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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이 만발한 백련사
유채꽃이 만발한 백련사 ⓒ 이현숙
백련사 가는 길에는 보리밭이 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밭. 차를 잠시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보랏빛 꽃의 정체는 영랑생가에서 알았다. 그 유명한 자운영이라는 것을. 난 그것도 모르고 여직 자운영이 하얀 색인줄 알았으니.

강진에서 만난 보리밭
강진에서 만난 보리밭 ⓒ 이현숙
그렇지만 많은 논에 왜 자운영을 심었는지는 집에 와서 알았다. 그 예쁜 꽃이 거름이 된단다. 꽃을 실컷 보고 나서 잘라서 다른 논에 뿌리기도 하고 그대로 갈아 엎기도 해 거름으로 쓴단다. 참 세상에 내가 모르는 일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내친김에 남도에서는 흔하디흔한 풍경이지만 우리에게는 화려한 생소함이니 한 컷 찍고. 그 다음은 강진만이다. 이런 강진에도 만이 있다니, 이것도 듣도 보도 못한 멋진 풍경이다.

강진만
강진만 ⓒ 이현숙
너무나 아름다운 자운영 들판...
너무나 아름다운 자운영 들판... ⓒ 이현숙
그에 비하면 백련사야 얼마나 이름난 곳인가. 다산 정약용 때문이기도 하고. 백련사의 주지였던 혜장스님 때문이기도 하고. 백련사를 떠나 만덕산 숲길을 한 번 걷고 싶었다. 다산 정약용과 혜장스님이 벗을 만나기 위해 걸었다는 그 길을 걸으며 옛 사람들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었다.

아쉬움으로 남은 만덕산 길...
아쉬움으로 남은 만덕산 길... ⓒ 이현숙
그러나 우리에겐 자동차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야생 차밭이 있는 곳까지 가 다산초당 가는 길을 눈으로만 더듬고 내려와야 했다. 동백림을 보고 내려올 때 한 떼의 답사팀이 다산초당 가는 길로 들어섰다.

나는 우리보다 그 팀이 먼저 도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동백림도 보고 사진도 찍으면서 천천히 주차장까지 걸어 내려가 차를 타고 다산초당으로 갔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차를 타고 간 시간보다 중간에서 기웃거린 시간이 더 많았다. 차로 15분 정도. 차에서 내려 흙길을 밟아 올라가고 그 다음은 계단을 딛고 올라갔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다산초당에 도착한 답사팀이 문화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다산초당에 도착한 답사팀이 문화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 이현숙
아니나 다를까. 답사팀이 먼저와 문화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었다. 모든 사물이 그럴지도 모른다. 편리한 면이 있는가 하면 불편할 때도 있는 것 말이다. 여행에 있어 자동차의 역할은 실로 중대하다. 그런데 이번만은 자동차가 오히려 장애가 되었다.

답사팀이 내려가고 산속은 다시 고요해졌다. 천일각은 우리보다 앞선 여행객의 차지였다. 누워서 낮잠에 빠진 사람도 있었다. 시야가 흐려 강진만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백련사 가는 길을 눈으로만 더듬고 내려왔다.

천일각을 송두리째 차지하고 쉬고 있는 사람들
천일각을 송두리째 차지하고 쉬고 있는 사람들 ⓒ 이현숙
이젠 청자도예지다. 우리가 출발한 곳도 도자기로 유명한 이천이었는데, 이곳도 그 유명한 청자의 고장이다.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했더니 잘 가꾸어진 정원과 박물관이 나타난다. 도예지를 묻는 질문에 손을 들어 곳곳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 근방 곳곳이 도예지였다고.

청자도예 박물관
청자도예 박물관 ⓒ 이현숙
박물관 건물에서 나오자 안내하는 분이 작업장과 체험장을 일러준다. 체험은 일정이 없다 하고,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방해될 것 같아 조심스러웠지만 그분들은 개의치 않았다. 특별히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불쾌해 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정원에는 아이들도 있었고, 예쁜 강아지도 있었다. 박물관이지만 이웃도 스스럼없이 드나들고 강아지도 찾아와 놀고 가는 곳인 것이다.

이제 남은 곳은 마량포구. 충남 서천과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포구다. 가는 길이 아름다웠다. 한 쪽은 보랏빛 자운영이 피어 있는 들판이고 한쪽은 바다다. 우리를 먼저 반긴 것은 까막섬. 해는 까막섬 위에 떠있다. 뿌연 해무리에 가려져 겨우 형체만 드러낸 채.

마량포구의 멋진 방파제...
마량포구의 멋진 방파제... ⓒ 이현숙
까막섬의 일몰...
까막섬의 일몰... ⓒ 이현숙
여객선이 시동을 걸고 떠나가는데 매캐한 매연을 뿜어낸다. 냄새도 고약하고 가뜩이나 흐려진 시야를 더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여객선이 멋진 방파제를 시설해 놓은 끝에 이르자 등대와 어우러져 근사한 그림이 되었다.

여객선도 사라지고 해도 넘어갔다. 사위는 고요해지고 이제 남은 건 저녁은 어디서 먹고 잠은 어디서 자느냐 하는 거다. 벌써부터 청자골기와집의 한정식을 들먹였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다. 나는 내키지 않았다. 우리 형편에 6만원이라니. 그것도 한 상에 8만원인데 둘이라 6만원에 해 주는 거란다.

그러나 이 고장의 이름난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는 주장에 주저주저 찾아갔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한 건 바닷가 마을에 걸맞는 싱싱한 해산물이었고, 실제로 상에 나온 건 육회나 너비아니 같은 한우 중심의 상이었다.

먹긴 잘 먹었지만 후회 막급이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 힘들었고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여행내내 절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숙박비도 생각보다 비쌌다. 마침 도내 체육대회라나. 빈방이 하나밖에 없다며 3만 5천원이라고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 쓴 경비를 계산해 보았다.

점심 11000 원, 통행료(이천에서 목포)16900원, 주유 50000원, 청자박물관 입장료 2000원, 저녁식사 60000원, 숙박비 35000원, 간식비 600원까지 해서 모두 175500원을 썼다. 첫날부터 지출이 너무 심했다. 특히 식비가 과다 지출되어 내일부터는 점심만 사 먹고 나머지는 숙소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백련사#청자도예지#강진만#마량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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