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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파리 1대학 대강의실에서 학생총회가 열리고 있다.
9일 오후 파리 1대학 대강의실에서 학생총회가 열리고 있다. ⓒ 한경미
사르코지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난 6일 이후 파리 뿐만 아니라 리용, 툴루즈, 렌느 등 프랑스 전역에서 며칠째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6일 밤엔 700여대의 자동차가 불타고 600여명이 구속되었으며 그 가운데는 6개월의 실형이 내려진 자도 있다.

각 대학들도 선거 기간중 사르코지가 내건 대학개편안과 대선 결과를 둘러싸고 학생총회를 여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이다.

"대학 자율화는 기업의 개입 부를 것"

지난 9일 낮 12시, 파리 13구 톨비악에 위치한 파리 1대학에서 열린 제2차 학생총회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대학구성원이 아닌 일반인들의 참가를 허용하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이었다. 톨비악 파리 1대학은 작년 CPE(최초고용법) 반대 시위때부터 대학학생운동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학교다.

15분쯤 늦게 도착한 기자는 바로 강의실로 들어가서 자리잡고 앉았다. 회의는 시작했으나 입구에서 20여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서성대고 있었고 계속 들락날락 거리는 학생들로 인해 분위기가 산만했다. 그래도 회의는 계속 진행되고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반응하는 걸 보면 들을건 다 듣는 모양이었다.

진행자가 "지금 <리베라시옹> 기자와 <프랑스 엥테르> 기자가 나와있는데 이들이 우리 회의를 지켜보아도 좋겠냐"며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본다. 반대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다수가 좋다고 허락했다.

초기 주제는 사르코지의 대학개편안이었는데 사르코지가 대선 과정에서 '대학의 자율화를 증가시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참가 학생들은 이것이 결국 대학의 사설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고 기업이 대학에 적극 개입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토론은 당연히 이번 대선으로 옮겨갔다.

"사르코지 선출, 적법하지만 정당하지 않다"

한 학생이 나와 마이크를 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르코지가 이미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상 그것을 지금 와서 가타부타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선거로만 표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종류의 억압에 대항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학생들의 박수소리.

한 학생은 대선의 적법성과 정당성에 대해서 발언했다. 그의 의하면 사르코지의 선출이 적법성은 있지만 정당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적법성은 인정하면서도 정당성에 대해서는 반기를 들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한 학생이 나와서 사르코지가 이미 대선을 차지한 이상 우리는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발언하자 여기저기서 "우우"하는 야유가 들린다. 강의실에서 갑자기 한 학생이 옆의 학생과 격투를 벌인다. 아마도 우파 학생과 좌파 학생의 충돌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정치적 긴장이 학생들에게까지도 전파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행자를 비롯해서 모든 학생들이 "진정합시다"를 외쳐 결국 상황은 재빠르게 수습되었다.

ⓒ 한경미
"국민의 반수는 사르코지를 원하지 않았다"

다시 한 학생이 나와 마이크를 든다. 발언을 원하는 학생은 미리 신청을 받아두었기 때문에 발언자의 연결이 손쉽게 이어졌다.

"저는 학생이 아니고 실업자입니다. 사르코지가 이번 대선에서 얻은 표는 53%에 불과하고, 국민의 거의 반수가 사르코지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사르코지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 중에 3분의 1이 자기네들의 기득권을 챙기고 사르코지의 치안정치에 안심하는 노인들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날 회의중 여기저기서 핸드폰을 꺼내 사진 찍는 모습이 보였다. 회의가 다시 어느 정도 진행되는가 했더니 강의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이 우루루 밖으로 몰려나간다. 나도 같이 나가 보았으나 한 그룹의 학생들이 한 군데 모여서 있는 것 외에는 별다른 사항을 발견할 수 없었다. 모두들 다시 강의실로 되돌아왔다.

모두들 자리에 앉자 회의 진행자가 하는 말이 "조금 아까 이 학생회의를 핸드폰으로 찍은 학생 하나가 경찰을 부르더니 사진을 보여주는 게 목격됐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모든 사진촬영은 금지라고 말한다. 기자도 슬그머니 카메라를 감추었다.

학생 뿐만 아니라 여고생, 실업자, 교사도 토론 참여

이 학생총회에는 파리 1대학 학생만 참여한게 아니었다. 파리 3대학 학생이 나와서 대학간에 연대를 주장하기도 했고 여고생이 나와 근로자와 대학생, 고등학생, 실업자가 모두 연대해서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교사가 나와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가 하면 실업자까지도 나와 발언을 하는 자유로움을 보였다. 원하는 자는 누구든 참석할 수 있었다.

대신 이 학교 교수는 아예 강의실에 들어오지도 못했는데 학생총회가 열렸던 시간에 이 강의실에서 원래 강의가 있었던 교수가 강의실에 들어오자 몇몇 학생이 제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유스러움은 학생들의 태도에서도 나타났다. 어떤 학생들은 계단에 그냥 서있는가 하면 강의실 책상 위에 걸터앉거나 두 발을 걸치고 있는 학생도 있고 담배까지 태워 무는 학생도 있었다. 연인끼리 온 학생은 연신 키스를 주고받는가 하면 중간에 나가고 들어오는 학생들은 그치지 않았다. 이러한 자유로움에서 기인한 것인지 연단에 나서 발언을 하는 학생들도 모두 자유롭게 발표를 행했다. 그 수도 엄청 나서 수십명이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런 자유로움 속에서도 규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 발언자의 발언이 너무 길어지는 듯 싶으면 진행자가 슬그머니 제동을 거는 모습이 보였다.

시계는 벌써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토론들이 오고갔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열렸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점심을 거른 채였다. 중간에 구내 매점에 가서 샌드위치를 사서 들고 오는 학생들도 있고 몇몇은 바게트 빵과 햄, 치즈를 사갖고 와서 회의가 진행되는 강의실 안에서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한 여학생은 필통에서 자를 꺼내더니 그걸로 치즈를 떠서 빵 위에 발라먹는다.

파리 13구 톨비악에 위치한 파리 1대학의 입구.
파리 13구 톨비악에 위치한 파리 1대학의 입구. ⓒ 한경미
"거리를 막고 학교를 봉쇄하자"

결국 학생총회의 의견은 다음과 같이 모아져갔다.

- 어떤 조처가 취해지기 전에 미리 예방해야 한다. 일단 조처가 취해진 후에는 이전으로 돌아가기가 무척 힘들다.
- 분산적으로 시위를 벌여 경찰에 잡혀가느니 우리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수업을 거부해야 한다.
- 이제 행동을 보일 단계가 되었다. 톨비악 거리를 막고 학교를 봉쇄하자. 대신 학교의 강당을 만남과 정보교환 장소로 개방하자.
- 다른 대학, 기업과도 연계하자.
- 학생 중에서는 아르바이트로 기업에 나가서 일하는 학생들도 많은데 이들이 전적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 기업도 봉쇄를 시켜야 한다.
- 이번 대선이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 우리도 미디어를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 학교에 경찰이 투입될 경우에 취할 방법을 고민해보고 잡혀간 학생들을 돕는 방법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파리 1대학은 이제 종강시험을 1주일 남긴 상태이다. 우선 시험만이라도 치르고 행동에 들어가자는 의견도 나왔다. 수업거부를 일괄적으로 하기 보다 수업 듣기를 원하는 학생은 수업을 듣게 하고 종강시험도 볼 수 있게 하자는 말도 나왔다. 그러자 자리에서 다시 "우우"하는 야유가 새어나온다.

원래 학생총회는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자리라서 총회에 참석하는 학생들은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이번 총회의 안건이 사르코지를 견제하자는 것이므로 당연히 수업거부를 생각하고 온 학생들이 많은 듯 했다.

계속되는 야유로 말을 중단한 학생이 "내게도 말을 끝낼 기회를 달라. 여기는 민주국가이므로 모두에게 동일한 발언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자 뒷자리에 앉은 남학생이 "그런 소리는 우리가 미디어에서 늘상 듣는 말이다. 여기 와서까지 그런 얘기를 들을 필요는 없다. 또 그런 얘기를 듣자고 온 것도 아니다"라고 강경하게 대꾸했다.

"수업을 거부하고, 수업하려는 학생들을 막자"

2시 30분, 진행자가 이제 일반적인 안건에 대해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각 제안사항에 대해 학생들이 찬성, 반대, 포기 등 3가지 의견을 거수로 표시하는 직접 민주주의가 실행되었다.

그 중에 중요한 안건만 보면,

1) 장기불법 이민자에게 정식서류 발급하기(통과)
2) 대학교의 자체 학생 선발, 학생의 교수선택 반대 / 등록금 인상 반대 / 대학총장의 권력행사 거부(통과)
3) 파업권 약화와 최저서비스 도입 반대(통과)
4) DNA 기록 거부(통과)
5) 최근의 데모로 잡혀간 학생들의 석방 요구(통과)
6) 총파업 실시(통과)
7) 한달 후로 다가온 총선에서 좌파에게 표 던지기(부결, 유일하게 부결된 사항이다)

오후 2시 50분, 학생들의 구체적인 항의방식으로 '수업거부'와 '수업에 참가하려는 학생들 차단'이 대다수의 거수로 채택되었다. 이 사항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5시에 다시 총회가 개최된다는 진행자의 말로 700여명이 참석한 학생총회는 환호와 박수갈채 속에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수업거부는 불발되고...

이날 20여명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밤을 샜다. 그러나 즉시 실행에 옮기기로 했던 수업거부는 UNEF(전국대학생 조합원, 좌파)들의 반대와 학생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많은 학생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종강시험을 1주일 앞둔 시기라 많은 학생들의 승인을 얻기가 힘들었던 것. 반대하는 이들의 숫자가 총회에 참석해서 수업거부를 결정한 숫자보다 월등히 우세했던 것이다.

더욱이 다음날인 10일 파리 1대학은 학생운동이 파급되는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학교를 폐교했고 원칙적으로 금요일 오전 다시 개교 예정이나 오전에 새로운 학생총회가 열릴 예정이기도 하다. 다른 대학교에서 열린 학생총회에서도 수업거부가 채택되지는 않아서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많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오는 16일 사르코지가 공식적으로 대통령이 되는 날, 대대적인 반대시위가 열릴 예정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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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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