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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화와 대조전 굴뚝
홍매화와 대조전 굴뚝 ⓒ 김정봉
대조전 뒤편 화계에는 회색과 붉은색 벽돌로 쌓은 아름다운 굴뚝이 있다. 몸체는 회흑색의 벽돌로 쌓고 윗줄은 붉은색 벽돌로 쌓아 몸체와 구분짓고 있다. 몸체 상단에는 붉은 색 벽돌로 한 줄을 쌓아 경계를 삼아 변화를 주었다.

우리는 굴뚝을 만들더라도 그 기능적 측면만을 강조하여 아무렇게나 쌓지 않았다. 화계를 장식하는 하나의 조형물로 간주하여 담과 화계와 조화를 이루도록 공을 들였다. 굴뚝의 붉은 색조와 맞추기라도 한 듯 그 옆에는 분홍색의 홍매화를 심어 놓았다. 매화는 예로부터 기품있는 선비의 고고한 기개를 나타낸다. 곧게 서 있는 굴뚝과 처마부분의 붉은 색깔과 잘 어울린다.

대조전 화계와 앵두나무

앵두나무와 대조전 화계
앵두나무와 대조전 화계 ⓒ 김정봉
대조전 화계는 4단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연분홍 빛깔의 진달래와 하얀 앵두나무가 단 별로 줄지어 심어져 있다. 하얀 앵두꽃은 육중한 화강암에 가려 튀지 않지만 빨간 앵두가 열리는 초여름이면 뽀얀 화강암과 잘 어울릴 것 같다. 앵두나무는 세종이 좋아해서 그런지 창덕궁 여기저기에 심어져 있다. 이곳 말고도 낙선재 앞뜰과 주합루 화계에서도 볼 수 있다.

승화루 꽃담과 능수벚꽃

능수벚꽃과 꽃담
능수벚꽃과 꽃담 ⓒ 김정봉
꽃담은 순수 우리말로 아름다운 무늬나 그림을 넣어 장식한 담을 말한다. 실제로 꽃이 담에 붙어 수가 놓인 것 같은 담은 이름 그대로 '꽃 담'이다. 예전 글에서 낙선재 꽃담을 보고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였으나 꽃이 박힌 꽃담을 보니 4월 한 달은 이런 생각을 접어야 할 것 같다(참고 : 꽃보다 아름다운 꽃담에 취해보세요, 2006.07.08, 오마이뉴스).

승화루 옆 꽃담은 회색 벽돌을 이용해 대각선으로 쌓아 변화를 주었으며 화려하기보다는 단아한 느낌을 준다. 승화루 담장 너머에는 두 그루의 능수벚꽃이 긴 수염을 늘어뜨리기도 하듯 점잖게 서 있다. 담까지 뻗어 내린 벚꽃은 담장에 꽃잎이 박힌 듯 보인다. 사람이 만들지 않은 자연 꽃담이다.

낙선재 지붕선과 철쭉

철쭉과 지붕
철쭉과 지붕 ⓒ 김정봉
낙선재 앞뜰에는 갖가지 나무가 있다. 매화와 살구꽃은 거의 지고 앵두나무는 꽃잎의 반은 땅에 흘리고 반은 가지에 달고 있다. 진달래가 질 무렵에 피는 철쭉은 제일 늦어 이제 피려고 한다.

한겨울 낙선재의 제일경은 장락문에 기대어 승화루 꽃담과 함께 상량정을 보는 것이라면, 꽃이 피는 철에는 낙선재 앞마당에서 꽃과 함께 낙선재의 지붕선을 쳐다보는 것이다. 지금은 꽃 중에 철쭉이 제일이어서 철쭉몽우리와 사모지붕, 팔작지붕, 맞배지붕 등 여러 지붕이 어우러져 멋있다.

삼삼와와 칠분서 담장 일각문과 홍매화

홍매화와 일각문
홍매화와 일각문 ⓒ 김정봉
담을 째고 후원이나 사랑채로 통하는 조그마한 문을 내는데 이 문을 일각문이라 한다. 삼삼와와 칠분서 옆 담장엔 일각문이 나있고 그 옆엔 홍매화가 심어져 있다. 일각문은 그저 평범하게 생겨 그냥 지나치려는데 홍매화가 발길을 잡는다.

일각문을 볼 때마다 계집애가 댕기꼬리를 나풀거리며 쪼르르 뛰어나가는 장면이 연상되는데 따뜻한 봄햇살에 반짝이며 수줍어하며 피어 있는 홍매화는 흡사 댕기꼬리 나풀거리는 그 계집애를 보는 것 같다. 대조전 굴뚝 옆 홍매화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자시문(資始門)과 노매(老梅)

노매(老梅)
노매(老梅) ⓒ 김정봉
중희당의 서문이었던 자시문 앞, 'ㄱ'자로 꺾인 담 밑에 늙은 매화나무가 있다. 담이 직각으로 꺾인 공간에 화단을 만들어 거기에 심어 놓았는데 담은 직선 무늬로 화려하지 않고 정갈하여 노매와 잘 어울린다.

이 매화나무는 선조 때 명나라에서 보내 온 것이라 전해지고 있어 나이는 400년으로 추정된다. 늙은 가지에 매화 한 송이를 달고 있는 모양이 노익장을 과시하는 것 같다.

애련정과 능수벚꽃

애련(哀憐), 능수벚꽃과 애련정
애련(哀憐), 능수벚꽃과 애련정 ⓒ 김정봉
부용정과 더불어 연꽃과 관련이 있는 정자가 애련정이다. 부용이 연꽃의 한자어라면 애련은 '연꽃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중국 송대의 주돈이의 '애련설'에서 따온 것이다.

부용정이 마치 막 피려는 연꽃 같다면 몸집에 비해 지붕이 커서 지붕이 유난히 돋보이는 애련정은 활짝 핀 연꽃 같다. 이래서 애련정이 가냘프게 보이고 사랑스런 지 모르겠다. 연꽃을 사랑한다는 애련과 달리 가엽고 사랑스런 의미의 애련(哀憐)과 같아 가냘픈 가지에 곱고 아리따운 꽃을 피운 능수벚꽃과 잘 어울린다.

목련과 연경당

고아(高雅), 목련과 연경당
고아(高雅), 목련과 연경당 ⓒ 김정봉
겨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연경당 앞마당의 목련이 봄이 되니 진한 향기를 내뿜으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목련은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을 향해 핀 목련은 임금에 대한 충절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연경당을 향해 늘어진 목련의 자태는 연경당 주인의 인품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고아(高雅)하다.

계단길과 황매화

운치(韻致), 황매화와 희우정으로 오르는 계단길
운치(韻致), 황매화와 희우정으로 오르는 계단길 ⓒ 김정봉
연경당 앞, 부용정 영역의 희우정으로 오르는 계단길 옆에 노란 황매화가 피어 있다. 창덕궁에서 가장 운치(韻致)가 있는 길을 꼽으라면 단연 여기가 될 것이다.

제 이름도 갖지 못해 꽃의 모양이 매화를 닮아서 노랑매화라 하여 황매화로 불리고 꽃은 피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애달픈 꽃이다. 계단 길로 올라가고 싶으나 오르지 못하게 되어 있어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5월이 되면 개나리, 매화, 벚꽃, 앵두꽃은 철쭉과 모란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 봄의 주인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희정당 앞과 후원 곳곳에는 산철쭉이, 낙선재 화계에는 모란이 그리고 낙선재 앞뜰과 후원에는 감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할 것이다.

새로운 봄의 주인이 될 산철쭉(2006.04.22에 촬영)
새로운 봄의 주인이 될 산철쭉(2006.04.22에 촬영) ⓒ 김정봉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라고 한 영랑처럼 5월 맑은 날 낙선재 화계에 핀 모란꽃 앞에서 올봄과의 작별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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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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