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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엔 바오밥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오밥나무가 너무 커서 소행성을 온통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어린 왕자는 너무 커버린 바오밥나무에게 소행성을 주고 먼 여행을 떠난다.

바오밥나무를 처음 본 것은 인도의 오르차였다. 그 나무는 오르차 중심에서 서쪽에 있었는데 숙소 옥상에서 멀리 있는 그 나무를 처음 보았다. 멀리서도 나무는 꽤 커 보였다.

▲ 나무 끝에는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까마귀 머리 위로 별이 보였다. 잠시 바오밥나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는 나무의 영혼을 별까지 이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조태용
다음날 오후에 나는 그 나무를 찾아갔다. 나무에 점점 다가갈수록 나무는 더욱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무의 둘레를 어림잡아 재어보니 20미터가 넘는 것 같았다.

인도의 4월은 덥다. 연일 40도를 넘나드는 인도의 더위에 지쳐있던 나는 밥오밥나무가 주는 넉넉한 그늘에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나무 주변에는 방목하는 염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마치 어린 왕자가 사는 소행성에서 염소들이 행성을 지키기 위해 바오밥나무의 싹을 먹어 치우는 것처럼 말이다. 근처에는 어른 목동과 꼬마 목동들이 양을 돌보고 있었다. 이들은 밥오밥나무 사진을 찍는 나를 보며 웃었다. 나도 그들을 보며 웃었다.

▲ 근처에는 어른 목동과 꼬마 목동들이 양을 돌보고 있었다. 이들은 밥오밥나무 사진을 찍는 나를 보며 웃었다. 나도 그들을 보면 웃었다.
ⓒ 조태용
나무에 대해서 물어보니 먹기도 하고 약으로도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 언어가 달랐지만 손짓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한 집에 사는 가족들도 소통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없다면 같은 언어를 사용해서 대화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소통하려는 욕구가 있다면 언어가 동일하지 않다고 해도 충분히 서로의 느낌을 전할 수 있다. 소통은 언어의 문제라기 보다는 마음의 문제기 때문이다.

▲ 밥오밥나무 뒤로 태양이 지고 있다.
ⓒ 조태용
양치기가 사는 마을은 밥오밥나무가 뒷마을이라고 했다. 우리는 바오밥나무가 주는 선선한 그늘 아래서 해질 무렵까지 함께 놀았다. 날이 점점 기울어갔다. 해질 무렵이 되자 나무에는 까마귀들이 날아 들었다. 까마귀들은 나무 위에서 소란스럽게 떠들었다. 까마귀들은 어둠이 질 무렵이 되어서야 나무를 떠났다. 해는 데카고원의 넓은 지평선으로 졌다. 그리고 샛별이 떠올랐다.

▲ 어둠과 함께 까마귀들이 나무로 찾아 들었다.
ⓒ 조태용
나무 끝에는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까마귀 머리 위로 별이 보였다. 잠시 바오밥나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는 나무의 영혼을 별까지 이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땅이 더욱 컴컴해지고 별이 더욱 파란 빛을 때쯤 까마귀는 떠나 버린 동료들을 찾아서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주위는 어둡다. 목동은 어느새 염소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두운 땅 위엔 이방인들만 나무 주위를 맴돈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나무와 헤어지는 것이 싫었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 마자 나는 다시 그 나무를 찾았다. 나무 위에는 파란 앵무새들이 놀고 있었다. 나는 멀리 바위 위에서 앵무새와 나무가 놀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앵무새는 나무 가지 사이를 날아 다니면 놀았다. 앵무새들은 금세 싫증을 느꼈는지 동쪽 강가로 날아갔다.

▲ 바오밥나무 뒤로 인도의 오래된 성들이 보인다.
ⓒ 조태용

▲ 바오밥나무 아래에는 파란앵무새가 떨어뜨린 깃털 하나가 있었다. 나는 깃털을 주었다. 그리고 그 깃털로 떠오르던 아침 해를 가려 보았다. 깃털을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이 났다.
ⓒ 조태용
나는 바오밥나무로 걸어갔다. 바오밥나무 아래에는 파란앵무새가 떨어뜨린 깃털 하나가 있었다. 나는 깃털을 주었다. 그리고 그 깃털로 떠오르던 아침 해를 가려 보았다. 깃털을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이 났다. 그 깃털을 손에 들고 나는 바오밥나무를 떠났다. 어린왕자가 바오밥나무 소행성을 떠난 것처럼 나도 바오밥나무를 떠났다.

지난 봄 나는 인도와 네팔을 여행했다.

지난 봄 나는 인도와 네팔을 여행했다. 45도가 넘는 인도의 거리를 걷기도 했고 네팔의 안나푸르나의 설산에서 고산병에 걸려 고생도 했다. 40여 일 간의 여행이 끝났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여행을 시작하면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젖지만 끝나고 나면 그것이 환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여행하는 동안만큼은 방랑자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된다. 여행은 그래서 사실적이기 보다는 환상에 가깝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 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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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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