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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뼈대만 남은 할머니 댁, 산불 안나기 천만다행이다
앙상한 뼈대만 남은 할머니 댁, 산불 안나기 천만다행이다 ⓒ 조명자

집 비운 지 일주일만에 돌아왔더니 그 사이 마을에 큰 사고가 발생해 있었다. 바로 우리 집 옆 골목에 사시는 할머니 집과 개울 건너 윤이네 집이 전소된 것이다. 다행이 양쪽 집에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숯검정이가 된 기둥만 을씨년스럽게 남겨졌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연배가 젊은 윤이네 집은 읍내로 거처를 옮겨 만나 볼 수 없었고, 옆 골목에 사시는 할머니 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옛 초가 삼 칸 지붕을 슬레이트로 개량한 할머니 댁은 그야말로 직사각형 모양의 기둥만 남았지 불기운에 완전히 무너져내린 처참한 모습이었다.

개울 건너 윤이네 집, 온 집안이 완전 초토화됐다
개울 건너 윤이네 집, 온 집안이 완전 초토화됐다 ⓒ 조명자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로 타다 남은 족보가 나뒹굴어 있고,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와 냄비가 한쪽에 오소소 앉아 있는데 어찌나 기가 막히는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양반이 몸만 간신히 빠져나오셨을 텐데 어떻게 지내시나 혼자 궁시렁거리는데 마침 고샅 윗길에서 할머니가 내려오고 계셨다.

"할머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얼마나 놀라셨어요?"
"으으응~ 숟가락 몽댕이도 못 건졌단께."

나를 보시자마자 할머니는 거의 울음 섞인 목소리로 참상을 전하셨다.

"지금 어디서 지내시고 계세요?"
"요, 윗 집 쩌기 저 집 보이지. 그 집에 우선 들어갔당게. 저 집 할머니가 자석들 있는 서울로 올라갔거든."
"이불이랑, 끓여 잡술 그릇이랑은 있으세요? 없으면 제가 나눠 드릴게요."
"아녀. 다 있어. 우리 조카가 살림 살 것 대충 마련해 줬어. 지금도 타버린 집만 보면 막 가슴이 벌렁거리고 보타 진다니께."

타다 남은 족보
타다 남은 족보 ⓒ 조명자

할머니 댁에서 유일하게 건진 살림
할머니 댁에서 유일하게 건진 살림 ⓒ 조명자

불이 어떻게 났는지는 할머니도 모르신다고 했다. 밭에 나가 일하시는 동안 타버렸으니 당신이 아끼던 귀중한 살림을 건질 새도 없었다 한다. 옆 골목에 사시는 조카며느리 말에 의하면 집이 낡아 천정이고 어디고 온통 쥐 세상이라고 했으니 아마도 낡은 전선줄을 쥐가 갉아 합선이 됐을 거라는 것이었다.

마을 할머니들과 졸지에 잿더미가 된 두 집 이야기를 하다가 도저히 이해 못할 말씀을 들었다. 불이 나다 만 것도 아니고 전소가 될 만큼 큰 화재였으니 당연히 소방차가 출동했을 텐데 약간 떨어진 곳에 사시는 분은 물론 불 난 집 바로 뒤에 사시는 어른들도 불이 난 사실을 모르셨다는 것이다.

소방차가 왱왱거리는 소리도 못 들으셨냐고 물었더니 "아, 문 꼭 닫고 자느라 못 들었제. 아침에 나와 보니 다 타버렸드랑께" 그러시는 것이었다. 그나마 마을에서 젊은 측에 속하시는 아주머니 한 분만 화재현장을 목격하셨다고 하니 농촌에 사시는 어른들에게 위급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겠구나 하는 걱정부터 생겼다.

하기야 하루 종일 논밭에 쪼그려 고된 노동에 시달린 어른들이 초저녁 단잠에 빠지시면 아마 옆집에서 난리굿을 쳐도 모르실 것이다. 식구들과 함께 사시는 어른들이야 큰 걱정이 없겠지만 혼자 사시는 어른들에게 급환이라도 생기면 대책이 없을 것 같았다.

도시엔 미흡하나마 독거노인을 위한 비상 연락망 체계가 갖춰지고 있는 것 같은데 농촌현실은 아직은 척박한 현실이다. 그저 무슨 일이 있으면 먼 데 사는 자식들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의 손을 빌리는 것이 훨씬 더 빠른 형편이다.

혼자 살림이 버거워 자식들 집으로 떠나시는 어른들이 남긴 빈 집들. 이빨 빠진 이웃 사이사이 아직도 의연하게 고향을 지키시는 어른들의 보호망이 이제는 시급한 과제가 된 것 같다. 그나저나 우리 집 천정에서도 허구한 날 쥐새끼들이 우당탕탕 난리를 치는데 혹시 낡은 전선 갉아대는 거 아냐? 지은 지 20년 넘은 우리 집부터 안전진단을 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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