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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윙윙......

5월의 둘째주 아침, 캠퍼스 언덕을 오르는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캠퍼스 언덕쪽에서 나는 소리였는데 때마침 난 수업 때문에 언덕을 오르는 길이었다. 무슨 소리지? 가까이서 보니 학교 경비 아저씨가 제초기를 돌리고 계셨다.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아저씨를 보니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든다. 군 생활 중, 제초기 돌린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그것이 얼마나 고된 작업인지 알기 때문이다. 아저씨의 비오듯 흐르는 땀방울에서 그 고됨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대학 새내기들의 눈에 이런 모습들은 낯설게만 느껴질 것 같다.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모르는 일, 제초기 돌리는 아저씨를 스쳐가는 그들의 시선은 대체로 무신경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경험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학교 등교길의 일을 뒤로 하고 나는 강의실에 도착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강의 시간보다 조금 일찍 왔기에 그 시간에 밀린 공부를 하고 있었다. 강의실에는 나처럼 일찍 온 몇몇 학우들이 눈에 띄었다.

여유시간이 있는 틈을 타, 강의실에 청소부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러 들어오셨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강의실을 한번 둘러보시더니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웬 한숨이지? 궁금한 마음에 강의실을 한번 둘러보았다.

세상에, 강의실은 강의실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지저분했다. 온갖 쓰레기, 땅바닥에 버려진 물기가 남아 있는 캔, 과자 봉지 등 돼지우리가 따로 없었다. 그냥 공부만 하고 있기가 미안했다. 이거 나서서 도와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공연한 짓을 하는 것 같아 멈칫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게 아주 울컥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청소부 아주머니가 어떤 학우 아래의 발 아래 놓인 쓰레기를 주우려고 고개를 숙였는데 정작 그 학우는 다리 하나 까닥하지 않는 것이었다.

조금만 비켜주면 청소부 아주머니가 그나마 편하게 주울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주머니가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실까 생각했다. 나는 그 서운함의 감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군 생활을 할 때, 이등병이란 낮은 계급이었을 때 나는 버려지는 쓰레기를 모아서 재활용 분류하는 일을 해야 했었다. 쓰레기의 양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그렇기에 그것을 보면 한숨부터 나왔다. 그 쓰레기 분류작업은 낮은 계급일 때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해보지 않은 내게 그것은 몹시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운 행동처럼 느껴졌었다.

하물며 군대에서 건장한 청년도 그런 마음을 느꼈는데 아들뻘 되는 학우의 발 밑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의 심정이야 오죽했을까, 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그래서 어찌할까 생각하다가 용기를 냈다. 남 앞에서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번만은 그 성격을 바꾸기로 했다.

책을 덮고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주위에 널려진 쓰레기들을 주웠다. 쓰레기를 쥔 손이 조금 더러워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군대에서 쓰레기 치울 때는 이보다 더한 일도 했었으니까, 그때에 비하면 이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니깐,

"학생, 괜찮아, 괜찮아. 이건 내가 할 일인데 뭐, 마음만이라도 고마워."
"아, 아니에요."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을 보자 청소부 아주머니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내가 괜찮다고 했지만 아주머니는 한사코 말리신다. 결국 청소부 아주머니의 말에 따라 도와드리는 것을 멈추었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표정은 한층 밝아져 있었다.

아주머니의 밝아진 표정을 보며, 나는 그래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주머니가 그래도 기분이 좋아지신 것 같아, 그리고 내 자신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 것 같아서 말이다.

군대시절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쓰레기를 줍는 내 손이 더럽다고 생각하지 말자.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쓰레기 치우는 내 손으로, 언젠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글을 쓰자,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을 잊지 말자라고.

그렇기에 청소부 아주머니를 도와주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적어도 군대에서 얻었던 경험은 아직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작은 일화를 통해 나의 다짐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쓰레기#청소부#자존심#사회 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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