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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정문.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서울대 안에서 20여 년간 노점을 해온 이른바 '김밥 할머니'가 얼마 전 학교 측에 의해 영업금지 조치를 당했다. 무허가 상행위를 근절하지 않을 경우 다른 잡상인들이 들어올 수 있으며, 여름철을 앞두고 식중독 사고가 우려된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학교 측의 조치는 일견 타당하다. 예외는 또 다른 예외를 불러오기 마련이며, 식중독과 같은 질병은 학생들의 건강안전을 위해 철저히 예방하는 것이 학교의 의무라면 의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입학식 및 졸업식 등의 행사 때마다 들어오는 다른 잡상인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거니와 식중독에 대한 학교의 우려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김밥 할머니에 대한 학교 측의 처사가 '교육기관'으로서 올바르지 못하다는 데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 '연대'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의 이번 조치는 행정 편의주의적인 느낌이 강하다. 비록 절차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별다른 하자는 없지만 그 속에서 '사람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규정은 지켜지기 위해 존재하지만, 동시에 언제나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소외된 규정 준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할머니와 서울대의 20년간의 인연은 '무허가 상행위 불허'라는 규정 앞에 그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렸다.

물론 학생들의 반발을 할머니에 대한 단순한 동정심의 발로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각자의 가슴에 "할머니 역시 우리 서울대의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즉 동정심보다 한 차원 높은 일종의 '연대감'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효율과 편리의 논리가 아닌 사람과 가치에 대한 신뢰 말이다.

이것은 배우는 입장의 학생들에게는 전공서적의 이론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며, 가르치는 학교 입장에서는 마땅히 모범을 보여야 할 그 무엇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학생들이 학교에 한 수 가르치는 모양새다.

서울대는 '규정'과 '사람'을 동시에 지켜낼 수는 없었을까.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더라도 한번쯤 '노력'과 '모색'이라도 해볼 수는 없었던 것일까. 예를 들어 할머니가 파는 음식에 대한 위생검사 쯤은 학교 측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일 텐데 말이다.

20년간 장사했으니까 좀 봐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20년 역사를 함께 했으니 할머니도 엄연한 서울대의 일원이자 가족이라는 얘기다. 사람에 대한 서울대의 고민이 아쉽다.

서울대 '20년 김밥할머니 축출' 논란
학교측 "여름오는데 배탈날까봐"-총학생회 "형평에도 어긋난 처사"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 서울대가 20년 넘게 학교 안에서 간식거리를 팔아온 '김밥 할머니'의 영업을 금지시킨 것을 놓고 학생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서울대 인문대는 학장단 회의를 열어 교내 '해방터' 광장에서 음식을 팔고 있는 안병심(73) 할머니의 영업을 금지키로 결정했다고 3일 밝혔다.

안 할머니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부터 20년 넘게 서울대에 자리를 잡고 학생들에게 김밥, 꽈배기 도넛, 튀김 만두 등을 팔아와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 사이에서도 유명 인사로 통한다.

그러나 인문대는 안 할머니가 학교에서 무허가 상행위를 하고 있어 교정에 다른 잡상인을 불러들일 수 있는 데다 점차 더워지는 날씨에 위생 검증을 받지 않은 음식을 학생들이 사 먹고 배탈이 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인문대는 행정실 직원을 보내 좌판 철거를 요구하고 본부 청원경찰을 시켜 안 할머니를 학교 밖으로 쫓아냈다.

안 할머니에게 이런 시련은 처음이 아니다.

2000년 겨울 단속 나온 교직원들을 피해 도망가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다리가 부러졌고 추위와 비바람을 피해 중앙도서관 통로로 자리를 옮겼다가 도로 인문대로 쫓겨 나기도 했다.

안 할머니는 "큰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손자 같은 학생들 요깃거리 만들어 주려고 10년째 같은 값으로 팔고 있다, 20년 넘게 정든 교정을 떠나라고 하니 서운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학교 측의 조치에 즉각 반발하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박종주(인문대 05학번)씨는 '해방터'에 붙인 자보에서 "가뜩이나 식당이 모자란 마당에 음식 배달도 금지하고 바쁜 학생들에게 김밥을 파는 할머니마저 쫓아낸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성실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무허가 영업이 문제라면 관악산 기슭의 가건물에서 영업하는 '솔밭식당'이나 입학식·졸업식 때마다 교내에 장사진을 치는 포장마차 등은 왜 그냥 놔 두는가"라며 형평에 어긋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인문대 관계자는 "안 할머니의 딱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교내 질서와 학생들의 안전도 무시할 수 없다"며 "인문대에서만 영업을 못 하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닌 만큼 학교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zhe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덧붙이는 글 | 성균관대 재학생으로서 비록 저희 학교 일은 아닙니다만, 비단 서울대만의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 감도는 씁쓸함을 이기지 못하고 한번 써 보았습니다.


태그:#서울대, #김밥,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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