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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비닐하우스촌 꿀벌마을에 사는 열두살 영식이는 매일 아침 7시20분이면 집을 나선다. 살고 있는 집이 정식 주소지를 가지지 못한 탓에 원거리 통학을 해야하는 영식이가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비닐하우스촌을 나선다.
과천 비닐하우스촌 꿀벌마을에 사는 열두살 영식이는 매일 아침 7시20분이면 집을 나선다. 살고 있는 집이 정식 주소지를 가지지 못한 탓에 원거리 통학을 해야하는 영식이가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비닐하우스촌을 나선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엄마, 우리도 방배동으로 이사 가면 안 돼?"

꿀벌마을(경기도 과천)에서 태어난 열두살 이영식(가명). 영식이에게 서울 서초구 방배동은 '꿈의 동네'다. 친한 친구들이 살고 있고, 영식이가 좋아하는 PC방과 놀이터가 많기 때문이다.

영식이가 무엇보다 방배동으로 이사 가고 싶은 이유는 학교 때문이다. 영식이는 매일 아침 경기도 과천 꿀벌마을에서 방배동까지 통학한다. 지하철 4호선 경마공원역을 출발, 이수역에 내려서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학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총 45분. 초등학생에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먼 통학거리 때문에 영식이는 학교 앞 문방구의 단골 '외상 손님'이 됐다. 실내화나 수업준비물을 집에 두고 와도 달음박질로 집에 갈 수 없다. 너무 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식이는 학교앞 문방구에서 매번 새것을 산다. 실내화만도 벌써 6켤레나 된다.

학교앞 문방구 주인 아주머니도 영식이 엄마랑 전화통화만 되면 영식이에게 외상으로 물건을 준다. 영식이의 사정을 잘 아는 터이다. 지금은 중학생이 된 영식이의 누나 영지(14·가명)가 먼저 이 문방구 주인 아줌마와 안면을 튼 까닭에 영식이도 거래가 쉬워졌다. 누나 영지도 과천에서 서울 서초구 서초동까지 통학하고 있다.

"좋은 학군 찾아 강남에 위장전입 했다고요?"

영식이와 누나 영지가 매일 아침 원거리 통학을 하는 이유는 주소지 문제 때문에 위장 전입을 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이 비닐하우스촌에 살고 있는 이들의 주소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위장전입을 통해 멀리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주소지를 인정해준다면 영식이나 영지도 가까운 거리에서 통학할 수 있다. 영식이 엄마 김금순(47)씨는 4월 영지의 중간고사가 끝나면 다시 주소를 이전해 과천에 있는 중학교로 옮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남들의 비난처럼 좋은 학군을 따져서 강남으로 주소지를 옮겨놓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과천 비닐하우스촌 꿀벌마을에 사는 열두살 영식이는 마을 인근에 학교를 놔두고 위장전입 신고돼있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초등학교로 매일 전철과 마을버스를 갈아타며 원거리 통학을 한다.
과천 비닐하우스촌 꿀벌마을에 사는 열두살 영식이는 마을 인근에 학교를 놔두고 위장전입 신고돼있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초등학교로 매일 전철과 마을버스를 갈아타며 원거리 통학을 한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비닐하우스촌 학부모들의 고민

비닐하우스촌에 살고 있는 부모님들은 주소지 이전 문제만큼 자녀교육 문제를 걱정했다. 위장 전입을 해서라도 계속 먼 거리에서 아이들을 통학시켜야 하는 것인지, 형편이 눈에 띄게 비교되는 부잣집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 옳은지 늘 갈등하고 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비교되는 상황에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아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은 비닐하우스촌에 대한 주거 인정이 돼서 전입신고를 하고 떳떳하게 아이들이 학교 다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안전이 확보된 통학로 때문이다. 멀리 학교 다니는 영지와 영식이 때문에 엄마 김금순씨는 늘 불안하다. 혹시라도 등하교길에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먼 통학거리 때문에 영식이는 학교 앞 문방구의 단골 '외상 고객'이기도 하다. 실내화나 준비물을 집에 두고 와도 집보다 문방구에서 해결하는 게 빠르기 때문이다.
먼 통학거리 때문에 영식이는 학교 앞 문방구의 단골 '외상 고객'이기도 하다. 실내화나 준비물을 집에 두고 와도 집보다 문방구에서 해결하는 게 빠르기 때문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4호선 경마공원역을 출발, 이수역에서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5분정도를 걸어 영식이가 학교에 도착했다.
4호선 경마공원역을 출발, 이수역에서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5분정도를 걸어 영식이가 학교에 도착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씨는 "영식이나 영지가 친구들 얘기를 빗대 방과후 학원이나, 과외로 바쁜데 우리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때마다 속이 상한다"며 "지금 우리 형편에서 강남으로 이사갈 수도 없고 값비싼 돈을 치르고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형편도 안 된다"고 토로했다.

영식이와 영지를 위한 사교육비는 매달 13만5000원이 들어가는 수학 학습지가 전부다. 방과후 학원과 과외로 시간을 보내는 영식이와 영지의 반 친구들과는 대조적이다.

김씨는 "아이들을 위해 마을 공부방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며 "학원도 다니지 않고, 공부방도 없어 귀가한 아이들은 집에 갇혀 사는 셈"이라고 말했다. 영지는 시험기간 친구들과 함께 시설이 좋은 개포동 도서관을 찾지만,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는 수고를 해야 한다.

또, 그는 "방배동 학부모 중에는 비닐하우스촌 아이들과 놀지 말라는 이들도 있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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