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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 계엄군의 폭행(사진 제공: 5·18기념재단).
1980년 5월 광주, 계엄군의 폭행(사진 제공: 5·18기념재단).

전쟁이 일어난 줄 알았다. 이상하다. 그런데 전쟁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서도 전쟁처럼 공포가 엄습해 온다.

내 몸이 아니다. 온몸이 욱씬거린다. 왜 이 거리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욱한 연기 너머로 석가탄신을 경축하는 플래카드가 보이고 그 아래로 시뻘건 곤봉들이 춤을 추고 있다. 군무다. '群舞'가 아니라 '軍舞'다. 웅장하기까지 하다.

곤봉들이 방향을 틀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온다. 나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파랗게 질려 울었다. TV에서 보면 분쟁지역을 보도할 때 거리에 어린아이가 혼자 서글피 울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그 모습이 나에게 오버랩된다.

곤봉들이 달려온다. 이를 어쩌나…. 도망칠 수도 없다. 일어났다가도 후들거리는 다리로 인해 두세 걸음 휘청하다 곧바로 주저 앉아버린다.

난 이제 죽었구나. 이렇게 어린 나이에 죽다니 너무 원통하다.

바로 눈앞까지 왔다. 숨은 멎고 입은 다물어지지 않는다. 아…. 끝이구나. 눈을 질끈 감았다. 온 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다보면 살 수도 있겠지. 바로 앞이다.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아프지도 않다. 얼마나 아프길래 아픔도 느낄 수 없는 거지? 공포는 더해갔다. 제발 그만해요. 그만. 난 아무 죄가 없단 말예요…. 짧은 시간이지만 길게 느껴졌다.

잠시 후…. 어라? 정말 아프지 않다. 실눈을 떴다. 곤봉들은 없었다. 내 옆에도 없었다. 휴우우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 놈들 잡아." 깜짝이야. 뒤다. 뒤를 휙 돌아봤다. 곤봉들의 뒤가 보였다. 그 앞에는 형들이 뛰어가고 있었다. 아니, 도망치고 있었다. 두 명이다. 형들이 넘어졌다. 곤봉들이 형들을 에워쌌다. 움직이지 않는다. 서로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다행이다.

어, 어, 어…. 그게 아니다. 곤봉이 다시 움직인다. 슬로우 모션처럼 내 눈에 그 움직임이 또렷이 보인다. 가속이 붙는다. 분명히 사람이 곤봉을 잡고있을 텐데 얼굴은 안 보이고 곤봉만 도깨비불처럼 춤을 춘다.

그래, 분명 원한많은 도깨비불일 거야.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저리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달려들 수 있을까? 자력에 이끌린 철가루처럼 곤봉들은 형들의 몸에 찰싹 달라붙는다. 그럴 때마다 형들의 비명은 귓가를 때렸다. 소름이 돋았다.

그만 때려요. 그만. 그러다 형들 다 죽겠어요.

곤봉들이 멈추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왔다.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있는 힘껏 뛰었다. 한참을 그렇게 뛰는데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바로 뒤에 군화발 소리가 들린다. 순간 뒤를 돌아보다 비명을 질렀다. 으악! 으아아아악!!!

눈을 뜬다. 휴우우우. 속옷까지 땀에 젖었다. 몸부림에 이부자리는 엉망이다. 머리와 발의 위치가 바뀌었다.

5월이 오면, 5월 18일이 다가오면 꼭 한 번씩은 나를 괴롭히는 악몽이다.

그런데, 그 꿈은 현실이다.

1980년 5월 18일. 열다섯 위 누나 손을 붙잡고 늦은 어린이날 선물을 받으러 광주공원 동물원에 놀러갔다 금남로 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오던 길에 나에게 있었던 실화다.
#시#518#직접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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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사고와 건강한 생활운동을 전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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