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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철 <불국서색> 157 x 63cm, 비단에 수묵진채, 2006
ⓒ 김현철
산허리를 타고 내려오는 구름이 불국사 경내로 흘러듭니다. 상서로운 구름이 불국사뿐 아니라 온누리에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화가의 염원이 담긴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토함산과 불국사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법으로 그린 진경산수화입니다.

서양화와 새로운 기법의 그림이 화단의 흐름을 쥐락펴락하는 요즈음에도, 이렇게 꾸준히 전통적 회화양식을 고수하는 화가가 있다는 사실은 전통의 계승과 우리나라 그림의 다양성을 위해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국사 경내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 <불국서색> 부분
ⓒ 김현철
김현철 화백은 이 작품을 그리면서, 불국사에 대한 표현방법을 기존의 진경산수화 기법과 다르게 그렸습니다.

보이는 풍경과 느껴지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겸재식의 진경산수 기법이 아닌, 궁중화가들이 궁궐을 그리던 기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 표현기법은 현대 진경산수화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것입니다.

궁궐 그림을 수없이 임모하면서 옛 화원들이 궁궐 그리던 기법을 연마한 김 화백이기에 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토함산 전경에는 겸재의 진경산수 기법으로 그리고 불국사는 궁중화가의 기법으로 조화시켜, 자신만의 독특하고도 새로운 진경산수화를 창조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불국사 담장 하나하나에 새겨진 천년의 세월과 회랑에 감도는 엄숙함을 느낄 수는 없지만, 가로 157㎝의 큰 그림에서 느껴지는 장엄함이 돋보입니다.

김현철 화백은 이러한 작가적 성과를 갖고 5월 9일부터 6월 10일까지 한달동안, '갤러리 벨벳'에서 전시회를 합니다. 이번 전시회에는 이 작품과 함께 형식이 매우 실험적이면서도 독특한 진경산수화들이 출품됩니다.

그림보다 여백이 많네, 뭘 봐야 하지?

▲ 김현철 <낙화암> 36 x 44cm, 비단에 수묵진채, 2005
ⓒ 김현철
그림보다 여백이 많은 작품입니다. 낙화암을 보라고 그린 건지 여백을 보라고 그린 건지,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화가의 의도입니다. 그래서 김 화백은 이번 전시회 이름은 '그리지 않은 그림'이라고 했습니다. 화가가 남긴 여백을 보는 사람들이 채워넣으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여백은 보는 사람들에게 복잡한 삶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고, 잠시 휴식을 취해보라는 '휴식공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화가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치유의 색'으로 상징되는 초록으로 낙화암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화가란 화폭을 채우는 데 익숙해있기 때문에 이렇게 여백을 많이 남긴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따라서 여백은, 화가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도 하고 수없이 그렸다 찢는 자기극복 과정을 거쳤을 때 나타낼 수 있는 결과물입니다.

좀더 쉽게 설명하면, 화폭을 채우고 싶은 근질근질한 손과 마음을 다스린 뒤 이렇게 조금만 그려도 작품이 되겠다는 자신이 있을 때 낙관을 찍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한참 바라보면 여백의 아스라함을 통해, 백마강의 물줄기도 보이고, 구드래 나루에서 고란사로 가는 나룻배도 보이고, 백제의 쓸쓸함과 적막함도 보입니다.

▲ 김현철 <한계령> 비단에 진채, 35 x 64cm, 2003
ⓒ 김현철
이 그림 역시 구름을 통한 여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화가가 현장에서 스케치를 한 후 거의 3년을 묵힌 뒤 완성한 작품입니다. "보여지는 것을 그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만이 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그렇게 시간을 가지면서 군더더기 풍경를 버렸기 때문에, 여백이 단순한 여백이 아니라 "암시를 주는 여백"으로 탄생시킬 수 었었던 것입니다.

▲ 김현철 <사인암>, 한지에 수묵담채, 41 x 60cm, 2007
ⓒ 김현철
사인암은 겸재·단원 뿐 아니라, 매우 많은 화가들이 그렸습니다. 김화백 역시 지난 10년년 동안 수없이 사인암을 가서 그렸습니다. 그러나 습작이라 생각하고 발표하지 않다가,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새로 그린 작품을 출품햬습니다.

그가 그린 사인암은 절벽 바위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변 풍경을 모두 생략했습니다. 단원 김홍도의 경우 절벽 바위를 높게 그리고 왼편 옆으로 산을 그려 화면에 여백이 거의 없으니, 이 여백의 유무가 단원과 차별되는 부분인 것입니다.

화가는 이렇게 앞서 그린 화가와 다르게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는 바위의 형체를 화폭 가운데로 끌어내어 자신있는 필치로 그리면서, 삐죽삐죽 제멋대로 튀어나온 소나무를 자유롭게 표현했습니다.

화가가 여백의 의미를 완전히 깨달았기 때문에, 스스로 그 '휴식공간'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질근질한 마음을 가라앉힌 뒤 여백이 나온다

▲ 김현철 <화성전도> 오른쪽 부분, 전체 크기 54 x 330cm, 비단에 진채, 2005
ⓒ 김현철
▲ <화성전도> 왼쪽 부분
ⓒ 김현철
김현철 화백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가로 3m가 넘는 대형 화폭에 둘레 5744m의 수원 화성 성곽을 타원형으로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성안의 주요 건축물들을 모두 담았습니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은, 평지와 산을 이어 쌓은 형태의 평산성으로 중국과 일본 등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성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산천의 풍광을 담는 진경산수화를 계승 발전시키려는 김현철 화백에게 수원 화성은 좋은 소재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화가적 역량을 모두 담아 이 작품을 완성시켰습니다.

▲ <화성전도> 부분
ⓒ 김현철
이 작품에서도 여백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그림 가운데 팔달문 아래에도 사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사람들이 사는 곳 위에 구름을 그려넣음으로서, 그 아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상상하게 했습니다.

그것이 김 화백이 주는 암시로서의 '여백의 의미'이고, 보는 사람들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휴식공간'입니다.

▲ <화성전도> 부분
ⓒ 김현철
김 화백은 방대한 '화성전도'를 그리기 위하여, 화성 건설의 모든 과정과 소요 자원 등을 그림으로 남기고 설명한 '화성성역의궤'를 참조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된 그림들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 아니라 수원 화성을 수없이 오가며 밑그림을 그리며 현장감에 충실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도 앞에서 소개한 '불국서색'처럼, 산 부분은 진경산수화풍으로 화성행궁은 옛 궁중화원들이 궁궐 그리던 기법으로 그렸습니다. 위에 보이는 부분은 전체 그림의 1/10도 안 되니, 그가 '화성전도'를 완성하기 위해 들인 공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 <화성전도> 부분
ⓒ 김현철
화성의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장안문과 북동포루, 화홍문, 방화수류정 부분입니다. 소나무와 수양버드나무가 많은 수원 화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면서, 역시 사람 사는 곳은 구름으로 처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화홍문 아래 칠간수문에서는 물이 흘러 내리게 그림으로써, 과거 기록으로서의 화성이 아니라 지금의 화성이 되게 했습니다.

전통을 넘어 현대로 내려온 진경산수화

그렇습니다. 이렇게 큰 대작을 그리면서도 '여백의 의미'라는 주제를 놓치지 않고, 작은 부분에까지 신경을 써서 현장감이 생생한 그림으로 완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김 화백이 이런 지난한 작업을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고유의 진경산수화를 현대에 맞게 계승 발전 시키겠다는 집념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김현철 화백의 전시회는 진경산수화의 기법과 의미를 넓히면서, 전통과 현대인의 소통 가능성을 묻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현철 화백 전시회 - '그리지 않은 그림'   
5월 9일부터 6월 10일까지 
갤러리 벨벳 
서울시 종로구 팔판동 39번지 
Tel. 02_736_7023


태그:#화가 김현철, #김현철 전시회, #진경산수,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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