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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산책
당신에게 한 다스는 몇 개인가? 12개? 그러나 마녀의 백과사전에는 한 다스가 '13개를 한 꾸러미로 하는 단위'라고 나온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13은 불길하고 사악한 숫자다. 13층도 두지 않는다. 12가 행운의 숫자로 질서와 안정을 상징한다. 예수의 12제자, 1년 12개월, 하늘은 12별자리인 것과는 반대다. 조화를 깨뜨리는 13은 악마나 마녀와 연결시켰다.

하지만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좋은 숫자다. 불교법전은 13경, 음력 3월 13일에는 13세 소년,소녀가 13참배라는 행사를 한다. 서양의 눈으로 보자면 마녀의 집합인 셈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가 혼자 일본에 왔다가 한눈에 홀딱 반해 사간 차가 있었다.

"호화롭고 기품있고 위엄도 있어. 정말 이상적인 승용차다!" 그러나 일본인이라면 결코 애용하지 않을 이 차는? (정답 : 영구차)

프랑스 요리는 목에 힘을 주고 거드름 피우며 매너를 중시하지만 중국 요리는 조리기구도 그릇도 매너도 상관 않고 요리 그 자체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 형태다. 매너가 있다면 그저 먹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매너다. 펄벅의 <대지>에는 손님을 초대한 주인이 식탁보에 뭘 쏟아 보란듯이 더럽히는 장면이 나온다. 이제 맘 놓고 드시라는 신호다.

이 책, 맛있다! 동시통역사가 소개하는 세계의 이문화들

요네하라 마리는 <마녀의 한 다스>에서 세계 곳곳의 마녀를 찾아내고 있다.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저자가 1997년 집필 당시)도 학술이나 예술에서 직업을 나타내는 말에 '여류'가 따라다닌다. 영어나 불어에서 여성을 나타내는 말은 미혼, 기혼에 따라 나눠쓴다.

보수적인 '말'에 관한 에피소드에서부터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식당차, 구 유고슬라비아의 내전에 이르기까지 동시통역사 출신 저자가 누비는 영역은 좀처럼 종잡을 수 없다.

대화가 많고 세계 구석구석을 조금씩 맛보면서도 하나에 천착하지 않고 시원스런 속도로 넘어간다. 일본 P.E.N. 클럽의 회원으로 통역사로도 맹활약했지만 그 글재주로도 유명했던 작가.

일본의 주부들도 한두 권씩은 알고 있으며, 시사잡지에 오랫동안 글을 기고했던 유명한 작가다. 발언자와 청자를 함께 염두에 두며 이문화를 조화시키는 데 노력을 쏟아붓는 직업인 '동시통역사'로서의 경험에서 삼족오 같은 깔끔한 결론이 나온다.

"좁은 시야, 오만한 강요. 무지하고 자만에 가득 찬 독선. 다른 문화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결여된 상상력. 이런 것들이 얼마나 골치 아픈 것인지. 게다가 이런 정신의 소유자가 강대한 무기를 갖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큰 비극이다." (본문 145쪽 '맹꽁이들' 중에서)

'두 개의 다라이배에 양 발을 걸친 경계인의 삶'

번역가 이현진씨는 '네 상식이 내 상식이 아니다'라는 이방인, 경계인의 입장을 말하고 싶다.
번역가 이현진씨는 '네 상식이 내 상식이 아니다'라는 이방인, 경계인의 입장을 말하고 싶다. ⓒ 김홍주선
작년 말 한국에 소개된 <프라하의 소녀시대>(동저, 마음산책)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번역가의 이름을 주목했을 법하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시니세(老鋪 : 일본에서 몇백 년을 대를 물리는 가게)'에 관한 칼럼을 연재 중인 이현진(45)씨가 <프라하..>에 이어 <마녀의 한 다스> 번역을 맡았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처음 한국출판사에 소개하고 기획했던 번역가이기도 하다.

"'내 상식이 너 상식이 아니다.' 이거 시오노 나나미도 강조했던 거죠, 세 도시 이야기 시리즈 중 <황금빛 로마>에 이런 문장이 나왔어요. '베네치아는 외국인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대하지만 외국인들이 곧 돌아갈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로마에서 외국인은 마치 토박이처럼 보인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와 다른 것들에 배타적인 한국 사람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요네하라 마리를 포스트 시오노 나나미로 밀고 있어요."

이현진씨는 대학부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과 결혼했으며 이제 한국에서의 생활보다 일본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다. 현재는 데즈카야마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한국적으로 살다가 1년 전 일본적으로 바꾼 이현진씨는 '한국에서는 일본인으로, 일본에서는 한국인으로' 바라보는 '틈새'의 삶에 대해 누구보다 할 말이 많다.

"양국의 문화를 접하다 보니,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눈에 띄지요. 가령 일본인들은 음식을 낼 때도 미학적인 모양을 따져서 내요. 꼼꼼한 특성이 있지요. 길거리에서도 반나절 동안 보도블록 꺾어지는 부분을 둥글게 다듬고 있다거나. '좀 시원시원하게 하지 뭘 저러고 붙들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반면 한국은 부잣집에 가도 스위치가 1mm 삐뚤어져 있다거나 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게 보이면 괴롭지요."

이씨는 '두 개의 다라이 배'(일본의 작은 배로 1인용이다)에 양쪽 발을 걸치고 아슬아슬한 균형잡기'를 하고 있다. 스트레스도 많다. 사소한 배타성이 도처에 있다. 일본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에게 "너 언제 한국에 돌아가니"라고 무심결에 물어보는 일본인도 있었다. 그러나 번역가이자 경계인으로서의 삶에는 동시에, '나무 대신 숲을 볼 수 있는 상대화'라는 큰 매력이 있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게 이 지역, 나만 느낄 수 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혹은 조금만 지역을 옮기면 상황은 다를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씨는 몸이 아프거나 '나 다 귀찮아' 할 때, 팽팽한 줄다리기가 힘들어질 때에야 비로소 '이문화 접하기'를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번역가의 열정 덕택일까. 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거의 '몽땅' 온다. <속담 인류학>, <애완동물>, <유머의 공식>, <내가 읽은 굉장한 책들> 등이 이어서 출간될 예정이다. <여행자의 아침 식사>는 올해 6월경이면 만날 수 있다.

마녀, 번역가, 그리고 페미니즘
[인터뷰] 번역가 이현진씨

"전략적인 삶을 살지 못해" 중간에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낳았고 친구들이 회사의 중역으로 자리를 굳히는 동안 십 년 간 이력의 블랭크가 생겼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이를 낳은 일이 나에게 있어 비교할 수 없는 가장 보람된 일"이었기에 이현진씨는 후회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1년간의 출산휴가가 끝난 뒤 아이들의 자그마한 손발이 눈에 밟혀 회사로 돌아갈 수 없었던 이현진씨. 그는 대신 프리랜서 번역가라는 일을 택했다. 대학원까지 나와서 왜 능력을 썩히느냐라는 주위 가족들의 책망. 그런 말이라도 있었기에 이현진씨는 '번역이라도 시작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마녀'는 중세 시대 기독교 사상에 입각 화형을 당하기도 했던 민간 의학 전문가 여성들이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오랫동안 마녀였던 여성들이 반길 만한 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혹 '나무보다 숲을 본다'는 상대성이 현실의 문제를 놓칠 우려는 없을까. 번역가 이현진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외국인 지문날인 등을 거부해서 부부간 생이별을 하는 등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수민족 문제에 그런 것처럼, 똑같이 일을 하고 월급을 적게 받는다면 (여성도) 손을 들어야겠지요. 이런 사람들이 꿋꿋이 문제 제기를 해나가기에 세상이 조금씩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세상의 속도가 저만치 뒤떨어져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다른 곳에 있을 때 언제까지 거기에 매여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저는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명명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편하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피해가는 삶을 택했지요. 페미니즘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요네하라 마리의 경우에는, 여성인권을 주장하는 가운데 또 소외되는 다른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거.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마녀의 한 다스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문화인류학, 개정판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이현우 감수, 마음산책(2007)


#마녀의 한 다스#이현진#요네하라 마리#마음산책#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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