 신록이 우거진 광릉 숲은 신비로웠다. 숲의 향기를 따라 걷노라니 저절로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길옆으로 숲을 보호하기 위해 쳐진 줄을 보자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다. 30여만평이나 되는 숲이라는데, 모두가 숲을 보호하는 마음으로 관람을 한다면 줄따윈 필요하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에.
광릉은 조선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능이다. 세조는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말년에 몹시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 이 왕릉에서 편안할까? 능을 보자 왕위도 권세도 막지 못한 그의 죽음이 새삼 허무하게 다가온다.
사적 제 197호라는 정자각과 비각, 그리고 능은 초록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 말끔하다. 그러나 능은 철책이 쳐져 있어 자세히 둘러볼 수 없었고,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생기를 몽땅 얻어 가는 기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 대중교통:서울 청량리에서 좌석 707번 버스를 타고 광능내 종점 하차.
의정부행 21번 버스로 갈아타고 봉선사 입구 내림.
* 자가운전
1) 의정부에서 포천 방향 43번 국도로 8.2 km 가 축석령 검문소에서 우회전, 314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임업 시험장, 광릉수목원을 지나 광릉 입구-봉선사
2) 퇴계원을 거쳐 47번 국도로 진접을 지나, 부평교에서 좌회전, 314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봉선사를 지나 광릉 입구 도착(부평교에서 3.9 km).
* 광릉수목원은 5일전 예약제가 시행되고 있으며 일, 공휴일은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