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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2TV는 월~금 오후 4~5시 어린이 프로그램 블록을 설정했다. 사진은 그 가운데 하나인 <엄마의 무릎학교>.
ⓒ KBS
다시 5월이다. 다시 어린이날이다. 방송은 어린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알다시피 국내 TV 채널 중에서 어린이 시청자(와 함께 하는 엄마 시청자)를 꽉 잡은 양대 산맥은 애니메이션으로는 투니버스(Tooniverse)와 그 밖의 어린이 프로그램으로는 EBS다. 지상파 3사를 보면 어린이 프로그램의 제작 비중이 계속 줄어들어서 지금은 생색만 내는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 KBS가 지난 4월 30일 봄 개편을 통해 2TV에 어린이 교양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2TV는 현재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간 4~6시 사이에 어린이 프로그램 블록을 설정해서 아예 어린이 프로그램들만 내보내고 있다.

KBS 2TV의 월~금 오후 4~6시 사이에는 <엄마의 무릎학교> <놀이학습 코너> <하하호호 꼬마몽> <너랑나랑초록별> <엄마 아빠가 들려주는 동화> 등 다양한 어린이 프로그램들이 포진해 있다. 각각의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자. 우선 이런 시도가 눈길을 끈다.

지상파 방송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2개의 채널을 가진 공영방송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의지와 노력'으로 읽히기 때문에 우선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공영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을 자꾸 강화해라, 그리고 수신료 올린다고 하면 시청자도 동의할 것이다 싶은 마음이다. 하나 박수를 친 다음에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순수 어린이 프로그램은 사실상 EBS뿐

▲ 애니메이션을 빼고 어린이 프로그램 가운데 어린이 시청률 50위 안에는 오직 EBS 프로그램만 있다. 사진은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 EBS
그 이유를 살펴보자. 지난 4월 18일 국내 모든 TV 프로그램에 대한 TNS미디어코리아 시청률 자료 중에서 당일 5~10세 어린이들이 무엇을 많이 보았는지를 보자. 이 자료는 당일 5~10세 어린이들의 시청률 순위를 50위까지 매겨놓았다.

우선 이 50위 안에 든 프로그램 중에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이 무려 30개(60%)를 차지한다. 이 30개 애니메이션의 방송사별 분포를 보면 투니버스 12개, 챔프(Champ) 10개, JEI 재능방송 7개, EBS 1개다. 상위 10위만 따져보아도 그중 애니메이션은 6개(60%)로 거의 같은 비중이다.

그럼 애니메이션을 빼고 소위 어린이용으로 제작되는 프로그램들 중에서는 어떤 것들이 50위 안에 들어가 있을까. 간단하다. 오직 EBS의 프로그램만 있다.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15위, <만들어볼까요> 23위, <딩동댕 유치원> 27위, <고고 지글스> 42위, <아빠 맞혀보세요> 50위다.

MBC, KBS, SBS의 지상파 방송 3사가 어린이용으로 만든 프로그램은 단 하나도 50위 안에 들어있지 못하다. 지금은 <뽀뽀뽀 아이 좋아>로 이름을 바꾼 MBC의 간판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는 왜 잊혀진 것일까. SBS도 <오늘은 엄마 아빠랑 놀자>나 <서바이벌 독서 퀴즈왕>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을 내보는 데 왜 명함도 못 내미는 것일까.

어린이는 볼 수 없는 시간대 편성

이유는 프로그램을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 하는 관점에서도 나올 수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방송사들이 취하는 방영 편성 시간대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15위에 든 EBS의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는 매주 월~금 오후 5시52분부터 방영되어 1시간 30분이나 이어진다. 23위 <딩동댕 유치원>은 매주 월~금 동안 오전 7시50분부터 17분 가까이 방영된다.

이렇듯 50위 안에 든 EBS의 어린이 프로그램들은 오전 7~8시 사이이거나 아니면 오후 6시 이후에 편성되어 있다. 반면 지상파 3사의 어린이 프로그램은 오전은 이제 아주 없어졌고, 오후는 주로 4~6시 사이에 편성되어 있다.

이러한 편성 시간대의 차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어린이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금세 알 것이다. 이른 아침 시간에 방영되거나 학교와 학원을 끝내고 돌아와서 TV 시청이 가능한 오후 6시 이후의 시간에 방영되는 것이 아니면, 방송사들이 어린이용이라고 만들어 내보내는 프로그램을 정작 어린이들은 볼 수 없는 것이다.

KBS가 2TV를 통해 어린이 프로그램 블록을 설정하고 이를 강화하는 노력은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나, 그 시간대가 매주 월~금 오후 4~6시 사이라면 역시 같은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이 때문에 공영방송 KBS에 박수를 보내놓고도 개운치 못한 것이다.

그럼 도대체 우리 사회의 어린이들은 무슨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걸까. 5~10세 어린이의 시청률 50위까지 순위를 매긴 같은 자료를 인용한다.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확인했다. 참고로 투니버스의 <짱구는 못 말려> 시리즈가 3위와 6위 그리고 17위에 포진해있다는 것을 밝혀둔다. 상위 10위 중 7위부터 14위까지도 내리 애니메이션 프로그램들이다.

어린이 시청률 1위는 <거침없이 하이킥>, 2위는 <나쁜여자 착한여자>

▲ 어린이 시청률 50위 안에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이 무려 60%를 차지한다. 사진은 투니버스의 <짱구는 못말려>.
ⓒ 투니버스
그럼 상위 6위 안에 포진한 프로그램 중에서 5~10세 어린이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MBC가 3개를 차지했고 KBS 2TV가 1개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이름을 소개한다.

1위 MBC 월~금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2위 MBC 일일연속극 <나쁜여자 착한여자>. 4위 KBS 2TV 수 코미디 <웃음충전소> 그리고 6위는 MBC 9시 뉴스 <뉴스테스크>다. 이들 프로그램의 방영은 오후 7시 이후에 편성되어 있다. 그 시간대가 되어야 우리 사회의 어린이들(자료상 5~10세 어린이)은 비로소 TV 앞에 앉아 바로 그런 프로그램들을 보는 것이다.

EBS를 빼면, 어린이들은 지상파 방송3사의 채널을 돌리면서 자신들이 TV를 볼 수 없는 시간대에 자신들을 위한 어린이용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 까맣게 모르고 있을 것 같다. 아니, 알아도 무관심할 것 같다.

게다가 이들 순위를 시청률 수치로 확인하면 그 의미가 더욱 확연해진다. 1위 <거침없이 하이킥>의 5~10세 어린이 시청률은 10.5로 나온다. 압도적인 수치다. 2위 <나쁜여자 착한여자> 4.4다. 3위부터 6위까지 보면 <짱구는 못말려 3> 3.7, <웃음충전소> 3.2, <짱구는 못말려 6> 3.2, <뉴스데스크> 3.0이다.

7위 밑으로는 시청률이 2 이하로 쭉쭉 떨어지고 50위 밖으로 나가면 시청률이 1 이하로 떨어진다. 이 수치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계속 순위와 수치를 적다 보니 머리가 띵하다. 그 의미를 생각하면 더 멍해진다.

아마도 이럴 것이다. 지상파 방송3사의 어린이 프로그램 중에서 제작진의 기획과 노력으로 멋진 방영물이 나와도, 지금처럼 어린이가 보기 힘든 시간대에 편성하면, 시청률 안 나오고, 그럼 광고 붙기 힘든 어린이 프로그램이었던 데다가 시청률도 미미하니, 방송사는 제작비 줄이라 하고, 그렇게 생색만 내면서 속마음으로는 "EBS 보라고 해!" 하고 마는 것.

대신 지상파 방송 3사는 5~10세에서도 시청률 1~2위를 다투는 드라마, 시트콤,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매진하면 된다. 그런데, 과연 EBS 혼자 어린이 프로그램 만들면, 우리 사회의 TV 어린이 프로그램은 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걸까. 슬픈 5월이다.

태그:#키드존, #어린이 프로그램, #시청률, #유아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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