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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 오마이뉴스 강성관
1636년 청나라의 침략에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 결과 인조는 '삼배구고두'(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고개 숙임)를 하는 이른바 '삼전도 치욕'을 당했다. 청나라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주전파 신료들을 인질로 잡아갔다.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자, 국제정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망국 명나라에 대한 사대외교를 고집한 조선 조정은 '주전파'와 주화파'로 갈려 제대로 전쟁을 치르지 못했다. 약 반세기 전 임진왜란을 겪었음에도 체계적으로 외침에 대비하지 못한 조정이 퇴각한 남한산성에는 정병 1만3천명이 주둔하고 있었지만 전투에 필요한 식량조차 넉넉하지 않았다.

이처럼 조선은 싸움다운 싸움을 하지 못했고 인조는 치욕을 당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남한산성이 아니라 그 어디로 퇴각해도 청나라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남한산성 성곽의 상태가 아니었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남한산성 사수론이 문제라고 말한다. 나는 열린우리당이라는 성곽구조가 대한민국 어떤 정당과도 견주어 봐도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기간당원 중심의 당 운영, 상향식 공천, 당정분리, 인터넷 활동 강화 등 구조는 탁월했다.

그러나 실용, 상생을 외치다 당 정체성과 직결된 핵심 과제인 4대 개혁법안을 해결하지 못한 것, 잇따른 재보선 패배 등에도 지도부가 단결하지 못하고 탈당 운운하는 의원이 속출한 상황, 당의 근간인 기간당원제를 허문 것 등이 문제였다. 이런 것이 쌓이면서 국민이 열린우리당에 부여한 원내 과반수라는 기대에 부응치 못한 것이 열린우리당이라는 성곽이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큰 이유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당 의장을 두 번이나 지내고 이른바 '최대 계파 수장'이었던 정동영 전 의장이다. 그런 그가 당을 해체하자고 하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본다.

백 번 양보해서 열린우리당이라는 성곽구조가 부실했다 치더라도, 정동영 전 의장은 새로운 '양만춘 장군의 안시성'을 지을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열린우리당이라는 성곽은 정동영 전 의장이 직접 만든 성이라는 점에서, 그런 부실한 실력으로는 새로운 성곽을 지을 능력이 없다고 본다.

정동영 전 의장이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의 정치적 자산과 부채를 동시에 지고 가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정동영 전 의장 자신이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의 영광을 가장 크게 누렸기 때문이다. 이제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참여정부는 실패했고 열린우리당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가장 큰 영광을 누린 자신을 부정하는 셈이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탈DJ'를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부당하게 비판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대중 정부의 공과를 짊어지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김대중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고 집권여당에서 후보가 됐다는 점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부당하게 비판했다면 '정치인 노무현'을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라고 난 생각한다.

정동영 전 의장이 책임 있는 개혁정치인이라면, 무책임한 자기 부정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행보의 공과를 떳떳이 평가받고 짊어지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자신이 지었던 남한산성이 온전히 남아있을 때 그 성을 지은 자신을 부정하지 않아야 안시성이든 요동성이든 새로운 성을 지을 명분이 생기는 것 아닌가? 정동영 전 의장의 올바른 정치 행보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한국정치와 현대사를 공부하는 대학생입니다.


태그:#정동영, #안시성,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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