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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사는 동네 양지바른 곳에선 얼마 전부터 굴착기가 터를 닦고 석축을 쌓느라 시끄럽더니 그 위로 살구 빛이 은은한 아름드리목재들이 보여 누군가 나무로 멋진 전원주택을 짓는가보다 했다.

뼈대가 오를 때는 100여 미터 떨어진 큰길까지 나무냄새가 솔솔 날아와 그곳을 지나면서는 일부러 숨을 크게 쉬기도 했고, 일요일 아침부터 전기 대패 소리가 왱왱대도 대팻날이 지나간 자리에 신비롭게 드러날 나뭇결을 즐겁게 상상하곤 했다.

얼마 전 출근길에 보니 어느새 용마루가 오르고 부챗살 모양의 서까래가 걸려 제법 근사한 한옥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람 살집은 아니었다. 마치 사당같이 보였다. 아니 사당(祠堂)이었다.

이 마을은 집성촌이다. 조선시대 한 임금을 몰아내고 새 임금을 자리에 앉히는 반정에 참여한 대가로 1등 공신에 올라 헛기침 꽤나 했던 유명한 무신의 후예들이 모여 산다. 뒷집 할머니는 저 한옥집이 그이의 사당이라고 알려 주셨다.

고려시대까지도 없었고 오늘날에도 드문 ‘사당’은 성리학을 정치 이데올로기로 삼은 조선시대에만 성행했는데, 이는 국가의 시책으로 강요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당을 세우지 않은 사대부는 문책을 당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오며가며, 적지 않은 돈을 들였을 사당을 보노라니 괜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기야 우리네 조상 우리가 정성껏 모시겠다는 데야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만, 왠지 아쉬움이 드는 게 사실이다.

사당을 지어 조상을 기리고 후손에까지 이어갈 그 무엇, 바로 그 무엇이 살아 있지 않다는 생각, 혹은 갇혀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지나는 이도 별로 없고 저것이 무엇이고 왜 저기에 있는지도 모르게, 마을 한구석에 쓸쓸히 버티고 있는 사당.

솔직히 말하자면, 시대가 바뀌었으니 조상을 기리는 방법도 바꿔보자는 얘기다. 만약 마을사람들만 가끔씩 지나치는 산 밑의 저 사당 대신, 시내 어디쯤에 유명한 조상의 이름을 붙인 ‘000 도서관’ ‘000 문화회관’ 같은 것을 만든다면 어떨까?

그래서 아이들이나 청소년, 지역의 시민들이 뻔질나게 드나들며 그 유명한 조상의 이름을 입에 달고 산다면, 또 생각하기를 ‘아 이곳은 지역에서 얼마나 소중한 곳인가?’라고 말한다면?

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무엇이 조상을 길이길이 기리는 것인지를. 훌륭한 조상의 덕을 함께 나누며 살면 그 유명한 조상도 좋아하지 않을까. 물론 후손들도 복 받고 더불어 이웃들도 참으로 좋지 아니한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역인터넷신문 <남양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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