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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순영 전 외무장관(가운데), 제임스 켈리 전 미 국무부차관보(왼쪽), 양성철 전 주미대사가 14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07년 서울-워싱턴 포럼'에서 토론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병선

2002년 이른바 '2차 북핵위기'의 시발이 된 북한 고농축우라늄(HEU) 핵개발 의혹 제기의 '주역'인 제임스 켈리 전 미 국무차관보와, 최근 HEU 의혹이 '정보조작'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양성철 전 주미대사가 이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부딪혔다.

세종연구소와 미 브루킹스연구소 공동 주관으로 14일 서울 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07년 서울-워싱턴 포럼: 한미관계의 신뢰회복과 역동성'에서 두 사람이 제1패널의 양측 발표자로 나란히 나선 것.

두 사람은 조지 부시 정권의 등장에서 김대중 정권의 임기가 끝나는 2001년~2003년 초 사이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와 주미한국대사로서 한미관계의 핵심 연결고리를 형성했었다.

켈리 전 차관보는 특히 2002년 10월 북미관계 개선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미 정부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했다가 오히려 북한으로부터 HEU 프로그램에 대한 시인을 받아냈다며 새로운 핵개발 의혹을 제기, 이후 한반도 정세를 격랑으로 몰고 갔다.

그러나 최근 HEU 의혹에 대한 당시의 정보판단이 '과장된 것'이라는 평가와 증언들이 미 행정부 내에서조차 잇달아 나오고 있으며, 양성철 전 대사는 아예 '의도적 정보조작'이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켈리 겨냥, "HEU 의혹제기 관련 미국 관리들 책임져야"

▲ 양성철 전 주미대사.
ⓒ 오마이뉴스 이병선
이날 제1패널의 주제는 '변화하는 동맹- 신뢰와 적응의 강화'. 한미동맹 전반을 다루자는 취지였으나 먼저 발제를 한 양성철 전 대사는 작심한 듯 "오늘은 두 가지 문제에만 집중하겠다"며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와 함께 'HEU 의혹'에 대한 의문점을 집중 제기했다.

양 전 대사는 2002년 10월 당시 상황과 관련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HEU 프로그램 보유를 시인했다고 해서 제네바합의를 폐기했으나, 사실은 북한이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했을 뿐"이라며 당시 미국측 발표의 사실관계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당시 HEU 관련 정보가 제네바합의를 파기해서 북한이 핵실험을 하게 할만큼 중대한 것이었느냐"며 "관련된 미국 관리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빌 클린턴 행정부 하에서는 제네바합의에 따라 미사일과 플루토늄 핵 프로그램은 통제되고 있었으나 이후 모두 통제불능 상태가 됐다"면서 "작년 북한의 핵실험이 우라늄탄이 아니라 플루토늄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그는 "개인은 물론 국가간 관계에서도 정직함이 필요하고 의도적 거짓은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며 당시 미국의 발표가 사실상 '거짓'이라는 인식을 밝히면서 "이 자리에는 당시 사건과 관련된 미국 관료들이 직접 참석하고 있는데 명확한 답변을 바란다"고 켈리 차관보를 거듭 겨냥했다.

켈리 "HEU는 회의가 아닌 다른 조치 통해 규명되는 것"

▲ 제임스 켈리 전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 오마이뉴스 이병선
당사자를 앞에 두고 이뤄진 양 전 대사의 이 같은 '도발적' 발제 때문에 이날 토론회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홍순영 전 외무장관은 켈리 전 차관보에게 마이크를 넘기면서 "지금 질문에 즉각적으로 답변하지는 않았으면 한다"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했다.

켈리 전 차관보도 "질문에 즉각적으로 답변하지 않겠다, 다른 토론자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말하는 게 좋겠다"면서 일단 예봉을 피하고 본래 준비한 원고에 따른 발제를 시작했다.

그는 "한미동맹은 여러 분야에서 혜택을 볼 수 있는 포괄적 파트너십"이라고 규정하고 "보다 평등한 관계로 변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향후 북한의 변화와 함께 중국의 대두가 한미동맹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는 발제 말미에 양 전 대사의 질문에 대해 언급, "HEU 의혹이 보다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이런 회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조치를 통해서 되는 것 아니겠느냐"며 "미 행정부로서는 2002년 당시 무시할 수 없는 정보가 있었다"고 양 전 대사의 문제제기를 일축했다. 이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측의 보다 구체적인 '반론'은 이어 토론에 나선 데이비드 스토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 입에서 나왔다. 그는 역시 2002년 10월 당시 미국 정부대표단의 일원으로 켈리 차관보와 함께 북한을 방문했던 '당사자'의 한사람이다.

스트로브 전 한국과장 "강석주 통역에게 다시 확인했다"

▲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
ⓒ 오마이뉴스 이병선
스트로브 전 과장은 당시 강석주 제1부상과의 대화내용에 대해 "강석주 측의 통역에게 다시 확인했었는데 'HEU가 있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우려사항 듣겠지만 우리 문제부터 들어달라'는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북한이 확실히 HEU 프로그램을 시인했었다는 것.

그는 "북한이 90년대 말부터 HEU를 추구했다는 의심의 여지없는 공개정보가 있었으며, 강석주의 발언에 따라 그 존재가 심각하다고 생각하게 됐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시작해서 계속 추진하고 있었다는 점은 결코 간과할 만큼 작은 문제가 아니다"며 "그러나 나중에 판단하기에 이것이 '9·19 공동성명'을 합의하는데 장애가 되느냐고 했을 때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스트로브 과장은 "부시 행정부가 정보를 과장함으로써 오용했다고 얘기하는데 내가 알기로도 과장해서 대북정책을 추진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부시 행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부시 행정부는 당시 자신들의 입장이 옳다고 생각했고,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였다"면서 "다만 양국 지도자들이 이를 놓고 서로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 불행"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렇게 악화된 상황을 만든 더 큰 책임이 부시 행정부에 있다는 견해에 동의한다"면서 "위에서 결정해버렸기 때문에 관료들이 다른 입장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고 부시 행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BDA 문제도 '과장'과 '오해'?

양 전 대사는 현재 6자회담 합의이행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BDA 문제에 대해서도 HEU와 마찬가지로 미국측의 '과장'과 '오해'일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미 재무성은 지난 3월 발표에서 BDA를 불법자금 돈세탁 은행으로 지정해 가혹한 조치를 취하면서도 구체적인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위조지폐나 마약거래의 규모에 대해 일반인도 납득할 수 있도록 구체적 수치와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스트로브 전 과장은 "북한이 BDA를 통해 마약거래 등 불법적 활동을 해왔다는 것은 공개된 정보"라며 "미 재무부가 위조지폐를 정지시키는 권한은 있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켈리#양성철#스트로브#HEU#B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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