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기서 부터 '생태보전지구'입니다.
여기서 부터 '생태보전지구'입니다. ⓒ 김선호
지난 22일,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에 위치한 '귀목봉'으로 두 번째 꽃산행에 나선다. 봄이 오는 속도를 잴 수만 있다면 그 빠른 속도에 놀라게 될 것 같다.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숲은 이제 연둣빛으로 푸르다. 산 중턱을 경계로 아래는 벌써 파랗게 돋아난 잎새로 완연한 봄인 반면, 위로는 이제 갓 겨울을 벗고 있는 모습이다. 이맘때야말로 숲의 가장 다양한 모습을 관찰하기 좋은 시기다.

홀아비꽃대
홀아비꽃대 ⓒ 김선호
한북정맥을 이루는 줄기 중 하나로 양쪽에 청계산과 명지산을 거느리고 있는 귀목봉(1036m)은 계곡과 능선길이 모이는 '길목'이라는 뜻으로 길목의 발음이 변해 '귀목봉'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가평군 북면 장재울에서 시작된 산행은 귀목고개를 첫 번째 목적지로 계곡을 따라 가며 시작된다. 명지산을 비롯한 귀목봉 주변은 국가가 지정한 '생태보전지구'다.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조종천상류의 지류 중 한 곳으로 아름다운 주변경관과 더불어 다양한 생태계를 갖춘 숲이다.

참개별꽃
참개별꽃 ⓒ 김선호
다행스럽게도 산길에서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모습은 이제는 좀체 만나기 어렵다. 자연환경에 대한 수준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생각한다. 반면, 생태보전지구임에도 불구하고 계곡 주변의 상가와 숙박업체가 해마다 증가하는 까닭은 의문스럽다.

시민의식수준의 진보에 발맞춰 생태계 보전에 대한 행정당국의 의식수준이 아쉬운 건 비단 귀목봉에 한해서만이 아닐 것이다. 80%가 산으로 이루어졌으며 화전민이 농사짓던 흔적이 아직도 발견될 정도로 오지였던 가평 땅이 그러할 지경인데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공식적으로 개발이 허가되는 지역은 오죽하겠는지.

귀목고개를 향하여 계곡을 끼고 산길을 걷는다. 계곡가에 일찍 잎을 틔운 나무들로 숲은 싱그러움이 물씬 풍긴다. 꽃이 피는 것 만큼이나 잎이 돋는 모습도 예쁘다. 생태보전지구라는 팻말이 무색하게 등산로 들머리에 폐비닐과 각종쓰레기로 어지러웠는데 계곡을 건너 숲에 들어서니 깨끗한 물과 어울린 푸릇한 숲에 꽃들이 지천이다.

계곡에 노란꽃점을 찍은, 피나물꽃
계곡에 노란꽃점을 찍은, 피나물꽃 ⓒ 김선호
어느 생명인들 소중하지 않을까, 어떤 꽃인들 봄이 피는 이 산길에서 어여쁘지 않겠는가만, 그 중 새롭게 보이는 꽃들이 더욱 반가운 건 인지상정.

등산로 초입에서 군락을 이루어 핀 '홀아비꽃대'며 계곡을 가로지르는 호젓한 나무계단을 건너며 보았던 '홀아비바람꽃', 그리고 귀목고개를 올라 800미터 지점부터 나타나던 '노루귀꽃'이 귀목봉 산행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았던 꽃이다.

너덜지대를 걷는 듯한 등산로의 돌길이 매우 운치 있다. 등산로를 따라 깔려있는 돌 틈으로도 꽃들이 솟아나고 계곡가 주변으로 피나물꽃이 한창이다.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산길에서 보는 피나물꽃의 노란색감은 단연 돋보이기 마련이다. 현호색과 제비꽃, 별꽃이 양지꽃과 어울린 산속은 어디를 찍어도 그대로 한 장의 근사한 엽서가 될 것 같은 풍경이다.

홀아비바람꽃
홀아비바람꽃 ⓒ 김선호
다시 생태보전지구 팻말을 지난다. 이 숲에 사는 희귀동·식물들을 설명하는 입간판도 지난다. 찾는 이들이 거의 없는지 숲은 고즈녘하기 그지없다. 힘차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에 맞춰 산새가 운다. 산이 깊으니 물도 깊다는 말이 이 산에서 만큼 잘 어울린 곳이 있을까 싶다. 어디서나 철철 흘러 넘치는 물을 볼 수 있으니 여름산행으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나무계단이 무척 인상적이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나무다리'야말로 이 산이 '생태보전지구'임을 알려주는 표식 같다. 간간히 마주친 입산통제구간은 나무다리와 마찬가지로 소박한 나무울타리를 둘렀다. 자갈돌이 깔린 등산로도 자연스러워 인공의 흔적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자연을 이용하는 일이 '스스로 그러하듯' 자연스러워야 함을 귀목봉에서 본다.

소박한 생김의 나무다리를 건너면  거기 꽃길이 기다립니다.
소박한 생김의 나무다리를 건너면 거기 꽃길이 기다립니다. ⓒ 김선호
나무다리를 건너 홀아비바람꽃을 만난다. 하얀꽃의 색감이 신비롭다. 올해 들어 처음 만나는 꽃이다. 한 개의 꽃대가 올라와 꽃이 피는 모습이 외로워 보여서 '홀아비 바람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름에 비해 꽃은 너무 예뻐 바라보는 것 조차 아까울 정도다. 올라오면서 '홀아비꽃대'를 보았는데 '홀아비'에 어울리는 꽃은 아무래도 '홀아비꽃대'가 더 가까운 것 같다.

강인함과 여림을 동시에 지닌, 노루귀꽃
강인함과 여림을 동시에 지닌, 노루귀꽃 ⓒ 김선호
산을 오르는 일은 뒷전이고 꽃들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 순간 가파른 오르막이 보인다. 산 중턱을 넘었나 보다. 귀목고개까지 이어진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올라오면서 보이지 않던 얼레지가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온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귀목고개에서 쉬고 있자니 근방이 모두 얼레지꽃밭이다.

얼레지꽃밭은 귀목고개를 기점으로 귀목봉 정상까지 이어져 있었다. 능선길 양쪽 사면을 메울 듯 피어 있었으니 귀목봉의 얼레지꽃길은 가히 상상을 불허한다. 질릴만도 하건만 그 엄청난 얼레지꽃밭이 끝까지 신선함으로 다가왔던 건 노루귀 덕분이다.

귀목봉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꽃을 대라면 단연 '노루귀'가 될 것이다. 꽃이 지면서 나오는 이파리 모양이 노루의 귀를 닮았대서 이름 붙인 노루귀는 깊은 산골에 피는 소중한 우리 들꽃이다.

꽃 모양이며 꽃대가 얼마나 여린지 '심신 산골'이라는 악조건에서 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보라색 얼레지 사이에 하얀꽃점이 흔들리면 영락없이 노루귀였다. 솜털마저 보송보송 한 게 마치 갓 태어난 어린 노루를 보는 듯 안쓰러운 느낌마저 든다.

노루귀꽃
노루귀꽃 ⓒ 김선호
아이한테 찬 바람을 맞으며 깊은 산골에 피어있는 노루귀 하얀꽃을 보여 준다. 다행히 꽃이 지고 노루귀를 닮은 잎새도 몇 개 나와 있다.

얼레지와 노루귀가 이끄는 대로 길을 가다보니 어느새 1036m의 귀목봉 정상이다. 이렇다할 특징이 없는 귀목봉 정상은 그 밋밋함을 사방으로 뻗어있는 산능선의 장엄함으로 메워준다. 가평 제일의 산, 화악산이 북쪽으로 보이고 좌우로 귀목봉과 연계된 명지산과 청계산이 한눈에 들어오며, 운악산이 손에 잡힐 듯 앞쪽에 자리해 있다.

폭포수 처럼 쏟아져 내리는 장재울 계곡가에 핀 돌단풍이 조화롭습니다.
폭포수 처럼 쏟아져 내리는 장재울 계곡가에 핀 돌단풍이 조화롭습니다. ⓒ 김선호
청계산과 귀목봉 사이의 산등성이를 타고 하산한다. 꽃보다는 암릉과 노송의 조화를 감상하며 내려가는 길이다. 하지만 능선길의 가파름은 '감상'을 하기에 여의치 못하다. 같은 산인데도 햇볕에 의한 차이인지 이곳은 이제 진달래가 한창이다. 어렵사리 중턱을 넘어서는 지점에서부터 양쪽으로 우렁찬 물소리가 들려온다. 장재울 계곡을 형성하는 두 물줄기다.

양편으로 계곡을 거느리고 하산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엘가(영국의 음악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듣는 기분이다. 두 개의 위풍당당한 물길이 하나로 합수 되는 계곡 앞에 서니 그 느낌은 한층 더한다. 눈 앞에 펼쳐진 쌍계(雙溪)의 장엄함에 한 순간 말을 잃는다.

이 물이 흘러 조종천 지류를 형성하고 북한강으로 흘러들 것이다. 귀목봉의 오르는 두 가지 맛, 그것은 하나는 꽃이 이루어낸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두 개의 계곡물이 합수되어 만들어 내는 위풍당당한 교향곡을 듣는 일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