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전사 보광전 뒤로 신비스러운 기암(旗岩)이 우뚝 솟아 있다.
대전사 보광전 뒤로 신비스러운 기암(旗岩)이 우뚝 솟아 있다. ⓒ 김연옥

지난 28일 나는 가깝게 지내는 콩이 엄마, 나이가 지긋해도 마음은 늘 청춘인 김호부선생님과 같이 경상북도 청송 나들이를 했다. 올 겨울에 이어 두 번째 청송 나들이인 셈인데, 연분홍 수달래가 화사하게 피어날 때 청송에 다시 가자던 콩이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김해에서 차를 몰고 온 콩이 엄마와 서마산 I.C에서 만난 시간이 오전 8시께. 서서히 마산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면서 내 마음도 팍팍한 일상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짙은 초록색과 연초록색이 함께 어우러진 산들의 풍경이 무척 싱그러웠다. 이따금 하얗게 색칠을 해 놓은 듯한 산벚나무도 눈길을 끌었다.

마치 때늦은 함박눈이 내린 것 같은 배 밭 풍경 또한 몹시 마음을 설레게 했다. 봄볕에 반짝이는 흰 배꽃들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면 꾸밈이 없는 순박한 소녀들이 하얀 이를 드러낸 채 까르르 웃는 듯했다. 우리는 거대한 안동 임하댐을 지나 11시 50분께 주왕산 국립공원(경북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상의주차장에 도착했다.

연분홍 수달래에 울고 웅장한 기암괴석에 웃다

주왕산 시루봉(사진 오른쪽 바위). 보는 방향에 따라 떡을 찌는 시루 같기도 하고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하다.
주왕산 시루봉(사진 오른쪽 바위). 보는 방향에 따라 떡을 찌는 시루 같기도 하고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하다. ⓒ 김연옥

겨울에 갔던 그 음식점에 들러 순두부찌개로 일단 허기를 채우고 주왕산에 자리 잡은 대전사(大典寺)로 갔다. 예전에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리어졌던 주왕산(722m)과 천년고찰인 대전사는 중국 당나라 때 주도(周鍍)라는 사람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자신을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켰던 주도가 당나라 병사들에게 크게 패해 석병산까지 쫓겨와 숨어 지내게 되었다.

이에 신라 왕이 주왕을 없애 달라는 당나라 왕의 청을 받아 들여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서 주왕의 무리를 죽이게 했다. 그 후로 주왕이 숨어 살았던 산이라 하여 석병산을 주왕산(周王山)이라 부르게 되었고 절의 이름도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명복을 빌어 대전사라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대전사 요사채 돌담 앞에 피어 있는 연분홍 수달래.
대전사 요사채 돌담 앞에 피어 있는 연분홍 수달래. ⓒ 김연옥

주왕산을 찾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기암(旗岩)의 아름다움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특히 대전사 보광전(경북유형문화재 제202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기암의 모습은 더욱 신비하고 경이로운 느낌마저 준다. 대전사에서는 그날 저녁 7시부터 제22회 주왕산 수달래축제 전야제 행사로 산사음악회가 열릴 예정이라 그 준비가 한창이었다.

우리는 주방천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수달래를 기대하며 대전사에서 나왔다. 주도가 후주천왕의 야망을 결국 이루지 못하고 주왕굴에서 마장군의 화살에 맞아 숨을 거둘 때 흘린 피가 주방천을 붉게 물들였다 한다. 그 이듬해 주방천 물가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수달래가 피어나자 사람들이 그 수달래를 주왕의 넋으로 여겼다.

주왕산에서. 급수대(사진 왼쪽 바위)가 보인다.
주왕산에서. 급수대(사진 왼쪽 바위)가 보인다. ⓒ 김연옥

주왕산 제1폭포 부근의 거대한 기암절벽은 한순간 숨이 막히는 듯한 감동을 준다.
주왕산 제1폭포 부근의 거대한 기암절벽은 한순간 숨이 막히는 듯한 감동을 준다. ⓒ 김연옥

그런데 아직 수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지 않은 데다 수달래 군락지가 자연휴식년제 시행으로 2015년까지 출입제한구역으로 묶여 가까이에서 볼 수 없었다. 얼마나 아쉬웠던지 나는 볼멘소리로 여름 땡볕 못지않게 따갑게 내리쬐던 햇볕 탓만 자꾸 했다.

그래도 떡을 찌는 시루 같기도 하고 다른 방향에서 보면 사람의 얼굴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시루봉, 한순간 숨이 막히는 듯한 감동을 주는 웅장한 기암절벽과 아름다운 제1폭포를 지나가면서 마음이 점점 누그러졌다.

주왕산 제3폭포.
주왕산 제3폭포. ⓒ 김연옥

주왕굴에서. 굴 입구에 물이 떨어지면서 예쁜 무지개가 섰다. 콩이 엄마가 떨어지는 물을 바가지에 받고 있다.
주왕굴에서. 굴 입구에 물이 떨어지면서 예쁜 무지개가 섰다. 콩이 엄마가 떨어지는 물을 바가지에 받고 있다. ⓒ 김연옥

그리고 경치가 빼어난 제3폭포를 보고 나서 주왕의 넋을 달래 주기 위해 지은 주왕암으로 갔다. 주왕암은 한창 공사중이라 어수선했지만 어여쁜 황매화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 안쪽으로 나있는 기다란 철계단을 따라 가면 협곡 암벽에 자연 동굴인 주왕굴이 나온다. 그곳에 숨어 지내던 주왕이 굴 입구에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다 마장군의 군사에게 발각이 되었다고 적혀 있다.

콩이 엄마와 나는 갈증이 나서 주왕굴 입구에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셨는데 물맛이 꽤 좋았다. 게다가 크기는 비록 작지만 예쁜 무지개도 걸려 있었다. 무지개는 늘 아름다운 꿈처럼 다가와 우리들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그래서 영롱한 무지개를 보는 날이면 괜스레 좋은 일이 꼭 생길 것만 같다.

달기약수 마시고 마당 많은 송소고택에 가다

우리는 탄산, 철 성분 등이 함유되어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능이 있다는 달기약수터(청송군 청송읍 부곡리)를 찾았다. 달기약수를 마시면 트림이 나면서 속이 편안하고 그 물로 짓는 밥맛 또한 일품이라고 한다.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능이 있다는 달기약수터에서.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능이 있다는 달기약수터에서. ⓒ 김연옥

그런데 달기약수를 마셔 본 적이 있는 콩이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녹슨 못을 30분 정도 담가 두었다가 마시는 기분이라고 하더니 정말이지, 그런 맛이 났다. 그래도 몸에 좋다고 해서 눈 질끈 감고 한 바가지 꿀꺽 마셨다.

덕천동 심부자댁인 송소고택(경북민속자료 제63호,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도 잠시 들러 마산으로 가기로 했다. 조선 영조 때 만석꾼인 심처대의 7대손인 송소(松韶) 심호택(沈琥澤)이 1880년(고종 17)경에 세웠다는 송소고택은 그 당시 집 규모가 아흔아홉 칸이었다 한다.

덕천동 심부자댁 송소고택.
덕천동 심부자댁 송소고택. ⓒ 김연옥

그 옛집에는 대문채,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 안채와 별당이 있고 건물마다 독립된 마당을 갖추고 있는 게 흥미로웠다. 그리고 꽃밭에 피어 있던 단아한 붓꽃, 마당에 드러누워 한가로운 낮잠을 즐기고 있던 삽살개와 송소고택 부근에 살던 할머니 집의 하얀 꽃사과나무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마산으로 가는 길에 콩이 엄마 가족이 청송에서 지내던 시절에 살았던 아파트 단지도 한번 들러 보기로 했다. 그곳에 서양수수꽃다리 꽃이 예쁘게 피어 있어 나는 살포시 눈을 감고 상큼한 향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은은하게 흩날리는 서양수수꽃다리 꽃 향기에 나는 잠시 행복했다.

개나 돼지라도 와서
문을 열었으면 열었으면 하고
눈이 빠지도록
쳐다본 출입문

햇볕이란 놈이 살금살금 왔다가
그냥 가버렸다
잡아서 묶어 놓을 새도 없이
가버렸다

뒤를 이어 어둠이 어둠이
강물처럼 밀려들었다

나를 흠뻑 적신 어둠이
이 밤만이라도
서로 동무 삼자고 했다
-정규화의 '동무'


하얀 꽃사과나무.
하얀 꽃사과나무. ⓒ 김연옥

우리들 삶은 외롭다. 그래서 이따금 짧은 여행길을 나서면서 함께 떠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무척이나 기쁘다. 어둠이 곱게 내린 길을 끝없이 달리며 나이를 떠나 서로 친구가 되었음에 우리 모두 행복해 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