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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대학로에서 지구의 날 행사가 열렸다.
22일 서울 대학로에서 지구의 날 행사가 열렸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내일 뭐해?"
"대학로 지구의 날 갈 거예요."
"어제 인천에 다녀왔잖아."
"서울, 인천, 대구, 부산. 전국 곳곳에서 다 해요. 지구의 날은 전 지구적으로 하는 거니까."


함께 사는 선배가 이렇게 물은 이유는 다음날 아침 조기축구하러 가자는 뜻에서 물은 것이다. 물론 선배는 축구하러 가고, 나는 대학로에 갔다.

지구환경 위기 극복을 위해 마련된 '지구의 날' 행사가 한국에서 치러지는 것도 올해로 18년째다. 가장 먼저 시작된 미국은 우리보다 20년이 빠르다.

꼭 함께 사는 선배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지구의 날은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에게 먼 나라 행사다. 내 주위에서도 관련된 일거리가 없으면 '지구의 날'에 특별한 관심을 둔 적은 없다.

2007년 지구의 날 조직위원회는 'stop 온난화, move 자전거, again 재활용'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2007년 지구의 날 조직위원회는 'stop 온난화, move 자전거, again 재활용'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환경'에 대한 관심이 계속 커지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비환경적인 일은 더 많아지고 있다.

자전거 타는 인구가 늘었다곤 하지만 자동차 대수는 자전거보다 몇 곱절 더 늘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분석한 분담률 조사에 따르면 서울-천안 구간에선 자가용이 67.7%, 서울-대전 구간에선 45.1%에 이른다.

지난해 에너지 소비 증가율이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1.7%에 그쳤지만, 올해는 배 가까운 3.1%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올해 '지구의 날'을 준비한 사람들은 어떤 메시지를 준비해서 나왔을까.

'stop 온난화, move 자전거, again 재활용'

참가자들은 대학로에서 종로까지 걸어가며 지구환경 위기를 알렸다.
참가자들은 대학로에서 종로까지 걸어가며 지구환경 위기를 알렸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거의 밤샘한 탓에 한참 뭉그적거리다가 늦은 시간에 대학로에 갔다. 지하철공사에 따르면 대학로의 혜화 전철역을 이용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10만명에 이른다. 평일 저녁 7~8시 사이에만 3000명이 넘는다.

이렇게 유동인구가 많으니 주최 측이 대학로를 택한 것은 좋은 선택인 듯하다.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30분. 4개 차선에서 차량을 통제하고, 2개 차선으로만 자동차가 다니고 있었다. 평소 6개 차선을 차지하던 자동차들이 한쪽으로 꾸역꾸역 빠져나가는 모양이 도로의 패잔병처럼 보였다.

논 수로처럼 좁은 2차선을 빠져나온 자동차들은 넓은 길로 나오자 다시 속도를 높인다. 2차선 길에서 줄인 속도를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자동차를 막고 만든 행사장엔 역시 사람이 많다. 대학로에 놀러 나왔다가 이곳에 온 것인지, 지구의 날 행사를 보러 일부러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많다.

2007 지구의 날 조직위원회는 'stop 온난화, move 자전거, again 재활용'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행사를 준비했다.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 막 일행이 온갖 구호 문구를 들고 종로까지 행진하고 있었다. 양복 차림에 가방을 둘러메고 자전거를 탄 채 뒤를 따르는 한 신사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지구 온난화는 누구나 인정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지구 온난화는 누구나 인정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 오마이뉴스 김대홍

'STOP CO2', '에어컨을 끄고 여름을 즐기세요', '지금 변하지 않으면 21세기 말 기온 6.5도, 해수면 59cm 상승', '온실가스 증가율 OECD 1위 한국은 포스트 교토체제 참여하라', '빈 그룻 운동 딱 먹을 만큼만' 등의 구호를 사람들이 들고 있었다.

행사장 한쪽에서 한민정 녹색자전거봉사단장을 만났다. 한 단장은 이날 오전 여의도부터 자전거 대행진을 벌였다. 원래 460명이 출발했는데, 중간에 들어온 사람까지 있어서 약 550명 정도가 참가했다고 한다. 친환경 행사에서 '자전거 대행진'은 이제 고정행사가 돼 버렸다.

노숙인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는 (사)신명나는한반도자전거와 함께 자전거 수리를 하면서 자전거재활용 사업을 하고 있었다. 몇 번 안 탄 자전거를 버리고 방치하는 게 곧 쓰레기니 '자전거 재활용'은 아주 좋은 친환경 운동인 셈이다.

지구 곳곳에서 이상 기온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이상 기온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에너지시민연대는 기후변화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세계 주요 나라와 관련된 기후 재앙, 환경 오염 등 사진을 뒷면에 붙여 사람들이 돌려보며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유럽은 '육식 소비 증가', 인도는 '홍수 증가' 등이다.

환경운동연합은 두더지 게임과 이산화탄소의 위험을 붙였다. '두더지=이산화탄소'로 만들어 두더지를 잡으면서 이산화탄소를 잡는 효과를 준 것.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난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날 행사 주제에 걸맞은 책들을 판매했다. <지구가 정말 이상하다>, <노래하는 환경교실>, <자전거가 있는 풍경> 등의 책이 놓여 있었다. 판매를 맡은 이종수씨에게 "판매가 많이 됐느냐"고 묻자 "조금"이라며 희미하게 웃는다.

종로까지 가는 행렬엔 양복 입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었다.
종로까지 가는 행렬엔 양복 입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었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다른 생물을 생각해보는 시간도 있었다. (사)한국동물복지협회와 동물자유연대는 어미돼지의 삶을 사진으로 표현했다. 인공수정에 의해 스톨에서 평생 동안 새끼만 낳는 암퇘지는 1년에 2~4회 출산하면서 휴식기간은 단 2주일뿐이다. 새끼를 낳다가 장이 빠지기라도 하면 도축장 폐기장에 그대로 버려진다. 이날 삼겹살 먹을 약속을 한 사람이라면 이 사진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진 않았을까.

이번 행사에 참가한 김현영 서울환경연합 간사는 CO2를 먹음직스런 케이크로 표현한 퍼포먼스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환경을 파괴하는 것들이 인간에게 얼마나 유혹적인지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 실제 패스트푸드, 자동차, 합성세제 등은 우리 삶에서 얼마나 매혹적인가.

자동차에 점령된 도로 해방하기

이날 6시간 동안 대학로 차도에선 자동차와 사람이 공존했다.
이날 6시간 동안 대학로 차도에선 자동차와 사람이 공존했다. ⓒ 오마이뉴스 김대홍

오전 11시에 시작한 행사는 원래 오후 5시까지 예정돼 있었지만 오후 4시가 되자 대부분 부스들이 거의 철거하기 시작했다. 그 시간 동안 대학로의 4개 차선은 차량이 통제됐다.

6시간 동안 평소 대학로를 지나던 자동차들은 갑갑함을 느꼈을 것이고, 자동차 도시에 위협을 느낀 사람들은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튼 자동차에 점령된 도로는 6시간 동안 잠깐 해방구를 맛본 뒤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런데 4개 차선은 사람이, 2개 차선은 자동차가 나눠 쓴 이 경험이 1년 내내 이어지면 과연 어떻게 될까. 자동차를 탄 사람들은 과연 폭동을 일으킬까.

자전거 타는 사람도 늘고 있지만, 자동차 타는 사람도 똑같이 늘고 있다. 이게 과연 옳은 방향일까. 하루 전 인천 지구의 날 행사장에서 만난 한 참가자의 말이 귓속을 맴돌았다.

"친환경 국가, 자전거 선진국이라고 하는 일본에선 자전거도 늘고 자동차고 늘고 있어요. 환경 측면에서 과연 이게 좋은 것일까요. 우리가 일본을 모델로 한다면 이런 점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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