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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마을 지나서 바라본 우산봉.
어둔마을 지나서 바라본 우산봉. ⓒ 김유자
계룡산을 마주보며 이어지는 연봉들

오늘(21일)은 계룡산 앞에 줄지어선 연봉들 가운데서 우산봉에서 갑하산에 이르는 능선을 오르기로 하고 집을 나섭니다. 약한 횡사 현상이 있는데다 날씨마저 흐렸다 개었다를 반복하고 있어 조망이 어떨지 약간 걱정이 됩니다.

오늘 제가 오르고자 하는 코스는 안산동 어두미 마을→성재고개→안산동산성→성재고개→북릉→우산봉 정상→565.4m봉(신선바위봉)→갑하산→국립현충원으로 이어지는 코스랍니다.

버스에서 내려 어두니 마을로 향합니다. 마을길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공사 중인 대전-당진간 고속도로의 높은 교각이 시야를 가로 막습니다. 삭막한 교각 풍경을 누그러뜨리듯 교각 옆에 눈부시게 피어난 복숭아꽃의 붉은 꽃들이 화사합니다.

어두니 마을로 들어섭니다. 지난 3월 1일 계룡산을 가느라 이곳에 왔으니 꼭 50일 만에 다시 온 셈이군요. 마을을 벗어나자 전신주에 붙인 안내 푯말이 안산산성까지 1km가 남았다고 알려 줍니다. 우산봉을 올려다 보니 여기저기 산벚나무 꽃이 피어나 군데군데 하얀 모습입니다. 길가에는 하얀 조팝나무들이 피어 오가는 길손을 배웅해주고 있습니다.

성재고개에 올라서 오른쪽 능선에 있는 안산동 산성터를 향해서 갑니다. 성안에 무리지어 자라는 쇠뜨기들이 성터를 푸른빛으로 깊어지게 하고 벌써 철쭉들이 피어 폐허를 붉게 수놓고 있습니다.

성터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성재 고개로 와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이 제법 어두컴컴합니다. 길섶엔 진달래가, 그 안쪽엔 산벚나무나 조팝나무꽃이 피어 저마다 향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우산봉(573m)서 바라본 계룡산.
우산봉(573m)서 바라본 계룡산. ⓒ 김유자

우산봉에서 바라본 공주 반포면 풍경.
우산봉에서 바라본 공주 반포면 풍경. ⓒ 김유자
이윽고 둘레가 약 150m 가량인 보루가 산 정상을 에워싸고 있는 우산봉 정상에 올라섭니다. 우산봉이란 이름이 생긴 것은 그 옛날 큰 홍수가 났을 때 겨우 우산만큼 남기고 산꼭대기까지 물이 차올라 우산봉이란 이름을 얻었다는 설과 산이 우산을 펼친 모양이라는 설이 전해집니다.

우산봉 정상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대덕의 진산인 계족산과 식장산이 보입니다. 멀리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보문산이 보이고 오른쪽 가까이를 바라보면 신선 바위봉이 아주 크게 다가옵니다, 남서쪽으로는 분지를 이룬 동학사 입구 시설지구 뒤로 계룡산이 우뚝 솟아 장쾌한 풍경을 이루고 서쪽으로는 계룡산 상신리 계곡과 반포면 소재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우산봉 아래 바위 틈새에서 피어난 산벚꽃.
우산봉 아래 바위 틈새에서 피어난 산벚꽃. ⓒ 김유자
산 정상에도 여기저기 진달래와 산벚꽃이 피어 있습니다. 우산봉은 사철 중에서 이때가 가장 아름다운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날씨가 흐리지 않다면 더 먼 곳까지 조망이 가능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안고 신선바위봉을 바라고 걸음을 옮깁니다. 이정표는 이곳에서 갑하산까지는 3.41km가 남았다고 일러 줍니다.

우산봉을 내려서니 직립한 바위가 갖가지 형상으로 등산객의 눈을 끌어 당깁니다. 바위 틈에 진달래도 피고 산벚나무들도 피어 평지에서보다 더디 온 봄을 맘껏 뽐내고 있습니다.

565.4m봉(신선바위봉)에서 바라본 갑하산(468m)과 도덕봉(535m).
565.4m봉(신선바위봉)에서 바라본 갑하산(468m)과 도덕봉(535m). ⓒ 김유자

565.4m봉(일명 신선바위)에서 바라본  동학사 시설 지구.
565.4m봉(일명 신선바위)에서 바라본 동학사 시설 지구. ⓒ 김유자
얼마나 걸었을까요? 갑하산과 우산봉 사이 중간지점에 있는 신선바위봉에 도착합니다. 이정표를 보니 우산봉에서 신선바위봉까지 2.74km를 걸어온 모양입니다.

신선바위봉에는 10여 평 너럭바위가 있습니다. 계룡산이 있는 바위 서쪽은 낭떠러지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계룡산은 더욱 웅장하고 신령스럽게 다가옵니다. 계룡산을 보고 있노라면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마도 그래서 신선봉이라 붙었나 봅니다.

이곳에 서서 바라보는 계룡산의 황혼은 얼마나 멋질까요? 인연이 닿질 않는지 이곳에 올 적마다 꼭 날씨가 궂어서 한 번도 탁 트인 시계를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바위 옆에 피어난 진달래꽃. 강인한 바위와 대조되어선지 연분홍 꽃색깔이 더욱 엷고 안쓰러워 보입니다.
바위 옆에 피어난 진달래꽃. 강인한 바위와 대조되어선지 연분홍 꽃색깔이 더욱 엷고 안쓰러워 보입니다. ⓒ 김유자

갑하산 가는 길에 내려다 본 대전 시가지. 완쪽에 월드컵 경기장이 보입니다.
갑하산 가는 길에 내려다 본 대전 시가지. 완쪽에 월드컵 경기장이 보입니다. ⓒ 김유자
다시 갑하산을 향해서 걸음을 옮깁니다. 봉우리를 내려서자 모자가 날아갈 듯 바람이 심하게 불어옵니다. 신선바위봉에서 갑하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늘 바람이 셉니다. 이 능선 사이에 분지처럼 자리한 평지의 공기가 계룡산의 준봉들과 부딪쳐 센 바람을 만들어내는 어떤 자연 현상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선바위봉에서 갑하산 정상까지는 약 800m정도 됩니다. 갑하산을 향해 조금 가다가 신선바위봉 쪽을 뒤돌아봅니다. 신선바위봉 서쪽으로 뻗은 산자락들이 온통 산벚꽃투성이입니다. 새치처럼 하얗게 박힌 산벚꽃이 산기슭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갑하산 가는 길에 바라본 계룡산.
갑하산 가는 길에 바라본 계룡산. ⓒ 김유자

갑하산 정상에서 바라본 도덕봉(535m).
갑하산 정상에서 바라본 도덕봉(535m). ⓒ 김유자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갑하산에 도착합니다. 이 산에 갑소가 있어 갑동이란 마을이 생겼고 갑하산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하는 산이지요. 갑하산 일대는 옛날부터 명당으로 지목돼 왔답니다. 그래서인지 이 산 동쪽 기슭 아래에는 호국영령들을 모신 국립 대전현충원이 자리하고 있지요.

갑하산 건너편에 바라다 보이는 산이 도덕봉입니다. 갑하산과 도덕봉 사이엔 삽재가 있는데 그 위로 유성-동학사 간 도로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대전시 유성구와 충남 공주시 경계를 이루는 곳이기도 합니다.

날이 점차 어두워지고 성긴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국립 대전현충원으로 난 산길을 허위허위 내려갑니다.

계룡산을 완벽하게 조망할 수 있는 즐거움

사람들은 나보다도 더 나를 잘 아는 친구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산봉에서 갑하산까지의 봉우리들을 거슬러 오르면 계룡산 속에서 보지 못하는 계룡산의 모습을 확실히 볼 수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산봉과 갑하산은 계룡산 자신보다 더 계룡산을 잘 아는 친구란 얘기지요. 그래서 어제 저는 산에서 머릿속으로 하나의 전설을 상상해 보았답니다.

아주 먼 옛날 계룡산은 사람들이 자신을 가리켜 명산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답니다. 도대체 나의 어디가 어떻게 생겼기에 사람들은 나를 보고 명산이라고 하는 걸까. 계룡산은 산신을 졸라서 자신을 볼 수 있는 거울 같은 산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졸리다 못한 계룡산 산신은 마침내 이곳에다 봉우리들을 만들어 주었답니다. 그 뒤부터 계룡산은 틈만 나면 이쪽에다 대고 "얘얘, 갑하산아, 우산봉아! 나의 어디가 제일 잘 생겼니?"하고 묻는 버릇이 생겼다나 어쨌다나.

위의 이야기는 물론 제가 지어낸 이야기지요. 그만큼 계룡산의 모든 산봉우리와 마루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우산봉과 갑하산이 매력있는 산줄기라는 걸 말씀드리려다 보니 조금 '오버'한 것 같네요.

그렇지만 혹시 알아요? 바람 부는 날에 와서 가만히 들으면 계룡산의 목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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