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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떠난 아이들
수학여행 떠난 아이들 ⓒ 김현

수업이 모두 끝나고 출석부를 정리하고 있는데 실장이 다가와선 청소가 다 끝났다고 알린다.

"청소 다 했어요."
"정말! 이렇게 빨리?"
"네. 저도 놀랐어요. 그런데 오늘은 얘들이 무척 열심히 했어요."
"그래. 청소구역 바꾼 효과가 있네."
"얘들 자리에 정돈하고 있으라 할게요. 바로 올라오세요."
"알았다. 암튼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실장이 간 뒤 바로 올라가니 정말 청소가 깨끗이 되어 있다. 대걸레 자루가 청소함에서 삐져나온 걸 빼곤 말이다. 아이들도 평소보다 웅성댐이 덜하다.

"야, 너희들 웬일이야. 이렇게 청소를 일찍 하고?"
"선생님, 우리들이 제일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일찍 끝난 거예요."

손을 든 아이들을 보니 학기 초 애 좀 먹인 아이들이다. 그동안 그 아이들은 교실이 아닌 어학실을 청소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교실에 청소 구역을 맡게 했는데 제일 열심히 한 것 같았다.

"그래. 잘 했다. 진작에 너희들 교실 청소하라고 했으면 좋았을 걸. 암튼 오늘은 너희들이 예쁘다 예뻐."

지난 4월 점심 때 올챙이 구경을 하는 아이들...
지난 4월 점심 때 올챙이 구경을 하는 아이들... ⓒ 김현

청소 하나 일찍 끝낸 걸 가지고 웬 수다냐 하겠지만 그동안 청소시간마다 전쟁이었다. 청소시간이 되어 교실에 올라가면 다른 반은 청소를 거의 끝내가고 있는데 우리 반은 자리에 앉아있거나 끼리끼리 모여 잡담을 나누기가 일상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청소하자고 수십 번 소리쳐야 그때야 비실비실 눈치를 보며 일어선다.

"으이구. 이놈들… 빨리 움직이지 않을래."

그리곤 책상을 직접 옮기면 빗자루로 슬슬 쓰는 척만 한다. 걸레도 빨지 않은 마른 걸로 대충 닦는 시늉만 낸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 옛날이여!'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달라도 어쩜 저렇게 다를 수가. 작년 아이들은 5분이면 청소 쓱싹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타이르고 화를 내고 해도 마이동풍이더니 이번에 청소를 일찍, 그것도 깨끗이 담임이 없는데도 했으니 어찌 기특하지 않겠는가.

"지영이, 화림이, 은실이 앞으로 더 열심히 해라. 아주 좋은 선물 줄게. 알았지."
"네!"

평소 칭찬을 받은 적이 별로 없던 아이들은 칭찬에다 나중에 선물까지 준다는 말에 싱글벙글 웃음꽃을 얼굴 가득 피운다. 저렇게 좋을까 싶다.

사실 우리 반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반이다. 두 달 동안 아이들은 내 속을 어지간히 썩였다. 화도 내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했지만 아이들은 모르쇠가 되어 딴청을 피우곤 했다. 수학여행을 가서도 제일 속을 썩인 아이들이 우리 반 아이들이다. 그런 녀석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내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바꾸었다.

ⓒ 김현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아이에겐 웃으면서 벌을 주었다. 그러면 녀석들은 혼나면서도 웃는다.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말없이 먼저 줍기도 했다. 그리고 아무리 화난 일이 있어도 기분 좋은 듯 웃어주었다. 그러자 무거웠던 교실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더니 몇몇 녀석들은 갑자기 친한 척을 하기도 하고 어깨를 툭툭 건드리기도 한다.

엊그제 본 중간고사 시험도 꼴찌에서 두 번째다. 만나는 선생님마다 '그 반 왜 이래? 점수가 너무 안 좋네'하며 은근히 마음을 들쑤셔 놓는다. 다른 때 같으면 그런 말을 들으면 아이들에 대한 화가 올라와 곧바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했지만 이번엔 좀 방법을 바꾸어 보았다. 종례시간, 아이들에게 눈을 감게 했다.

"자, 눈을 감아봐라. 너희들에게 아주 좋은 소식이 있다. 눈 마주친 사람은 벌칙이다."

좋은 소식이 있다는 말에 아이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 눈을 감는다. 그러나 몇 녀석은 눈을 슬그머니 뜨다 눈이 마주치면 비실비실 웃으며 눈을 감는 척한다.

"우리 반이 중간 성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라는 기쁜 소식이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그 기쁜 소식을 가져다주어 너무 좋구나."

그러자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어떤 아이는 정말이냐고 반문을 하기도 한다. 웃는 아이들은 양심이 좀 찔리는 아이들이고, 반문하는 아이들은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한 아이들이다.

"그런데 다음 시험에 기분 나쁜 소식을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너무 기분 좋은 소식만 들으면 안 되잖아. 안 그래?"
"괜찮아요. 기분 나쁜 말 듣고 선생님 열 받으면 어떡해요."
"야, 목욕탕에 가도 온탕도 가고 냉탕도 가야 좋잖아. 그러니 이번엔 온탕 소식을 들었으니 다음엔 냉탕 소식을 듣고 싶어. 너희들을 한 번 믿어 보마."
"알았어요. 다음엔 아주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도록 해볼게요. 히히히."

이미 눈을 다 뜬 상태인 아이들은 서로 보고 키득거린다. 그 중엔 은밀하게 웃는 아이도 있다. 우리 반, 아니 전체에서 꼴찌를 한 아이다. 녀석을 보며 웃어주었더니 녀석도 싱겁게 웃는다. 그러면서 다음엔 냉탕 가자 했더니 '네~' 한다.

아이들과 상대하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즐거울 때도 있고 짜증날 때도 있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아이도 있고, 요령만 피우는 아이도 있다. 그럴 때마다 감정적인 대응을 하면 아이들과의 거리감만 생기고 좋아지지도 않는다. 아이들에게 아무리 변하라 해도 아이들은 마이동풍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변해야 한다. 내가 변해야 아이들도 변한다. 이번에 난 다시 그걸 느꼈다. 웃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아이들도 웃는 얼굴로 대한다는 것을.
#청소#선생님#아이들#마이동풍#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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