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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어터제로 살리기 퍼포먼스를 마친 실험예술인들은 만장을 앞세우고 상여행렬을 시작했다.
ⓒ 김기

홍대의 명소가 즐비한 속칭 주차장골목 입구는 평소와 달리 무거운 긴장감이 흘렀다. 오후 3시를 조금 넘기자 어디선가 꽃상여가 들어오고 전자 더블베이스 연주에 맞춰 검은 옷의 남녀들이 땅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그 뒤로 검은 만장이 도열해 섰다, 음악과 퍼포먼스가 진행되자 행인들의 발걸음은 멈춰섰고, 그런 속에 이날 행사를 주관한 한국실험예술(KOPAS) 김백기 대표는 비장한 목소리로 글을 읽어나갔다.

이날 행사는 사람만 바뀌었을 뿐 3년 전에도 같은 장소에서 있었다. 그때나 이날이나 이들이 땅바닥을 뒹글며 절규한 이유는 같다. 씨어터제로를 살리자는 것 하나이다. 3명의 여자, 1명의 남자가 고통스럽게 바닥을 뒹구는 동안 상여를 메고 온 사내들은 하얀 국화꽃잎을 그들 위로 뿌려댔다. 그러기를 한참 후 예사롭지 않는 남자가 등장해서 서있기도 힘겨운 듯 온몸을 비틀거렸다.

그 사내의 등장으로 퍼포먼스의 비장감은 절정에 이르렀고 행인들 속에서 한 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사람 잡는 담배가 인자 예술도 잡아부네.” 평소 같으면 와르르 웃음도 터질 법한데 여전히 주변은 무거운 공기가 억누르고 있어서 사람들은 오히려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뒤로 새로 지은 건물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우뚝 서서 그들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하얀 국화꽃잎이 어지러이 날리고 그 아래 고통스럽게 바닦을 뒹구는 연기자들. 누가 봐도 이 퍼포먼스의 주제는 명확하다.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예술하기는 죽을 맛이라는..
ⓒ 김기

이날 퍼포먼스의 주제인 씨어터제로는 98년 개관한 한국 유일의 실험예술전용극장이다. 또한 상업화에 잠식당해버린 다른 지역과 달리 홍대를 다양한 문화예술의 메카로 이끌 수 있었던 핵심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3년 전에도 우여곡절 끝에 재건축한 건물에 재입주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으나, KT&G가 올해 초 건물을 매입하면서 사단이 났다.

3년 전 당시 건물주는 마포구청의 중재로 재건축 후 씨어터제로의 재입주를 보장하였다. 그러나 KT&G가 그 건물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키 위해 매입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 애초에 씨어터제로가 재입주하기로 한 공간은 지하 3,4층이었다. 그러나 새 건물주인 KT&G는 그곳을 독립영화 등을 상영할 수 있는 장소로 계획을 잡은 것이다.

우선 KT&G 관계자는 “씨어터제로의 입주 자체를 거부한 적은 없다. 다만 간판을 다는 문제, 전용사용, 장소 문제에 이견이 있고 그것은 문화공간에 대한 자체계획과 다른 단체와의 형평성 문제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 씨어터제로 아니 실험예술은 당장의 가치보다 미래의 가치를 위해 존재한다. 미래를 위해 우리 사회는 조금 너그러워질 수는 없는 것일까?
ⓒ 김기

그러나 씨어터제로 심철종 대표는 “씨어터제로는 우리나라 실험예술의 메카이자, 보루이다. KT&G측은 입주가 아닌 프로그램별로 허용하겠다는 입장인데, 이것은 실험예술과 씨어터제로의 정체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프렌지페스티벌 등 홍대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화행사에 씨어터제로는 모태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애초에 합의된 사항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계속해서 싸울 것을 내비쳤다.

심철종씨는 KT&G의 '다른 단체와의 형평성' 운운은 앞뒤를 모르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그 자리에 씨어터제로가 입주키로 한 것은 관할 구청의 중재로 3년 전에 합의된 사항이고, 우리는 계약의 성실한 이행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기업이 소극적인 후원.협찬을 떠나 직접 문화사업에 뛰어들겠다는 의욕 자체를 비판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기존 문화예술인들과 마찰을 빚어가면서 무리한 강행을 하는 것 또한 변변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게다가 KT&G가 공기업인 만큼 문화예술인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자본의 횡포라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모습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 이날 주변의 이야기들이다.

젊은 홍대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인 클럽들을 대표하는 클럽문화협회 최정한 회장은 “홍대앞 거리는 다른 곳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일면만 놓고 본다면 다를 바 없겠지만 전체를 보면 한국 아니 아시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복합문화의 공간이다. 그런 다양성의 원심력은 실험이 허용되는 분위기이며, 그 원심력은 씨어터제로라는데 아무 이견도 없다”고 홍대 거리 모두가 씨어터제로의 원상회복을 바라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이 날 행사를 총연출한 한국실험예술 김백기 대표는 “예술이 돈을 만들지는 몰라도 예술가는 가난하다. 가난을 무릅쓰고 예술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심이다. 그것을 꺾고자 하는 것은 예술을 꺾는 것이다”라면서 씨어터제로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총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했다.

[반론] KT&G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위 기사를 접한 KT&G 홍보실은 아래와 같은 요지의 반론문을 오마이뉴스로 보내왔다. 비판에 대한 해명 보장 차원에서 이를 게재한다.

KT&G가 이 건물을 매입한 것은 우리 나라 아마추어 문화인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씨어터제로는 이 건물에 대한 입주가 관할구청의 중재로 애초에 합의되어진 사항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전 건물주와의 관계이지 KT&G와는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습니다.

또한 씨어터제로의 입주가 전 건물주와의 사이에서 합의되어졌다고 하나, KT&G는 건물 매입시점에서 사용계약이나 문서합의가 된 사항은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KT&G는 씨어터제로의 건물입주를 보장해 줄 위치가 아님에도 씨어터제로가 과거 이 지역에서 오랜동안 공연활동을 해 온 정황과 건물의 사용용도를 감안하여 입주요구를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입주요구의 수용은 합리적인 선에서의 수용을 의미하는 것이지 씨어터제로의 요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은 아님을 밝힙니다. / KT&G 홍보실

            
▲ 상여행렬은 애초에 집회신고한 홍대 앞 진출이 전경들에 의해 막혔다. 이유는 상여가 혐오감을 준다는 것. 한쪽에서는 상여를 되살려야 한다는데 경찰의 눈에 상여는 혐오스러웟다
ⓒ 김기

▲ 주자창골목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축소된 상여행렬. 오른쪽이 씨어터제로 심철종 대표
ⓒ 김기

#홍대#시어터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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